피에르 가르뎅의 ‘미래 패션’ 되돌아보다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회고전에서 전설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업적 보여주는 작품 170여 점 선보여

회고전에 전시된 피에르 가르뎅의 다양한 모자들. / 사진:JONATHAN DORADO/BROOKLYN MUSEUM

프랑스의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우주시대를 떠올리는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는 그의 회고전 ‘피에르 가르뎅: 미래 패션(Pierre Cardin: Future Fashion)’이 2020년 1월 5일까지 열린다.

지난 70여 년 동안 미래주의적인 디자인과 하이패션의 민주화로 패션업계의 지평을 넓혀온 가르뎅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꼽힌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전설적인 커리어를 추적하는 광범위한 전시회다. 이 전시회에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의 업적을 보여주는 작품 170여 점을 선보인다. 오트쿠튀르(고급 맞춤 의상)와 기성복, 액세서리, 사진, 영화 등으로 대다수가 피에르 가르뎅 기록보관소의 소장품이다.

이 회고전을 기획한 브루클린 미술관의 패션·물질문화 부문 수석 큐레이터 매튜 요코보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미술과 쿠튀르 패션의 유사점 중 하나는 양쪽 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수제품이라는 사실이다. 맞춤 의상은 스케치부터 제작까지 조각이나 그림 못지않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이패션과 미술은 모두 최고의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물론 패션과 미술도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판화나 앤디 워홀의 미술공장, 특허받은 디자인 등이 그런 예다. 하지만 가르뎅의 쿠튀르 의상은 동시대의 미술과 대등하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과녁(Target)이 그려진 가르뎅의 드레스는 재스퍼 존스나 케네스 놀랜드의 회화 ‘과녁’ 연작과, 그의 움직이는 드레스(kinetic dresses)는 알렉산더 칼더의 움직이는 조각과 나란히 전시해도 전혀 손색없다.

가르뎅은 ‘패션 디자이너는 직물로 조각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가르뎅은 우주시대를 떠올리는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 사진:JONATHAN DORADO/BROOKLYN MUSEUM

가르뎅은 프랑스 비시에 살던 10대 시절 양복재단사로 훈련받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십자사에서 일했다. 전후에 파리로 이주한 그는 메종 파켕과 엘사 스키아파렐리 같은 패션하우스에서 일하다가 1947년 크리스티앙 디오르에 들어갔다. 1950년 가르뎅은 자신의 패션하우스를 설립해 처음엔 무대의상 디자인에 주력했고 나중엔 오트쿠튀르에 집중했다. 직물을 조각하는 능력과 건축적 감각에 기하학적 구조에 대한 애정까지 보태져 가르뎅 특유의 디자인이 탄생했다.

“가르뎅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전생에 수학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요코보스키는 말했다. “그의 기하학적 구조는 너무도 정확하다. 그는 포물선과 나선을 디자인에 자주 이용한다. 그의 매장과 집은 기하학적 구조와 대담한 색상이 특색이고, 원(circle)의 이용은 그의 디자인의 원동력이 됐다.”

가르뎅은 1971년 NASA를 방문해 민간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아폴로 11호의 우주인이 착용했던 우주복을 입어봤다. / 사진:BROOKLYN MUSEUM

가르뎅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1964년 ‘코스모코르(Cosmocorps)’ 컬렉션은 비닐과 금속성 섬유, 커다란 지퍼와 우주인의 헬멧 같은 모자로 미래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그 후 가르뎅은 지속적으로 미래주의와 신기술에서 영감을 받았다. 1968년에는 가르뎅 섬유(Cardine)라는 직물을 직접 개발했다. 구겨지지 않는 다이넬 섬유에 3차원의 패턴을 적용해 합성섬유의 미래를 보여준다.

1971년 가르뎅은 미 항공우주국(NASA)을 방문해 민간인으로서는 역사상 유일하게 아폴로 11호의 우주인이 착용했던 우주복을 입어본 인물이 됐다. 그는 이 경험에서 대단한 영감을 얻었다. 가르뎅은 1958년 파리 프렝탕 백화점에서 패션 디자이너 중 최초로 프레타포르테(기성복)를 런칭했다. 그다음엔 유니섹스 의상을 개발해 많은 디자이너가 모방했다. 1960년대 말 가르뎅은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 특허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전례 없는 경제적 성공으로 자신의 회사를 단독 소유한 몇 안 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됐다.

원(circle)의 이용은 피에르 가르뎅 디자인의 원동력이 됐다. / 사진:JONATHAN DORADO/BROOKLYN MUSEUM

요코보스키는 “재클린 케네디가 입었던 빨간색 데이 슈트와 유니섹스 의상의 모태가 된 1960년대의 실험적 디자인, 비닐과 ‘가르뎅’ 섬유 같은 신소재의 사용, 움직이는 조각을 흉내 낸 패션 등이 가르뎅의 대표작”이라고 말했다. 또한 가르뎅은 의상에 LED 등 조명을 이용하는 경향이 유행하기 훨씬 전 그런 의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가르뎅이 제작한 실험적인 수제래커 가구도 전시됐다. 요코보스키는 그 작품을 ‘실용적인 조각작품(sculpture utilitaire)’이라고 설명했다.

“난 이 전시회가 피에르 가르뎅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요코보스키는 말했다. “많은 사람이 그를 ‘피에르 가르뎅’이라는 상표가 붙은 대량생산 의류제품으로 기억한다. 오늘날 많은 디자이너의 경우가 그렇듯이 말이다. 하지만 가르뎅은 양복재단사와 패션 디자이너로 70년을 살아오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의상들을 제작해 왔다. 이번 전시회는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 폴라 프롤리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