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운 감도는 두 개의 아메리카

구경제로 살아가는 아날로그 미국인과 실리콘밸리의 신경제 이끄는 디지털 미국인과의 일자리 싸움이 이념전쟁으로 확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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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고 무력하게 느낀다고 말하는 아날로그 미국인은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며 그 분노를 표출한다.

지금 미국은 두 개로 쪼개진 나라다. 아날로그 미국과 디지털 미국이다.

이전엔 미국이 디지털 격차를 그냥 막연하게 걱정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미국의 분리선이 한반도를 분단하는 휴전선처럼 보인다. 미사일을 서로 겨눈 채 일촉즉발의 긴장이 흐른다. 사소한 오해라도 있으면 곧바로 아수라장이 될 수 있다. 미국 남부의 트랜스젠더 화장실 관련 법부터 기술에 일자리를 빼앗길 사람들을 위한 기본소득 보장제를 도입하자는 실리콘밸리의 제안까지 모든 면에서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올해의 미국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아날로그 대 디지털의 이야기다.

20년 전 메세추사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소장이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저서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원자(atom)와 비트(bit, 이진수 체계로 이뤄진 정보량의 기본단위)의 관계가 변해간다고 지적했다. 원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단위로 아날로그 세계를 이루고, 비트는 디지털 세계를 구축한다. 네그로폰테 교수가 선견지명 있게 지적했듯이 원자는 제조와 트럭, 소매점이라는 구경제를 상징한다(거기엔 뜻밖에도 중산층 일자리가 많다). 반면 비트는 신경제를 이끈다. 모바일 앱, SNS,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3D 프린팅 등 구경제를 집어삼키는 기술이 전부 거기에 들어 있다.

아날로그 미국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분기탱천한다. 디지털 미국은 세계경제를 거의 지배하며 억만장자를 대거 만들어낸다.

아날로그 미국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그들에겐 미래가 아무리 장밋빛이라고 해도 과거를 되살리는 게 훨씬 나아 보인다. 반면 디지털 미국은 아날로그만 아는 사람들이라도 무료 강의 프로그램에 등록해 인터넷과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면 적어도 당분간은 별 문제 없다며 거들먹거린다.

지난 4월 말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의 세계 조명업계 전시회 라이트페어 인터내셔널에서 그런 격차를 실감했다. 10년 전엔 거의 모든 전시업체와 참가자가 조명 디자이너나 제조업체였다. 아날로그인이었다는 뜻이다.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나 캐나다 캘거리 또는 독일 출신으로 대개 가업을 물려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올해 전시회는 조명의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그 기기가 끌어모으는 데이터에 초점이 맞춰졌다. 실리콘밸리의 신세대 컴퓨터 선수들이 자기네 세상이란 듯 전시장을 어슬렁거렸다. 아날로그인은 충격에 빠져 멍한 상태였다. 그들의 일자리가 불타 사라지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 아날로그 미국은 분노한다. 그들은 디지털 미국을 향해 노여움을 터뜨린다. 노스캐롤라이나·미시시피 주에서 통과된 소위 ‘화장실 법’을 사실상 주도한 세력이 디지털인이었다. 아날로그인은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 법을 밀어붙인 디지털인에게 적대감을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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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트랜스젠더가 출생증명서에 기재된 성별과 일치하는 공중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법을 두고 이념 전쟁을 벌인다. 이 역시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싸움이다.

그러나 디지털 미국에선 무엇보다 재능이 최고다. 데이터 과학과 기계학습 같은 첨단 인기 분야라면 더 그렇다. 디지털 미국의 회사는 동성애자든 이민자든 재능을 가진 사람을 외면할 수 없다. 약간이라도 편견처럼 보이는 정책도 위험하다. 디지털 회사는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스캐롤라이나 주를 지배하는 보수파가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법을 통과시키자 디지털 관련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페이팔과 도이체방크는 그곳의 사업 확장 계획을 취소했다. 도이체방크의 공동 CEO 존 크라이언은 “포용적인 근로 환경을 구축하겠다는 우리의 공약은 빈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포용적이란 성적 취향 등 모든 사회적 이슈에서 편견과 차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는 아날로그 과잉 상태로 디지털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디지털을 배격하기로 결정해 더 깊은 분열의 골을 팠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와 함께 아날로그 미국의 바탕을 이루는 미시시피·인디애나 주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면서 하나의 추세를 이룬다.

디지털 미국인도 고집을 부리며 분열을 조장하긴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지금 디지털 미국인은 아날로그 미국인에게 기본소득 보장에 관해 아주 독단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기본소득 보장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이 운동은 수십 년 전 시작됐지만 올해 실리콘밸리 IT 인큐베이터(스타트업 지원회사)인 와이컴비네이터의 샘 알트먼 대표가 다시 주장하면서 언론에서 주요 이슈로 부각됐다. 실리콘밸리의 논리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디지털 미국이 아날로그 미국의 일자리를 거의 다 쓸어낼 게 뻔하니 구닥다리 아날로그 미국인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기본적인 소득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뿌리를 둔다. 와이컴비네이터의 기본소득 프로젝트 팀장 매트 크리실로프는 “앞으로 인구의 95%가 노동력에 기여하지 못할 수 있다”며 “그런 대전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 보장이라는 개념은 의도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아날로그 미국인에겐 당연히 모독이다. 그들은 디지털 미국인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당신의 기여는 상품성과 가치가 없어질 것이다. 그러니 아예 일할 생각을 하지 마라. 학자금 부채를 잔뜩 떠안고 써먹을 수도 없는 어려운 공부를 한다고 대학에 가서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 게 나을지 모른다.” 이런 미래에선 모든 일자리가 프로농구의 구조가 된다. 슈퍼스타 몇 명은 거부가 되고 또 몇 명은 마이너 리그에서 겨우 먹고 살며, 나머지는 모두 돈을 벌지 못하고 그냥 재미로 경기를 하는 식이다. 게다가 그 구조의 운영자는 IT 부문의 엘리트층이다. 그러니 아날로그인이 디지털인을 보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도 당연하다.

아날로그의 분노를 어떻게 아느냐고?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표 한 가지는 학사학위 취득 여부다. 소프트웨어에 의한 자동화로 이미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는 사람들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대개 억울하고 무력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그들은 디지털인에게 사기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런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다.

디지털 미국은 트럼프 후보의 보호주의·고립주의 메시지를 위협으로 받아들인다. 기술이 뛰어난 이민자를 쫓아낸다고? 애플이 아이폰 전량을 미국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구글이나 클라우드 기반 기계학습 기술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막는 무역전쟁을 벌이자고? 말 그대로 와해적인 발상이다.

게다가 디지털 격차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지난해 발표된 백악관 보고서는 ‘주로 나이 많고, 학력 낮고, 소득 적고,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고 속도 느린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1년 전부터 아날로그 미국과 디지털 미국은 기술 접근, 나이, 지리적 요인으로 확연히 분리됐다는 얘기다.

이제 그 격차는 이념으로 확대됐다. 아날로그인과 디지털인은 편을 갈라 한판 붙을 채비를 한다. 그런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한, 또 지도자들이 그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어느 한쪽에서 참지 못하고 미사일을 쏘고야 말 것이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