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본으로 돌아간다

분자요리로 유명했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레스토랑 엘불리가 문을 닫은 후 신선한 재료와 단순하게 만드는 전통음식으로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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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해변 식당 ‘바라카’의 해산물 파에야는 탄 것처럼 보이지만 신선한 해산물의 감칠맛이 기막히다.

지난 20년 동안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요리는 엘불리(elBulli) 요리사들의 천재성으로 정의됐다. 엘불리는 코스타 브라바의 매력적인 도시 로사스 근처 해변에 있던 레스토랑이다. 페란과 알베르트 아드리아 형제는 이 레스토랑을 기반으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2명의 요리사가 됐다.

2011년 엘불리가 문을 닫았을 때 국제적인 뉴스 거리가 됐다. 페란은 엘불리에서 거품과 분자요리를 이용해 음식의 맛을 극대화하는 요리의 거장이 됐다. 엘불리는 모든 음식을 기존의 요리법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 요리는 손님들을 설레게도 했고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엘불리에서 마지막으로 식사했을 때 테이블에 오른 요리는 모두 49가지였다. 페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올리브 열매처럼 보이는 작은 구 형태의 요리(먹을 수 있는 껌 안에 올리브유가 들어 있다)도 포함됐다. 토끼고기 소스를 이용한 블랙베리 리조토나 새우 뇌로 만든 페이스트를 곁들인 새우 요리 등 더 신기한 음식들도 포함됐다.

페란은 엘불리를 닫은 후 5년 동안 길을 잃은 듯 보였다. 2년 전에는 원래 레스토랑이 있던 자리에 엘불리 재단을 세운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국립공원 한가운데라는 위치 때문에 반대시위에 부닥쳤다. 또 스페인 이비사 섬에서 ‘태양의 서커스단’과 협업으로 ‘레스토랑이 아닌 레스토랑을 세우는 일’을 추진 중이다.

알베르트는 형 페란보다 레스토랑 사업을 더 활발히 한다. 그는 로사스 남서쪽의 바르셀로나에 있는 자신의 레스토랑 ‘티케츠(Tickets)’에서 엘불리의 철학을 이어간다. 일부 음식평론가들이 ‘엘불리 라이트’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레스토랑에서 알베르트는 그릴에 구운 수박이나 오징어 먹물과 아몬드 페이스트를 곁들인 오징어 요리 등 놀라운 음식을 선보인다.

또 엘불리에서 일하던 요리사 3명이 운영하는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 ‘디스프루타르(Disfrutar)’도 카탈루냐 음식에 분자요리를 적용한다. 버섯 젤라틴을 곁들인 바삭바삭한 달걀 노른자 요리나 카르다몸(향신료의 일종)을 넣은 망고 소르베 샌드위치 같은 특이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엘불리의 영향이 확실히 느껴진다.

아드리아 형제가 시작해 그들의 전 동료들이 이어나가는 요리의 혁신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업계는 이런 혁신적인 경향을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중해의 전통을 재해석하면서 특유의 음식문화를 재정립해 나가는 듯하다.

유기농 시장과 레스토랑의 모임인 ‘트리부 워키(Tribu Woki)’는 카탈루냐 요리의 전통을 살리는 데 앞장선다. 2008년 아르헨티나 은행가 출신인 귀도 와인버그(44)가 설립한 이 단체에는 바르셀로나의 레스토랑 9곳과 시장 6곳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와인버그는 “아드리아 형제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요리 방식을 따르려면 다양한 기술과 기계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럴 생각이 없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만 있으면 아주 간단하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요리를 만들 수 있다.”

와인버그가 운영하는 해변의 식당 ‘바라카(Barraca)’는 그 철학을 실천한다. 타르타르 소스를 곁들인 안달루시아산 오징어 요리는 부드러운 오징어가 입안에서 사르르 녹고 잘게 다진 오이 피클이 아삭아삭 씹힌다. 보통보다 짙은 색깔이 나는 해산물 파에야는 탄 것처럼 보이지만 신선한 해산물의 감칠맛이 기막히다.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저 바닷가에 음식 맛이 좋은 레스토랑을 만들자고 마음먹었다”고 와인버그가 말했다. “질 좋고 신선한 오징어와 생선만 있으면 훌륭한 파에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레스토랑에서든 이런 원칙만 지키면 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바라카의 요리 감독 자비에 펠리세르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다. 바르셀로나의 유명 레스토랑 AbaC의 주방장을 지냈고, 1994년 카탈루냐 레스토랑 중 최초로 미슐랭 별 3개를 획득한 ‘칸 파베스(Can Fabes)’에서도 오랫동안 일했다. 펠리세르는 현재 트리부 워키의 수석 컨설턴트다.

바라카의 맞은편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바르셀로나 최초의 뉴웨이브 비스트로 중 하나인 ‘코우레(Coure)’가 나온다. 2005년 요리사 알베르트 벤추라가 문을 연 이곳은 음식이 단순하고 값도 비싸지 않다. 아래층엔 가격이 더 저렴한 바가 있다. 뇨키(감자 경단)와 검은 송로버섯을 곁들인 송아지 췌장 요리와 맛있게 양념한 가지를 곁들인 양 어깨 고기 요리가 감탄을 자아낸다. 질 좋은 스페인산 농산물을 쓰는 것이 맛을 내는 가장 큰 비결이다.

바르셀로나 레스토랑들이 아주 잘하는 일 중 하나가 국제적인 요리의 경향을 포용하는 것이다. 엘불리가 문을 닫은 후 알베르트는 일본과 페루, 멕시코의 영향을 받은 요리를 위주로 한 레스토랑들을 열어 성공을 거뒀다. 그는 또 티케츠 바로 맞은편에 ‘보데가(Bodega) 1900’이라는 이름의 베르무트(포도주에 향료를 넣어서 우려 만든 술) 바를 열었다.

최근 보데가 1900에 가보니 타일로 된 바닥에 대리석 상판의 단순한 식탁들이 놓였고 서까래엔 구식 우편엽서들이 붙어 있었다. 아드리아 집안의 기념품들도 눈에 띄었다. 실내장식이나 메뉴에서 엘불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올리브 열매 모양의 애피타이저다.

다행히 나머지 메뉴는 섬세하게 조리한 지역 전통음식이다. 화이트 에스카베체 소스를 곁들인 맛조개 요리와 완두콩을 넣은 버섯 수프 등이다. 갈리시아산 가공 쇠고기로 만든 루비아 갈레가도 인상적이었다. 보데가 1900은 스페인산 재료만 고집하진 않는다. 최근 내가 맛본 음식 중엔 프랑스 마렌-올레롱 지역에서 난 굴에 샬랑드레 지방에서 생산된 푸아그라를 그릴에 구워 곁들인 요리가 흥미로웠고 맛도 좋았다.

카탈루냐 전통음식에 대한 수요가 확실히 늘어나고 있다. 트리부 워키는 향후 1년 동안 유기농 시장 3곳과 레스토랑 1곳을 더 열 계획이다. 지금까지처럼 고품질의 신선한 재료를 이용한 단순한 요리에 초점을 맞춘다.

와인버그는 음식의 유행이 돌고 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 동안 기술과 과학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쳤던 경향이 다시 신선한 농산물과 단순함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내 철학과도 맞아떨어진다. 난 기본으로 돌아간다는 개념이 좋다.”

– 브루스 팰링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