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이 그저 ‘20분 간의 행동’이라고?

남성들은 스탠퍼드대학 피해자의 고뇌 찬 진술서 읽고 그런 경험이 여성의 인생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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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 주 웨이코에서 베일러대학 여학생들이 교내외 학생 성폭력을 규탄하며 대학 당국의 효과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지난해 1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에 있는 스탠퍼드대학 캠퍼스에서 이 대학 학생이자 수영선수인 브록 터너(20)가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주변에 사는 회사원이었고, 터너가 소속된 사교클럽의 파티에 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터너는 지나가던 학생들에게 발견돼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징역 6년을 구형했으나 지난 6월 2일 캘리포니아 주 샌타클라라 지방법원은 징역 6개월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했다. 재판을 맡은 애런 퍼스키 판사는 터너가 전과기록이 없고 죄를 뉘우치는 점을 감안해 형량을 낮춰 선고했다고 밝혔다. 터너는 법정에서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인 줄 몰랐으며 자발적으로 성관계에 응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로선 터너로부터 성폭행당하는 순간 긴 악몽이 시작됐다. 그 시작은 터너가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을 보는 일이었다(퍼스키 판사의 선고가 터무니없이 관대한 처분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피해자는 법정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그 끔찍한 일을 가슴 아프게 묘사했다.

SNS에 전문이 공개된 이 12쪽짜리 진술서는 지난 6월 5일 이래 수백만 명이 열람했다. 문장 하나 하나가 비통하고 충격적이다. 사건 후 의식이 깨어났을 때부터 들것에 실려 가는 동안의 혼란스런 상태, 병원에서 받은 침습적이고 반복적인 성폭행 확인 검사, 자신이 성폭행을 당했으며 쓰레기가 널린 바닥 위에서 알몸으로 혼자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처참함. 그녀가 마음 속으로 그날 밤의 사건 경위를 짜맞추면서 느낀 고통이 단어마다 배어 있다. 가족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담담하게 알리면서 자신은 괜찮은 체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리느라 애썼다고 털어 놓았다. 재판 과정의 괴로움도 이야기했다. 검사와 피고 변호인의 질문을 예측하려고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자신의 답변이 ‘신빙성’ 있게 들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 다음 그녀는 피고 측의 터무니없는 변론을 듣는 고통과 함께 처절한 심경을 상세히 묘사했다. 진술서를 읽어 보면 그녀가 이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터너의 행위는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뒤집어놨다.

“그가 잃은 것은 수영선수 자격, 학위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오늘까지도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와 에너지, 시간과 자신감, 목소리를 빼앗아가고 있다.” 이 대목은 범죄를 저지른 남성은 법원에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지만 피해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은 평생 ‘현재진행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날 밤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 기억은 끔찍할 정도로 무거워 입도 뗄 수 없었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다. 누구하고도 마음을 나누지 못했다. 일이 끝나면 외딴 곳으로 차를 몰고 가 아무도 없을 때 소리를 지르곤 했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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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타 주 브리검영대학 성폭행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시위자. 학교에 피해자를 보호하라고 요구한다.

가해자인 터너의 아버지도 진술서를 작성했다. 그의 진술서는 아들의 죄를 경감시켜 판사가 관대한 처분을 내리도록 설득하기 위해 법정에 제출됐다. 이 글에서 그는 아들이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한 행위를 “고작 20분간의 행동”으로 치부하며 “아들의 인생은 앞으로 절대 그가 성취하고자 노력하고 꿈꿔왔던 대로 될 수 없게 됐으며, 그런 순간적인 행동으로 20년이 넘는 아들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은 너무 가혹한 대가”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아들의 성폭행을 ‘음주와 성적 문란의 위험’에 관한 교훈으로 생각한다고 썼다. 다시 말해 사건의 책임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리며 재판과 선고가 공격당한 여성보다는 오히려 자기 아들의 미래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는 뜻이다.

피해자의 진술이 성폭행으로 겪은 육체적·심리적 고통과 충격을 생생하게 보여줬다면 터너 어버지의 진술은 터너가 성장한 배경의 문화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영국에서도 여러 차례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랬지만 피해자가 비난받아 마땅하고 가해자는 명예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너무도 한심하다. 예를 들어 터너가 명문대학의 유망한 수영선수였다는 사실이 폭력적인 성폭행보다 더 중요하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미국과 영국의 대학 캠퍼스 성폭행은 계속 늘고 있다. 여학생의 안전은 물론 대학 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지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우리는 단지 학위를 따려고 대학에 가는 건 아니다. 대학은 젊은이들이 독립성을 기르고 정신적 성숙을 추구하며 이상적인 이성관계를 탐구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캠퍼스에서 여성이 안전하게 대학 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대학의 책임이 크다.

싱가포르국립대학(NUS)의 조사에 따르면 여학생은 다른 여성보다 성폭력을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영국에서 여성 7명 중 1명은 학창 시절에 신체적·성적 공격을 경험한다. 또 3분의 2 이상은 몸 더듬기, 노골적인 음란행위, 원치 않는 성적 언급 등 언어적·비언어적 희롱을 당한다.
동의에 따른 섹스, 건강한 관계, 성폭력에 관한 대화를 대학에 들어가서 시작하기는 너무 늦다. 이런 대화는 성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학교나 가정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스탠퍼드대학 사건은 그런 대화를 대학에서도 계속 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소년이나 남학생들이 피해 여성의 진술서를 읽으면 왜 성폭행의 85% 정도가 신고되지 않는지, 성폭력이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 수 있다. 또 터너 아버지의 주장은 인성 발달보다 수영선수로서의 성과를 중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터너는 그날 밤 상대방이 술에 취해 의식이 없다거나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의 행동을 멈출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결과 한 사람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됐다.

피해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 같은 피해자인 당신을 사람들이 의심하고 거부할 때 나는 당신 곁에 있겠다. 매일 당신을 위해서 싸우겠다. 당신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누구도 당신의 삶을 빼앗아 갈 자격은 없다. 모든 곳에 있는 여성이여, 나는 당신과 함께 있다.”

– 레이철 크리스

[ 필자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여성에 대한 폭력 근절(EVAW)’의 공동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