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의 품격에 내 집의 편안함을

영국 런던의 마크스 클럽,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고려한 새단장으로 과거의 명성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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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 후 참신한 분위기로 바뀐 마크스 클럽의 ‘가든 룸’(왼쪽)과 ‘인디언 룸’.

영국 런던의 마크스 클럽이 새단장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스럽기도 했다. 버클리 광장 근처 찰스 거리에 있는 멋진 주택에 자리 잡은 이 회원제 클럽은 개인 주택처럼 보여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난 마크스 클럽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창업자 마크 벌리에게 직접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고급스러움과 편안함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그곳에는 새로움에서 오는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모후가 그곳을 좋아했던 이유도 그래서인 듯하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그 클럽이었다. 그녀가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뜰 때 방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일어서서 경의를 표했다.

그 방은 아주 호화로웠다. 암적색 벽에는 빅토리아 시대에 그랬듯이 그림과 사진이 빽빽이 걸렸다. 하지만 그 클럽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바와 내닫이창(벽면에서 일부분을 내밀어 만든 창) 중간에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작은 가죽 팔걸이 의자가 있었다. 그 의자에 앉으면 런던 메이페어 지역의 매혹적인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180㎝가 넘는 훤칠한 키에 옷을 아주 잘 입었던 벌리는 여성에게 인기 만점이었으며 품위가 넘쳤다. 스키 실력이 뛰어났고 귀족 자동차 경주 선수였던 그는 런던 사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프랑스인의 말마따나 ‘삶의 예술(art de vivre)’이라는 게 있다면 벌리는 그 방면의 피카소였다고 할까? 시가를 피웠던 그는 벨리니 칵테일에 들어간 복숭아 주스가 과일을 직접 손으로 짜서 넣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고 맞춤 양말에 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기꺼이 내줄 수 있을 정도로 식견이 넓었다. 그는 이언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를 축구장에서 난동 부리는 건달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기품이 있었다.

언젠가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건 적이 있는데 가정부가 “미스터 벌리는 쉬느라고 바빠서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고 알려줬다. 벌리는 휴식을 취하느라고 바쁠 때가 많았다. 그가 맞춤 제작한 에르메스 주사위놀이 세트 밑에 태피스트리 놀이판을 깔아놓았던 이유도 주사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쉬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벌리는 10년에 한 번씩 메이페어 지역에 자신의 스타일을 한껏 살린 클럽을 세웠다. 1960년대에 애너벨스 클럽을 연 이후 거의 10년 간격으로 마크스 클럽과 해리스 바, 배스&래키츠 클럽, 조지 클럽을 개업했다(이런 재능을 그의 아들 로빈이 이어받아 현재 커즌 거리 근처에서 5 허트포드 스트리트 클럽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 마크스 클럽은 벌리가 세운 클럽 중에 그의 집과 가장 흡사한 곳이다. 그림이 잔뜩 걸린 벽과 아름다운 꽃, 앉으면 빨려 들어갈 듯 편안한 소파, 친절한 직원들.

벌리는 2007년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이 운영하던 클럽들을 식당업자 리처드 케어링에게 팔았다. 다른 클럽들은 계속 번창했지만 마크스 클럽은 몇 년 후부터 빛을 잃은 듯 했다. 이유가 뭔지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난 그곳에 발길을 끊었다. 당시 마크스 클럽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던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오랜 회원인 피터 두벤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와 다르게 행동을 취했다.

두벤스는 케어링의 동업자가 돼서 그에게 클럽을 새로 단장하는 게 좋겠으며 그 일을 티노 저뷰다치에게 맡기자고 제안했다. 저뷰다치는 벌리의 세계를 알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다. 그의 아버지는 애너벨스 클럽의 창립 멤버였고 그도 벌리가 운영하던 클럽에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 역시 마크스 클럽에는 발길을 끊은 지 한참 됐다.

저뷰다치는 “마크스 클럽에 얼마나 변화를 줘야 할지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마크스 클럽처럼 역사가 깊은 곳은 대다수 고객이 너무 많이 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 오랜만에 그곳에 다시 갔는데 깜짝 놀랐다. 분위기가 칙칙해 하숙집이나 기숙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꼼꼼하게 손질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크스 클럽의 역사와 그곳을 특별하게 만든 것들을 되살릴 누군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난 우선 이 클럽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었다.”

입구 바로 안쪽의 홀 매니저를 위한 조그만 공간이 한 예다. 매니저는 그곳에 앉아 예약을 받고 회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요즘 클럽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공간인데 그냥 남겨두기로 했다. 그랬더니 모두가 좋아했다.” 그다음으로 남겨둔 것이 식당의 포추니 벽지와 계단의 윌리엄 모리스 벽지다.

하지만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손님들은 예약할 때 모두 레드 룸의 테이블을 원했다. 저뷰다치는 “뒤쪽 방으로 예약된 손님들은 학교에서 구석 자리로 쫓겨난 듯한 느낌을 받아 그 방을 특별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위층은 벽지가 너무 낡아서 흰 벨벳 천으로 참신한 분위기를 냈다.”

실내 흡연이 허용됐던 벌리의 시대 이후 사회가 변해 달라진 것들도 있다. 벌리가 시가 애연가였던 만큼 마크스 클럽에서 식후의 시가 흡연은 당연시됐다. 하지만 실내 흡연이 법으로 금지된 요즘 마크스 클럽은 런던에서 가장 쾌적한 시가 테라스를 갖췄다. 실제로 불을 피울 수 있는 벽난로가 있는 그곳은 야외에 있는 방처럼 느껴진다. 사무실과 개인용 식당은 회원들이 파티나 만찬을 열수 있는 매력적인 홀로 탈바꿈했다.

메뉴도 참신하게 바뀌었다. 실내장식과 마찬가지로 메뉴도 고전과 현대의 균형을 고려했다. 뭔가 수상한 재료를 쓴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맛있다고 정평이 난 치즈 수풀레 등 일부 메뉴는 그대로 남겨두고 몇몇 가벼운 요리가 추가됐다.

한 가지 트집을 잡자면 내가 좋아하던 낡은 가죽 팔걸이 의자가 새 의자로 바뀌었다(옛날 것은 너무 낡아 부서진 듯하다). 새 의자도 아주 좋지만 고색창연한 맛이 아쉽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