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부터 찾고 제품 출시해라

한국에 첫 선보인 ‘린 스타트업 머신’ 체험기…아이디어가 안 좋아도 성공할 수 있다고?

1
창업가를 위한 워크숍 ‘린 스타트업 머신’이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

‘오늘의 대구 날씨는 30도가 넘는 뜨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지난 5월 18일 기자가 대구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접한 일기예보다. 하지만 대구 날씨보다 더한 체험을 하게 될지 그때는 예상하지 못했다. 18일부터 20일까지 대구광역시 신천동의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특별한 워크숍이 열렸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대세로 평가받는 (예비) 창업가를 위한 워크숍 ‘린 스타트업 머신’이다. ‘린 스타트업’ 이론과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워크숍이다. 린 스타트업은 고객 분석을 통해 빠르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내놓는 데 초점을 맞춘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린 스타트업 머신팀이 한국에 첫 방문해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 진행되는 1일 과정의 발명주기 워크숍도 서울·경기·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렸다. 기자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린 스타트업 머신에 참여했다.

대구·경북 지역뿐만 아니라 서울·인천 등 다양한 곳에서 예비 창업가 24명이 모였다. 참석자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치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새로운 일을 해보기 위해 서울에 사는 임정언 씨, 귀농 후 창업을 꿈꾸다 워크숍 소식을 듣고 찾아온 곽순찬 씨, 게임 개발사를 운영하는 조선호 대표, 중소기업 컨설팅회사를 운영하는 이원규 대표 등이 오후 6시부터 대회의실에 하나둘 모여들었다. 임정언 씨는 “서울에도 이런 워크숍 프로그램이 많지만, MS가 직접 운영한다고 해서 대구까지 내려왔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행사요원이 나눠준 노란색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앞면에는 ‘GET OUT OF THE BUILDING’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참가자들은 이 문구가 3일 내내 워크숍 현장에서 울려퍼질지 몰랐다. 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후 6시 30분, 워크숍 교육을 담당하는 자벨린 대표 트레버 오웬스가 ‘웰컴’을 크게 외치고 참가자들 앞에 섰다. 낯선 공기가 가득했던 대회의실은 그의 등장과 함께 서서히 달아올랐다. 가장 먼저 3~4명씩 팀을 나눴다. 각 팀의 조원들은 3일 내내 모든 프로그램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 기자는 2명의 창업가, 1명의 스타트업 멘토로 활동하는 이들과 같은 조가 됐다.

첫날은 오웬스 대표의 강연으로 시작됐다. ‘98%’라는 숫자가 큰 화면에 나타났다. 그는 “스타트업이 사라지는 비율”이라고 설명했다. 50개의 스타트업이 나타나도 그중에 1곳만 살아남는 것이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웬스 대표는 “나를 믿고 따라오면 3일 후에 뭔가 보여주겠다”고 했다.

워크숍의 이론과 철학의 기반이 된 ‘린 스타트업’이 무엇인지를 시작으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강연과 교육은 지금까지 보고 들었던 내용과 전혀 달랐다. ‘아이디어가 안 좋아도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을 모르면 모두 실패한다’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기 전에 미리 판매하는 게 중요하다’ ‘빨리 실패해야 빨리 성공할 수 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됐다. ‘무슨 뚱딴지 같은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참가자들의 당혹스런 표정과는 달리 오웬스 대표는 “이 워크숍의 핵심은 시간과 돈의 낭비를 줄이는 것”이라며 “고객을 알아야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갑자기 “Get out of the building”이라고 외쳤다. 안에서 해답을 찾지 말고, 무조건 밖으로 나가 직접 고객을 만나라는 요구였다. 고객의 문제를 풀어야만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창업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제품 혹은 서비스를 먼저 내놓고 고객을 찾는 것이다. 린 스타트업 철학은 고객부터 찾고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는 역발상이다. 첫날부터 워크숍은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둘째 날 참가자들이 가장 힘들어했다. 각 조별로 낸 아이디어가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 인터뷰를 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실패로 가득한 날”이라며 오웬스 대표가 웃었다. 현장 체험을 나가기 전 참가자들은 인터뷰 연습을 했지만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기자가 속한 조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마트에서 카트를 없애자’였다.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대구 이마트 만촌점을 찾았다. 참가자 1명당 무조건 2명의 고객을 인터뷰해야만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기가 너무 부담됐고 나 스스로도 얼굴이 굳어졌다”고 함께 간 참가자가 말했다. 다른 조의 참가자들도 인터뷰를 어려워했다. 병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던 한 참가자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조원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했다”고 말할 정도였다.

오후 3시 참가자들이 인터뷰를 마치고 강의실에 모였다. 각 조는 인터뷰 내용을 갖고 아이디어를 다시 검토했다. 대부분 아이디어를 변경했다. 스타트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피봇(Pivot, 사업내용의 변화)을 실행한 것이다. 아이디어를 내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고치고,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구체화된다. 아이디어와 고객이 정해지면 이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은 바로 나온다. 린 스타트업 머신의 핵심 내용이다. 오웬스 대표는 “이 워크숍은 돈과 시간을 절약하고 고객이 진정 원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빠르게 내놓는 것”이라고 고객과의 인터뷰를 강조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후 4시, 참가자들은 ‘Get out of the building’을 외치면서 긴장된 얼굴로 고객을 만나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후 7시 30분 강연장에 참가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오웬스 대표의 강연이 이어지고 오후 9시가 되자 참가자들은 하루 일과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일 오후 6시 1등을 뽑는다. 모든 조는 무조건 잠재고객 20명을 만들어야만 한다”고 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려면 홈페이지가 있어야 한다. 그는 홈페이지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사이트(www.stringkly.com)를 알려주고 모든 참가자들을 앞으로 불렀다. “모두 지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고지가 바로 앞이고, 조금만 더 하면 당신들은 아이디어를 팔 수 있다.”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Get out of the building’을 함께 외치고 조별로 모여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둘째 날 일과는 저녁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났다. 참가자들의 몸은 축 늘어져 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뭔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마지막 날도 마찬가지다. 조별 발표 준비와 함께 현장체험, 그리고 아이디어의 완성과 함께 잠재고객 20명을 만드는 게 숙제로 주어졌다. 참가자들은 SNS를 이용하기도 하고, 직접 거리로 나서기도 한다. 그런데 20명의 잠재 고객을 만든 조가 나타났다. 3일 만에 참가자들에게 변화가 생긴 것이다. 마지막 날 오후 7시 참가자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고 강연장을 나섰다. 참가자 임정언 씨는 “서울에 돌아가면 이번에 배운 내용을 다시 복기할 것”이라며 “고객의 생각을 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웃었다. 강연장을 나선 기자의 입에서는 ‘Get out of the building’이라는 문장이 계속 맴돌았다.

– 최 영 진 기자

[박스기사] “일자리 만들고 혁신 주도할 것” – ‘린 스타트업 머신’ 워크숍 이끄는 에드 슈타이들 MIC 총괄책임자와 트레버 오웬스 자벨린 대표
2
워크숍 기간 동안 트레버 오웬스(왼쪽) 대표와 에드 슈타이들 총괄 책임자는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스타트업 ‘자벨린’ 창업자 트레버 오웬스는 2010년부터 미국에서 린 스타트업 이론을 접목한 해커톤(Hackthon, 해커와 마라톤의 합성어. 마라톤을 하듯 짧은 시간 동안 아이디어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내는 경연) 형식의 ‘린 스타트업 머신(leanstartupmachine)’ 워크숍을 처음 시작했다. 그를 비롯해 린 스타트업 머신 팀이 방한해 워크숍을 진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창업가 워크숍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평가를 듣는 이유다. 마이크로소프트 이노베이션센터(MIC) 총괄책임자 에드 슈타이들은 오웬스 대표와 손잡고 예비창업가와 창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MIC 워크숍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슈타이들은 “이론이 아닌 액션 중심인 워크숍”이라며 “다른 방법론에 비해 워크숍 구조가 완벽해 손잡았다”고 말했다.

한국 참가자들의 특징은
트레버 오웬스(이하 오웬스): 미국에서 워크숍을 열면 참가자들의 에너지가 대단하다. 하지만 과정을 따라가는 것은 많이 부족하다. 한국 참가자들은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내 얘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 처음 린스타트업 머신 워크숍이 열렸다. 계속 이어갈 생각인가.
에드 슈타이들(이하 슈타이들): 3일 워크숍은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처음 열렸고, 1일 워크숍은 서울·경기·대구에서 열렸다. 앞으로도 꾸준하게 워크숍을 진행할 계획이다.

린 스타트업 머신은 언제 시작됐나.
오웬스: 2010년 워크숍을 처음 시작했다. 인기가 좋아 많을 때는 한 해에 50번 정도 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의 인기는 여전하다. 미국에서 3일 워크숍에 참가하려면 참가비 300달러를 내야 한다.

워크숍에 참가한 후 창업한 사례가 있나.
오웬스: 물론이다. 너무 많다. 성공사례도 계속 나온다. 2012년 우승한 쉐프 테이블(Chef’s Table)은 엑시트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콜롬비아대학 스티븐 게리 블랭크 교수가 린 스타트업 이론을 처음 만들었다. 블랭크 교수와 어떤 관계인가.
오웬스: ‘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을 낸 에릭 리스의 스승이 블랭크 교수다. 리스가 나의 스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린 스타트업 이론은 마치 폭포수처럼 블랭크 교수, 리스 그리고 내게로 이어졌다.

린 스타트업 머신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오웬스:어마어마하다. (웃음)
슈타이들 : 린 스타트업 이론은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영향력이 막강하다. 글로벌 기업 GE의 혁신팀은 린 스타트업 정신을 임직원에게 접목시키려고 노력한다. 스타트업을 넘어서 이제는 글로벌 기업까지 받아들이는 게 린 스타트업 머신 워크숍이다.

린 스타트업 머신 워크숍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슈타이들: 세계는 이노베이션 전쟁터다. 워크숍에 참가한 이들이 비즈니스를 할 때 이 방법론으로 성공하기 바란다. 이런 흐름이 누적되면 한국 사회에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혁신의 흐름이 거세질 것이다.
오웬스 : 린 스타트업 정신이 개인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로 퍼졌으면 한다. 워크숍 참가자들의 커뮤니티가 계속 이어져 다음 세대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강연할 때 행동과 목소리가 무척 특이하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노력한 결과인가.
오웬스: 맞다. 노력의 결과다. 독특한 목소리와 행동의 롤모델은 한국인이다. ‘캐스터 준(Caster Jun)’이 나의 롤 모델이다. 그의 영상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직접 만난 적도 있다(오웬스가 말한 ‘캐스터 준’은 게임MC로 유명한 전용준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