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쓸모없는 물건’만 있다?

기네스 팰트로가 운영하는 라이프스타일 회사 ‘구프’의 샌프란시스코 매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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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프’가 지난 5월 초 샌프란시스코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배우 기네스 팰트로를 미워할 이유는 많다. 그녀는 30세도 안 돼 아카데미상을 받았고 40대에도 눈부신 미모를 유지한다. 우리 불쌍한 보통사람들은 ‘이혼’을 하지만 그녀는 10년 간 결혼생활을 해온 크리스 마틴(그룹 콜드플레이의 싱어)과 ‘의식적인 비결합(consciously uncoupled)’ 상태에 들어갔다. 팰트로는 또 가수 제이 Z와 비욘세 부부의 친구이며 ‘잇츠 올 이지(It’s All Easy)’ ‘잇츠 올 굿(It’s All Good)’ 같은 제목의 요리책을 썼다. 책 표지에 실린 팰트로의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얼굴을 보면 그녀의 말이 믿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미국 뉴욕에 있을 때 카츠 델리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는다거나 밤새 비행기를 탈 때는 위스키 한 잔을 마시고 잠을 청한다는 말은 신빙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팰트로가 델타 항공의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몸을 구겨 넣고 플라스틱 컵에 담긴 미지근한 제임슨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을 상상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여행 방식은 사뭇 다르다고 알려졌다.

팰트로를 미워할 만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유명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 딱 하나 있는데 팰트로가 그 건물을 세냈다. 그녀가 2008년 설립한 호화 라이프스타일 회사 구프(Goop)의 매장이 지난 5월 초 메이든 레인에 있는 그 건물에 문을 열었다. 팰트로는 얼마 전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연기를 잠시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지난해엔 영화 ‘모데카이’에 출연했는데 반응이 형편없었다. 구프는 2년 전 부채가 약 160만 달러에 이른다고 알려졌지만 팰트로의 자산은 6000만 달러가 넘는다. 그러니 자선 기부를 하고 싶다면 다른 곳을 찾는 게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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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화 라이프스타일 전문가인 팰트로는 요리책도 냈다.

이왕 팰트로를 미워하기로 한 마당에 그녀가 라이트의 건물 곳곳을 자신의 얼굴로 도배하고 유전자변형에 반대하는 낙서로 훼손시켰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구프는 메이든 레인 140번지에 있는 이 건물(1949년 건축됐으며 이전엔 V C 모리스 기프트 숍이었다)에 존경심을 표하며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나선형으로 된 내부(라이트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적용한 디자인의 원형이다)는 깔끔하게 정돈돼 있고 상품들은 대체로 가장자리에 진열됐다. 정 팰트로를 미워할 생각이라면 그녀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그렇게 쉽게 연결된 걸 미워하라. 스타가 스타 건축가를 만난 셈이니 말이다.

구프 매장이 자리 잡은 샌프란시스코는 요즘 미국의 불평등을 대표하는 도시가 됐다. 자산가들은 연립주택을 수리해 되팔 때마다 수백만 달러의 이익을 챙기지만 곳곳에 노숙자 숙소가 늘어난다. 그래서 라이트의 건물로 들어가는 아치형 입구에는 보안요원이 배치됐다. 이 도시의 역겨운 현실이 매장을 찾는 부유한 고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고객 대다수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부촌 마린 카운티에서 온 듯하다. 나머지는 기네스 팰트로를 한번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들른 관광객들이다. 그들은 웬만한 국내선 항공 요금보다 더 비싼 도자기 조리기구들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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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구프 MRKT 매장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건물에 자리 잡았다.

팰트로는 브랜드 이미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때도 많다. 솔직하지만 사려 깊지 못한 발언이 그중 하나다. 예를 들면 이런 말이다. “나는 나다. 내가 1년에 2만5000달러밖에 못 버는 누군가처럼 행동할 수는 없다.” 구프 매장에서는 누구도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 손님들은 금빛 장식이 휘황찬란한 2922달러짜리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팰트로처럼 멋진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호화스런 생활로 들어가는 열쇠가 우리 손으로 들어온다. 일단 그 열쇠를 손에 넣으면 그것을 스텔라 매카트니가 디자인한 250달러짜리 파인애플 모양 열쇠고리에 끼워야 한다. 그곳에서 세 블록 떨어진 차이나타운에서 파는 5달러짜리 모조품은 안 된다.

매장 직원들은 대다수 고객보다 훨씬 더 젊다. 흰 셔츠에 크림색 에이프런을 두른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따라주는 직원이나 병원에서 수술하는 의사처럼 보인다. 그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어 보인다. 그들은 내가 상품을 사러 온 고객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박에 눈치챘을 듯하다. 날 도둑으로 의심하진 않았겠지만 어색해 보였을 게 분명하다. 내 평생 ‘스톤 워싱 리넨’으로 만든 175달러짜리 베개를 벨 일은 없을 테니 이상할 건 없다.

매장 안의 상품들을 보면 ‘구프’라는 단어가 고대 색슨어로 ‘비싸고 쓸모없는 물건(expensive, useless shit)’이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구프에서 독점 판매하는 58달러짜리 헝겊 가방이 한 예다. 가방에 파란색으로 ‘Chargers(충전기)’라고 쓰여 있으니 충전기 보관용인 듯하다. 다른 용도로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팰트로가 화낼지도 모르니 만약 그 가방을 산다면 충전기를 담아두는 게 좋겠다.

이상한 원뿔 모양의 촛대와 칙칙한 황토색 베개, 지나치게 큰 와인 잔도 눈에 띈다. 팰트로가 안락하고 건강이 넘치는 프랑스 시골의 생활을 꿈꾸며 제안하는 상품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보면서 내 머릿속엔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뉴욕시 북쪽) 교외의 답답한 목사관이 떠올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고 사랑도 없으며 두툼한 베이컨을 지지는 냄새가 나지도 않는 집 말이다.

매장에 있는 와인 잔들은 탄산수를 마시기에나 적합할 듯하다. 베개는 너무 고급스러워서 만지기도 조심스럽다. 하지만 간혹 팰트로가 환상에서 깨어나 고른 듯한 물건들도 눈에 띈다. 아동복 코너는 남아시아 공장에서 생산된 ‘올드 네이비’ 브랜드의 평범한 제품들로 구성됐다. 그 제품을 만든 사람들은 팰트로의 책 제목처럼 세상이 ‘아주 쉽고(It’s all easy)’ ‘아주 좋다(It’s all good)’는 데 동의하지 않을 듯하다.

사실 구프에서 파는 상품 대다수는 다른 곳에서도 살수 있다. 이를테면 각 제품의 생산업체나 구프 온라인 상점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집에서 신약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교회 예배를 거르겠는가? 샌프란시스코의 구프 매장을 방문하는 이유는 팰트로가 뿜어내는 황금빛 광채에 젖어보고 싶어서다. 그리고 우리의 건조한 피부와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타겟(대형 할인점)에서 산 싸구려 베개에 관한 그녀의 조언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팰트로의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비타민 D에 대한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멕시코 정부가 국경 차단벽 설치 비용을 대느냐 안 대느냐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트럼프는 불법이민을 막기 위해 멕시코 국경에 차단벽을 설치하고 그 비용을 멕시코 정부에 물리겠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없고 그들에게만 있는 초월적 영광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 맹목적인 동경은 이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매장 2층에서는 주방용품을 판매한다. 그곳에서는 주서로(Juicero)라는 기계를 이용해 냉압착 방식으로 짠 주스를 맛볼 수 있다. 디지털 세대를 위한 700달러짜리 주스기다. 주서로를 생산한 업체는 실리콘밸리에서 1억 2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지만 이 기계가 왜 이렇게 복잡한지, 또 그 엄청난 가격을 생각할 때 타겟에서 파는 44.99달러짜리보다 어떤 점에서 더 나은지 속시원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주스 만들기 시범을 보인 직원은 아주 잘생기고 늘씬한 청년이었다. 로버트 패틴슨(영화 ‘트와일라잇’의 주역 배우)과 도리언 그레이(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속 주인공)가 떠올랐다. 기계 작동 몇 분 만에 주스가 나왔는데 맛이 괜찮았다.

한쪽 벽엔 검은색 바탕에 음식이 그려진 정물화가 걸려 있었다. 난 화가들이 정물화를 그릴 때 꽃이나 고기 등의 한창 때(부패가 시작되기 직전)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세속적인 존재의 덧없음을 전달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그런 그림을 볼 때마다 섬뜩하다. 생명력으로 가득 찬 이 공간에서 그 그림은 우리 모두가 잊고 지내던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기네스 팰트로는 예외일지도 모른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