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공유에서 열정 공유로

가상·증강현실은 군중 노리는 테러 방지하고 스포츠나 공연 백배 즐기며 시위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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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R 기술은 세계 어디서든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물리적으로 함께 있지 않아도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

요즘은 사람 모이는 곳에 가는 것이 주먹다짐에 끼어드는 것이나 결혼식 후에야 첫 섹스를 하는 것만큼 시대에 뒤지고 위험한 시대다. 무차별 살상을 노리는 테러는 사람 모이는 곳을 표적으로 삼고,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AR) 같은 기술은 구태여 사람들이 물리적으로 모일 필요가 없도록 해준다. 따라서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이 위험하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행사나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한 장소에 살과 피를 가진 수십만 명이 모이는 것은 커피 내리는 기계나 천 기저귀처럼 한물간 개념이 됐다. 군중에 합류하는 위험과 비용이 너무 커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서서히 현실화되는 대안 중 하나가 우리가 한곳에 모여야 하는 당위성을 거의 충족시켜줄 수 있다. 기술이 실제 군중을 ‘분산(distributed) 군중’으로 대체해준다는 뜻이다.

요즘 각광 받는 VR과 AR 기술이 그런 것을 가능케 해준다. 대형화면 TV와 스트리밍 영화가 극장에 가지 않고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해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실제 전쟁에 따른 사상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적다. 실제로 우리가 전쟁을 치를 확률도 이전보다 훨씬 작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우리가 전쟁에 나서는 게 아니라 거꾸로 전쟁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한곳에 모여든 사람이 그런 전쟁의 선호하는 표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테러, 아니면 최소한 무작위 대량살상의 확산이 군중에 합류하는 비용과 위험을 극도로 높이는 현실이다. 생각해보라. 지난 7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혁명기념일 ‘바스티유의 날’ 불꽃놀이를 즐기려고 수천 명이 해변에 모였을 때 한 외로운 미치광이가 대형 트럭을 몰고 그들 사이로 돌진해 84명이 숨졌다. 그 약 한 달 전엔 미국 플로리다 주 올랜도의 한 나이트클럽에 수백 명이 모여 춤추고 있을 때 또 다른 한 미치광이가 자동소총을 난사해 49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29일엔 터키 이스탄불의 붐비는 국제공항에서 공격자 3명이 4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런 끔찍한 뉴스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제는 어디나 테러의 표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만 가면 안전을 우려한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리는 새해 전야 행사처럼 잘 알려진 행사든 작은 도시의 공연장이든 경기장·쇼핑몰·축제 행진이든 군중이 있는 곳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당국은 검문을 늘리고 바리케이드와 금속탐지기를 설치해 보안을 강화한다며 우리가 한곳에 모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거기에 드는 시간과 에너지 같은 비용이 우리가 군중에서 벗어나야 할 또 다른 이유다. 그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올림픽이 열리는 브라질은 테러 위협만이 아니라 지카 바이러스와 정정 불안 같은 다른 요인까지 겹쳐 난리다. 그래서 올림픽 팬마저 대회장에서 군중에 합류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 추세가 지속되면(계속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 더 많은 사람이 군중을 피하려 할 것이다. 다른 사람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를 다른 식으로 충족시키려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바로 그 측면에서 기술의 효용성이 빛난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VR과 AR은 공상과학 영화와 기술광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다가 VR 전문업체 오큘러스(2014년 페이스북이 20억 달러에 인수했다)가 지난 3월 첫 VR 헤드셋을 시판했다. 처음으로 VR 기술이 상용화될 만한 수준에 올랐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그 헤드셋을 착용하면 시베리아의 얼어붙은 영구동토나 우주선 안에 실제로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오큘러스의 모험은 아직 비디오게임처럼 보이지만 기술 전문가들은 거기서 현실과 똑같은 가상 세계로 통하는 길을 본다. 그러면서 투자자와 기술 인재들이 VR로 향한다.

한 추정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스타트업들과 페이스북·마이크로소프트·HTC·구글 같은 대기업이 VR 개발에 쏟아부은 자금이 20억 달러가 넘는다. 그 결과 개발 속도가 매우 빨라졌다. 오큘러스 출신으로 VR 스타트업 펜로즈 스튜디오를 설립한 유진 청은 “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1~2년으로 압축됐다”고 말했다.

스포츠 구단주들은 프로 스포츠의 미래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VR 헤드셋을 쓰고 마치 더그 아웃에 있는 것처럼 야구 경기를 구경하라. 눈이나 머리를 움직여 선수의 동작을 따라 하라. 실제 야구장 관람석의 현실과 거의 같거나 어쩌면 더 효과적인 관람이 가능하다. 그런 식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다면 구태여 야구장에 갈 이유가 있겠는가?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씨름하고, 무더운 날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관람석에 앉아 땀 흘리며 비싼 맥주 사 마시면서 경기를 지켜볼 필요가 없다.

콘서트나 ‘바스티유의 날’ 불꽃놀이의 VR 버전을 상상해보라. 테러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게다가 페이스북 같은 회사가 참여하면 VR에 SNS 요소도 더해진다. 궁극적으로 VR에서도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경기나 공연을 관람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면 가상이지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 사용자가 찾아가는 게 아니라 공유하고 싶은 경험이 사용자를 찾아온다. 미치광이 괴한이 주변에 있는지 걱정하는 대신 헤드셋을 쓰고 집안을 돌아다니며 고양이만 밟지 않도록 주의하면 된다.

일부는 VR보다 AR이 더 우세할 것이라고 믿는다. AR은 사용자 주변의 현실 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혼합한다. 포켓몬 고 게임은 AR의 가장 기초적인 버전이다. 그러나 그 덕분에 수천만 명이 AR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포켓몬 고 게임은 현실 세계의 배경에 포켓몬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예를 들면 인근 호텔의 풀장에 스쿼틀이 나타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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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8일 프랑스 니스에서 트럭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군중. VR·AR 기술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

진정으로 놀라운 AR은 매직립 같은 회사에서 나올 것이다. 그 기술을 이용하면 회의실에서 AR 안경을 쓰고 전 세계에 흩어진 동료들이 실제로 옆자리에 와서 앉아 있는 듯이 회의를 할 수 있다. 마치 현실처럼 동료들이 회의에 집중하는 체하면서 테이블 아래서 스마트폰으로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까지 볼 수 있다.

VR과 AR은 시위의 성격도 바꿔 놓을 수 있다. 1989년 중국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수천 명이 모여 독재 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많은 시위자가 모여 세계의 이목을 끌었지만 그처럼 시위대가 밀집했기 때문에 그들은 진압군의 손쉬운 표적이 됐다. 앞으로는 시위대가 AR에 의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수백만 명이 AR 기술을 통해 혼자서나 소규모 집단으로 동시에 마을 광장으로 가서 그곳에 모여 있는 듯한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고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세계 곳곳의 동조자들이 AR을 통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 군중의 규모는 거대하지만 실제는 분산됐다는 뜻이다. 정면 공격으론 도저히 진압할 수 없는 시위다.

그렇다면 그런 가상적이고 분산된 군중의 감정과 정치적 힘도 실제와 같을 수 있을까? 일부 전문가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군중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한 공간을 점유하는 게 아니라 결집하는 열정과 관심이다. 저술가 로버트 캐플런이 블로그 ‘글로벌 어페어’에 썼듯이 ‘독재 정권에 나홀로 저항하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상의 지지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효과는 크다. ‘그런 인식이 사기를 진작시켜 용기와 독립적인 힘이 생긴다. 열정을 공유하는 모두에게서 그런 힘이 한꺼번에 흘러나오기 때문에 개인은 그들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효과적인 시위가 되려면 곁에 있는 사람이 현실에서처럼 당신과 연결돼야 한다. 하지만 기술이 그것을 가능케 해준다면 시위자들이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물론 군중이 시대에 뒤져 쓸모없어진다면 물리적인 세계에 문제가 될 것이다. 팬들이 전부 가상으로 경기를 구경해 야구팀이 텅 빈 구장에서 경기를 해도 예전의 그 야구와 느낌이 같을까? 또 군중의 어떻게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프랑스 니스의 주민들은 ‘바스티유의 날’ 불꽃놀이에 참석함으로써 지역사회와 국가의 일원임을 재확인했다. 그런 유대감 형성은 세계 어디서나 지방 행사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무리 VR과 AR이 발달해도 그런 행사에는 실제로 참석하는 게 더 중요한 듯하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