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제작과정에 바치는 송가

수제작과 기계제작, 오트 쿠튀르와 프레타포르테의 경계를 탐험하는 전시회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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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라거펠트가 샤넬의 2014/2015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제작한 오트 쿠튀르 웨딩 앙상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 부설 의상연구소는 지난 5월 5일 ‘마누스 x 마키나: 테크놀로지 시대의 패션(Manus x Machina: Fashion in an Age of Technology)’ 전시회(8월 14일까지)를 개막했다. 원형 갤러리 중앙의 전시대에 우뚝 선 칼 라거펠트의 오트 쿠튀르 웨딩 앙상블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금빛 문양이 찬란한 드레스 자락을 따라 내려가던 시선은 자연스럽게 돔형 천장을 향하게 된다. 그곳에는 그 정교한 금빛 문양의 클로즈업 이미지가 투영된다. 여기에 브라이언 이노의 고요한 음악이 어우러지면서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성당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전시회는 패션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을 기리는 사원 역할을 하도록 세심하게 디자인됐다”고 큐레이터 앤드류 볼튼이 개막 전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마누스 x 마키나’(‘손과 기계’라는 뜻)는 패션의 제작과정에 바치는 송가다. 그 과정을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보여주는 게 이 전시회의 목적이다.”

수제작과 기계제작, 오트 쿠튀르(고급 패션)와 프레타포르테(기성복)는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며 선입견도 많이 따른다. 하지만 이 전시회는 이것들을 편견 없이 조명한다. 각각을 구분하는 경계가 모호하며 공동의 목표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볼튼은 “‘마누스 x 마키나’는 디자인과 패션의 발전에서 손과 기계가 동등한 역할을 한다는 실천적 스펙트럼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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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 반 헤르펜이 만든 3D 프린팅 드레스의 스커트는 흰색 양가죽을 재봉틀로 바느질했다.

앞서 언급한 라거펠트의 웨딩 앙상블은 샤넬의 2014/2015 가을·겨울 컬렉션으로 제작됐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회의 토대가 됐다. 볼튼은 “드레스 자락의 문양 디자인은 손으로 스케치한 다음 컴퓨터로 수정하고 다시 손으로 색칠한 다음 모조 다이아몬드를 얹어 기계로 프린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손으로 진주와 보석들을 달았다. 수제작과 기계제작을 혼합한 최상의 예다.”

이 전시회를 후원한 애플의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너선 아이브는 “갤러리의 중심에서 전시회의 도입부 역할을 하는 이 앙상블은 영혼이 깃든 장인의 솜씨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기막힌 조합”이라고 말했다. ‘마누스 x 마키나’는 또 다국적 잡지 출판 기업 콘데 나스트의 후원도 받았다. 콘데 나스트의 예술감독인 보그 미국판 편집장 애나 윈투어는 20년 가까이 그래 왔듯이 지난 5월 2일 열린 Met 의상연구소 연례 자선행사를 공동 주관했다. 올해는 아이브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배우 이드리스 엘바 등이 공동주관자로 나섰다.

중앙 전시실 주변에는 드니 디드로와 장 르 롱 달랑베르가 편찬한 ‘백과사전’(과학·예술·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 8권이 전시됐다. 다양한 페이지가 90도 각도로 펼쳐져 ‘비행을 시작하려는 새’처럼 보인다. “디드로의 백과사전이 예술의 한 형태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볼튼은 말했다.

18세기에 편찬된 이 백과사전의 취지는 전시회의 주제(‘패션 제작과정에 깃든 창조성과 솜씨, 복잡성’을 조명한다)와 일맥상통한다. 구성 원리도 비슷하다. 복도와 안쪽 돔 둘레의 전시실, 그리고 아래층에 원형으로 배치된 전시실들은 자수·깃털·조화·레이스·가죽 등 소재와 작업방식을 기준으로 공간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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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이 1958년 디오르 데뷔 컬렉션에서 선보인 자수 이브닝 드레스 ‘렐레팡 블랑’은 비치는 천을 씌운 반돔형 구조물 안에 전시됐다.

지난해 봄에 열린 ‘거울을 통해 본 중국’ 전시회 때도 그랬듯이 Met 의상연구소는 전시회를 열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이번 전시회의 전시 공간(뉴욕의 건축사무소 OMA가 디자인했다) 콘셉트는 ‘건물 속의 건물’이라고 Met의 관장 겸 CEO 토머스 P 캠벨이 말했다. “얇게 비치는 천으로 만든 돔과 벽감 등을 활용했다.”

비치는 천은 구조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준다. 이 전시회가 패션의 제작과정을 알려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시회의 주제와 전시 공간의 콘셉트가 일맥상통해 시너지를 낸다”고 볼튼은 말했다. Met의 로버트 레먼 윙 전시관 안에 원형으로 배치된 전시실들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옷감과 정교한 디자인을 감상하다 보면 명상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전시관 안에 들어서면 바깥 세상은 잠시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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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이 미야케가 1994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발표한 ‘비행접시’ 드레스.

어떤 전시품들은 중앙 전시실과 같은 반돔형 구조물 안에 전시됐다. 1958년 이브 생 로랑이 디오르 데뷔 컬렉션에서 선보인 ‘렐레팡 블랑’(흰 코끼리라는 뜻) 드레스가 그중 하나다. 작품 설명에 “별처럼 반짝이는 표면 장식은 한땀 한땀 손으로 완성됐다”고 쓰여 있다. “은실로 수놓은 점과 크리스털 구슬, 인조 다이아몬드와 반짝이 장식으로 만든 꽃들이 번갈아 나타난다.” 뒤쪽의 투명한 천을 통해 라거펠트의 작품이 보인다.

단순한 전시대 위에 놓인 작품들도 있다. 조화를 주제로 한 원피스들과 깃털을 이용한 의상들이 그렇다. 타조 깃털을 접착제로 일일이 붙인 것부터 레이저로 자른 누드 실리콘 깃털을 손바느질로 이어붙인 것까지 깃털의 접착 방식이 다양하다. 전시실 곳곳에 놓인 소형 프로젝터들은 근처에 전시된 작품의 제작과정을 보여주는 동영상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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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를 이용한 원피스들은 단순한 형태의 전시대 위에 전시됐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각 작품은 유전자를 검사하고 수제작과 기계제작 사이의 위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낱낱이 해부된다”고 볼튼이 말했다. “이 DNA 검사 결과는 각 전시품 아래 쪽에 의료기록처럼 명시돼 있다.”

일례로 레이스 의상 부문은 DNA 샘플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1870년쯤 제작된 아일랜드의 웨딩드레스부터 2012년 가을 아이리스 반 헤르펜이 만든 3D 프린팅 드레스까지. 아일랜드의 웨딩드레스는 “코바늘로 뜬 크림색 레이스에 장미와 백합, 후크시아와 나팔꽃, 베리와 나뭇잎 등이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다.” 또 반 헤르펜의 드레스는 짙은 오렌지색의 에폭시 수지로 만든 3D 프린트물을 “손으로 사포질한 다음 그 위에 분무기로 투명한 수지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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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을 이용한 의상들은 깃털을 일일이 붙인 것부터 손바느질로 이어붙인 것까지 접착 방식이 다양하다.

이 전시회에는 지난 100여 년 사이에 제작된 약 170점의 의상이 전시됐다. 각 작품의 ‘의료 기록’을 보지 않고서는 오트 쿠튀르인지 프레타포르테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제작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기법들이 사용됐는지도 추측하기 어렵다.

“관람객이 직접 자신의 추측이 어느 정도 맞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이 전시회의 묘미 중 하나”라고 볼튼은 말했다. “전통적으로 오트 쿠튀르는 수제작, 프레타포르테는 기계제작과 연관 지어져 왔다. 하지만 이 전시회를 관람하다 보면 그 둘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전시회에서는 디자이너들의 생각뿐만 아니라 전시회 주제에 대한 의견이나 특정 작품에 대한 설명(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었는지 제작 과정은 어땠는지 등)도 들을 수 있다.

일본 태생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의 작품 설명에는 “난 늘 제작방식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실려 있다. 미야케가 2010년 가을/겨울 ‘132.5’ 컬렉션에서 발표한 그 작품들엔 맞춤 소프트웨어로 제작한 패턴과 재활용 병으로 만든 섬유가 이용됐으며 손으로 접는 공정이 포함됐다.

“창작예술을 지속시키고 인간의 소중한 솜씨를 활용하며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친환경 방식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미야케는 덧붙였다. “인간의 솜씨와 기술의 결합은 미래의 의상 제작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 스태브 지브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