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져가는 IT 요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신설된 애플 스토어는 쇠락하는 왕국의 찬란한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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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신설된 애플 스토어는 권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사진은 애플 유니언 스퀘어 매장의 높이 12.8m짜리 초대형 유리문.

미국 샌프란시스코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새로 생긴 애플 스토어에 들어설 때 마치 로마 제국 말기의 어느 변방 전초기지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찬란했던 과거뿐 아니라 온갖 영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로마제국 치하 웨일즈의 허물어져가는 요새 말이다. 아이팟이 야구 미트 크기만하던 2003년 이후 애플이 최근 분기 처음으로 매출 감소를 기록하면서 애플의 전성시대도 결국 막을 내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다. 지난 1년 사이 애플의 중국 침공은 지지부진했고, 애플 CEO 팀 쿡은 알렉산더 대왕처럼 인도 정복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이 몰락했듯이 쿠퍼티노(애플 본사)도 쇠락을 맞았다.

이 신설 매장을 방문할 때마다 직원들로부터 애플 ‘최초의 글로벌 본점(first global flagship)’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슨 뜻인지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필시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리라. 한때 실리콘밸리의 가장 쾌활한 컴퓨터 천재 무리들 사이에서나 통용됐을 기업 전문용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샌프란시스코 매장의 이번 개장은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공동 창업한 먹음직스런 ‘애플’을 베어 문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사건이다. 애플 제품은 결코 단순한 전화기나 그냥 시계가 아니다. 그리고 애플 스토어는 그냥 상점이 아니다. 애플 스토어에서의 쇼핑은 일종의 글로벌한 참신함, 국경을 초월한 세련미를 시사한다. 소비자라는 느낌 없이 소비가 가능한 곳이다.

유니언 스퀘어 매장은 저명한 영국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회사가 애플 소매유통 팀장 안젤라 아렌츠와 공동 설계했다. 2004년 문을 연 인근 스탁턴 거리의 기존 매장을 대체한다. 샌프란시스코 고급 쇼핑가 한복판에 들어선 새 매장은 벌써부터 애플 제국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모두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는 야후의 루저들과는 전혀 다르다’. 반짝이는 건물 외벽, 녹색 티셔츠 차림의 쾌활한 직원들, 줄줄이 진열된 아이폰과 애플 워치 등 모두가 위대함을 이루는 조건들의 업데이트가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평가절하되지는 않는다고 안심시킨다.

하지만 그들의 연기는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유니언 스퀘어가 내려다 보이는 2층 발코니의 노트북 PC 센터를 두 차례 방문해 꽤 오랜 시간 머물렀다. 부분적으로 이 기사를 작성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애플이 신규 매장 개장에 맞춰 조성한 과장된 분위기의 연출이 왠지 모르게 약간 불편했다. 간단하면서도 뼈아픈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것이 끝인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전에는 애플의 과대선전에 기꺼이 넘어갔다. 갈리아를 정복하고 개선하는 카이사르에 열광하는 로마 시민처럼 최신 아이폰의 출시에 환호할 의사가 얼마든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최신 아이폰은 앞서 나왔던 모든 아이폰이 그랬듯이 내게 극도의 행복감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아이폰이 더는 나오지 않는 때가 온다면? 우리 모두가 안드로이드 또는 어떤 다른 보잘것없는 플랫폼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면? 휴대전화와 플랫폼이 아예 사라진다면? 스와이프(옆으로 넘기기)와 드래그(끌어서 옮기기)의 즐거움이 망막 움직임이나 뇌파로 대체될까? 내가 아는 세상이 과거지사가 될까?

이 최초의 글로벌 본점이 정말로 단순히 겉만 번지르르한 지하 제실에 불과할까?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 애플에도 일어난 듯했다. 애플이 늙은 것이다. 아직 꼬부랑 할아버지는 아니지만 애플 스토어에서의 쇼핑이 베스트 바이 전자제품 마켓에서의 쇼핑처럼 구식이 되는 때가 올 것이다. 베스트 바이가 구식이 된 건 물론 오로지 애플 스토어 때문이다. 라틴어 격언 중에 ‘Sic transit gloria mundi’라는 말이 있다. 풀이하자면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 잊혀질, 또는 적어도 공항 근처의 반쯤 빈 쇼핑센터처럼 될 운명을 타고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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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스퀘어 매장 ‘지니어스 바(기술지원 센터)’를 재단장한 ‘지니어스 숲’에서 제품을 사용해 보는 사람들.

‘포스터+파트너스’가 애플 스토어 내부 공간을 설계했다. 애플의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시대와 크게 동떨어진 부와 신분을 뽐낸다. 포스터는 런던의 스위스 리 재보험, 뉴욕의 허스트 타워 등 선량한 시민을 자처하는 기업 고객을 둔 건축가다. 다른 곳의 애플 스토어들을 설계했으며 실리콘밸리의 신축 애플 본부들을 디자인하는 중이다. 샌프란스시코의 ‘글로벌 본점’을 발표하면서 애플은 보도자료에서 회사의 디자인 귀재 존 아이브의 말을 인용했다. 그는 “장벽을 허물어 더 평등주의적이고 접근하기 쉽게 만든다”고 호언했다. 이는 애플의 유명한 1984년 TV 광고에 대한 영리한 암시인 듯하다. 광고에선 우상타파주의자가 거대한 스크린의 오웰 같은 인물을 향해 해머를 던진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고독한 반항아라기보다는 막강한 지도자에 훨씬 더 가깝다. 신규 매장은 회색 금속과 유리로 이뤄진 박스다. 주변 지구의 신고전주의 건축(neoclassical architecture, 장식과 경박함을 지양하고 장엄함과 숭고한 아름다움 추구)과 충돌한다. 상상력이 피어나기보다는 권위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애플도 언젠가는 해머를 맞지 않을까 의구심이 든다.

높이 12.8m의 초대형 유리문이 열리면 거리로 통하는 커다란 통로가 생기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개방된 문 앞에는 화분에 담긴 나무들이 늘어서 거리와 매장 사이의 흐름을 둔화시킨다. 안으로 들어서면 제1 매장 안에 서게 된다. 다른 모든 애플 스토어의 매장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구입 의사가 있다면 줄줄이 진열된 제품들을 맘껏 사용해봐도 좋다. 그리고 네브라스카 주 오마하에서 왔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왔든 이곳을 찾는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살 것처럼 보인다. 커뮤니티와 창의성을 내세우지만 이곳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윤 동기다.

2층은 큰 벽이 한복판을 가로지른 발코니인데 벽의 한쪽 면은 대형 비디오 화면 역할도 한다. 이곳에는 지니어스 바(기술지원 센터)를 재단장한 지니어스 숲이 있다. 포스터+파트너스는 보도자료에서 이를 ‘작은 숲 속의 더 느긋한 환경’이라고 자랑한다. 분명 좌석을 겸한 가죽 화분에 여덟 그루의 나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예 전문가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은 이 정도를 숲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처음 물었을 때 아보카도 나무라는 답변을 들었는데 오답이었지만 과카몰리(아보카도 요리)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두 번째 물었을 때 정답이 돌아왔다. 피쿠스(무화과나무과 고무나무)였다.

지니어스 예약 순번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동안 ‘애버뉴’의 상품들에 시선이 끌릴지 모른다. 애플의 달갑지 않은 전문용어에 따르면 ‘가로수 길을 따라 늘어선 쇼윈도 진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애석하게도 기껏 제3자 상품으로 채워진 선반에 지나지 않는다. 가로수 길을 원한다면 프랑스 파리 여행을 권한다. 아이폰만으로 모두 예약이 가능하니까.

발코니의 나머지 반쪽은 ‘포럼’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일종의 휴식 공간이다. 노트북 PC 작업을 하거나 애플 제품에 관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긴 테이블들이 놓여 있다. 직사각형 의자들도 있어 필시 소속된 스타트업 회사의 동료들과 회의를 하거나 ‘(메일) 수신함 제로(Inbox Zero)’로 불리는 득도의 방법에 관한 가르침을 들을 수 있다. 벤처 기업인들이 회의와 상담 목적으로 예약할 수 있는 ‘회의실(Boardroom)’도 있다. 화장실 옆 한 귀퉁이의 문 달린 공간이다. 루스 아사와(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분수가 있는 외부 공간(‘더 플라자’)은 매장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식물로 덮인 이른바 ‘살아 있는 벽(living walls)’은 혼란스런 느낌을 준다. 자연스럽다면 그렇게 수직적인 형태를 이룰 순 없다.

애플 제품들이 인간 공동체를 아주 효율적으로 해체했음을 감안할 때 ‘커뮤니티’를 조성하려는 애플의 노력에는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을 고독하게 하고, 없어서는 안될 아이폰 신호음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며 잠 못 들게 한다. ‘커뮤니티’를 내세워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수법은 더 날렵하고 단호한 애플이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허튼 수작(bullshit play)이다. 내가 아이폰에 애착을 갖는 것은 커뮤니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아이폰을 애용하는 이유는 정치 드라마 ‘비프(Veep)’를 스트리밍으로 시청하고, 책에 주를 달고, 11㎞ 상공을 비행하면서도 기사를 편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원했다면 나는 와인을 홀짝이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강좌에 등록할 것이다.

유니언 스퀘어 광장에 있는 새 애플 스토어의 발코니에 섰을 때 나무들 위로 광고판이 눈에 띄었다. 경쟁자들에게 따라잡힌 또 다른 미국 브랜드를 광고하고 있었다. 시장점유율은 여전하지만 그것은 젊은 가슴과 머리를 사로잡는 혁신보다는 과거의 유산에 더 가까웠다. 바로 버드 라이트 광고였다.

나는 얼마 동안 머물다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방문객들이 몸을 웅크린 채 줄줄이 진열된 번쩍이는 애플 기기들을 자신의 애플 단말기로 촬영하고 있었다. 지문으로 뒤덮인 그들의 단말기는 만족의 증거였다. 매장에는 쾌활한 움직임이 넘쳐 흘렀다. 삼성전자의 지속적인 인기? 가상현실의 부상? 착용형 기술의 도래? 모두 먼 훗날의 걱정거리였다. 여기, 찬란하게 빛나는 제국의 심장부에선 그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