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에서 ‘제3의 길’ 찾다

이케다 국제창가학회 회장은 저서 ‘동양철학을 말한다’에서 다양한 가치를 지닌 문명 간의 대화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역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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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가 명예회장으로 있는 창가학회는 1928년 세워진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단체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88) 국제창가학회(SGI) 회장과 로케시 찬드라(89) 인도문화국제아카데미 이사장이 동양철학의 근본정신과 세계평화, 궁극의 인간혁명에 대해 다각도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전 세계가 전쟁과 무차별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 18년 전의 대담집을 보완해 엮은 신간 ‘동양철학을 말한다’는 지금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케다 회장은 1947년 19세의 나이로 창가학회(創價學會)에 가입한 이래 평생을 불교 연구와 실천에 바친 불교운동가다. 모스크바대, 볼로냐대, 나이로비대 등 세계 각국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세계 각 도시로부터 받은 명예시민 칭호도 무수히 많다. UN평화상, 간디평화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세계적인 석학이다. 2012년 저서 ‘감사합니다 한국’에서 한국을 “스승의 나라”라고 칭송하며 일본은 문화를 전해준 한국에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설파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용인시, 의왕시, 진주시, 충청북도 등으로부터 명예시민·도민으로 위촉됐다. 찬드라 박사는 불교에 관해 400권 이상의 저서를 집필한 불교 연구 분야의 저명한 학자다.

이케다 회장이 명예회장으로 있는 창가학회는 1928년 세워진 세계 최대 규모의 불교단체다. 일본 승려 니치렌(1222~82)이 주창한 불법(佛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한다. 창가학회의 초대회장은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마키구치 쓰네사부로(1871~1944)다. 마키구치 회장은 군국주의 일본이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가신도(國家神道) 체제로 돌입해 모든 종교에 신도 찬양을 강요할 때 단호히 이를 거부했다. 그는 1943년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라는 죄목으로 애제자 도다 조세이(1900~1958) 등 신도들과 함께 투옥됐으며, 혹독한 탄압을 받다가 이듬해 11월18일 결국 옥사했다. 도다는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풀려난 뒤 2대 회장이 돼 스승의 유지를 받들면서 창가학회 재건에 전념했다. 이케다 회장은 도다 회장의 뒤를 이어 3대 회장을 지냈다. 이케다 회장 시절 창가학회는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걸쳐 창가학회 이념과 교세를 확장시켰다.

창가란 말 그대로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다. 이케다 회장은 만연한 폭력, 환경오염 등 현대 사회의 문제는 곧 “물질적 가치라는 단일 가치관에 지배당한 20세기 지구문명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다양한 가치의 세계가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다양한 가치의 창조야말로 인생의 목적인 동시에 모든 문화의 내실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이 같은 가치 창조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두 대담자는 강조한다.

이케다 회장과 찬드라 박사가 입을 모아 비판하는 “물질적 가치”는 곧 과학기술에 기반한 서구 문명을 일컫는다. 이는 르네 데카르트, 프랜시스 베이컨 등 근대 유럽 철학자들에서 발원한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향한 비판이기도 하다. 이런 철학자들은 자연은 모두 수학적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인간의 정신만은 예외라고 믿었다. 심지어 데카르트는 살아 움직이는 동물조차도 인간과 같은 정신이 없으며 주어진 자극에 자동 반응하는 기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게 자연은 극복하고 개조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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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을 말한다 / 이케다 다이사쿠· 로케시 찬드라 지음 / 중앙북스 펴냄 / 1만2000원

현대 사회의 병폐는 이 같은 서구 문명이 다른 문명을 파괴하고 식민지로 만들면서 다양성을 말살한 데서 발생했다고 두 대담자는 지적한다. 헤겔, 랑케, 마르크스 등 근대 유럽 철학자들은 인류와 사회가 한 방향으로 진보한다는 역사관을 내세우면서 서구 문명이 그 역사에서 앞서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질 문명에 취한 서구 사회가 자신들의 문명을 가장 우월하다고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서양 이외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던 사회기구와 가치관은 멸시당하고 세계 시스템의 하위로 내몰렸다”고 찬드라 박사는 말한다.

이렇게 멸시당한 가치관 가운데 하나가 자연과의 조화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동양의 문화, 특히 불교 문화다. 두 대담자는 그동안 서구 문물에 가려 빛을 잃었던 동양의 사상에 현대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제목이 ‘동양철학을 말한다’인 이유다. 인간과 자연, 자아와 타아(他我)를 철저히 구분하고 전자가 후자를 배척하는 배경을 제공한 서구 물질문명과 달리 동양 사상에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현대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려면 21세기는 “동양이 서양의 지표를 추구한 시대에서 서양이 동양의 지표를 추구하는 시대로 변화해야 한다”고 두 대담자는 주장한다.

다양성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 다양성은 각 문화에 내재된 파괴적인 측면을 가리는 도구로 사용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근거로 종교를 내세우며, 이슬람 문화권에 만연한 여성 탄압은 종종 문화적 상대성이라는 말로 왜곡된다. 민주주의, 인권 등 우리가 보편적이라고 느끼는 가치들도 일부 문화권에선 서구 문물에서 비롯된 남의 문물이라는 이유로 배척되기도 한다. 다양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가 공감하고 함께 영위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도 필요한 이유다. 이케다 회장은 이를 “대원리로 일원화된 세계도 아니고 모자이크처럼 분단된 세계도 아닌, 다양성 속에서의 조화라는 제3의 길”이라고 설명한다.

이케다 회장은 이 제3의 길을 가기 위해선 다양한 가치를 지닌 문명 간의 대화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문명, 종교, 민족의 가치관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진리’가 있음”을 강조하며 “문명 간의 대화만이” 창조적 문명을 만들어내는 열쇠라는 것이다. 그가 평생에 걸쳐 아놀드 토인비 등 수많은 세계적 석학들과 대담을 갖고 50여 권의 대담집을 펴낸 이유다.

문명 간의 대화는 기원전부터 시작됐다. 기원전 3세기 무렵 불교 신자들은 상인들의 배를 타고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 그리스인, 시리아인, 유대인과 교류했다. 기원전 2세기 중반 무렵 그리스의 왕 메난드로스와 불교 수행자 나가세나가 나눈 철학 대화 기록도 남아 있다. 150년 경 출생해 활동한 초기 기독교 사상가 클레멘스의 저작물에는 서양 사상사에서 최초로 부처가 언급되기도 한다. 두 대담자는 이처럼 다양한 문헌과 사례를 들어 불교가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의 사상 정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 설득력 있게 조명한다.

– 이 기 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