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는 ‘패션의 성지’

창립 70주년 맞는 크리스찬 디올, 지난해 서울에 이어 런던에 대형 매장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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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새로 문을 연 크리스찬 디올 매장은 가정용품부터 핸드백과 구두, 드레스까지 다양한 상품을 갖췄다.

크리스찬 디올의 시드니 톨레다노 CEO가 모회사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일화를 들려줬다. “아르노 회장이 언젠가 미국 뉴욕에 갔을 때 택시를 타고 운전기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기사는 프랑스 대통령의 이름은 몰라도 크리스찬 디올은 안다고 했다.” 그 이야기는 톨레다노 CEO에게 크리스찬 디올이 단순한 패션하우스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지난 6월 톨레다노 CEO가 영국 런던 본드 거리에 문을 연 크리스찬 디올의 새 매장에 가보면 그런 사실이 더 분명해진다. “우리는 이곳을 크리스찬 디올의 세계를 대표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 베이비 디올과 가정용품, 남성복 등등.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한 지붕 아래 모아놓았다. 프랑스 파리 몽테뉴 거리에 있는 디올 본점처럼 말이다. 하지만 런던 매장은 VIP 룸이 더 많아 장소가 더 넓다. VIP 고객은 한번 매장을 방문하면 2~3시간씩 머무르면서 쇼핑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런던의 새 매장 규모가 큰 또 다른 이유는 “고객이 자주 방문해 더 많은 상품을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정말 볼거리가 많다. 가정용품, 주사위 놀이 세트, 남성용 악어가죽 코트, 미술가 마크 퀸이 디자인한 핸드백, 퀸과 토니 크래그 등의 미술 작품, 손으로 바느질한 베개, 여성용 구두와 드레스 등등. 파리의 본점이 무색할 정도로 다양한 상품을 갖췄다.

디올의 새 매장이 문을 연 곳은 런던뿐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 ‘하우스 오브 디올’도 개점했다. 서울 매장의 맨 위층에는 제과업계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피에르 에르메와 공동 운영하는 ‘카페 디올’이 있다. 내년에는 런던과 같은 규모의 매장이 일본에 문을 연다. 경제 전망이 불투명하고 세상이 점점 더 온라인화하는 시점에 크리스찬 디올은 오프라인 매장에 투자한다.

톨레다노 CEO도 인터넷의 힘과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인 경험의 중요성 또한 믿는다. 그가 가정용품 부문에 특히 자부심을 갖는 이유다. “사람들은 인테리어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 옷과 백, 구두를 웬만큼 장만하고 나면 그 다음엔 어디에 돈을 쓰겠는가? 집을 장식하고 친구들을 초대하는 데 투자한다.” 런던 매장에 전시되는 상품은 파리 본점과 차이가 있다. 대다수 유명 브랜드의 매장이 어디를 가나 비슷한 상품들을 선보이는 것과 달리 크리스찬 디올은 매장마다 독특한 개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크리스찬 디올의 창업자인 크리스티앙 디올가 패션업계에서 활동한 기간은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설립한 회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션하우스가 됐다. 여성복뿐 아니라 향수와 남성용 액세서리,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사업을 확장한 그의 선견지명 덕분이다. 디올은 해외 홍보 여행을 많이 다녔고 프랑스 이외의 여러 지역에 매장을 열었다. 런던 매장의 미술작품 전시도 1920년대에 갤러리를 소유했던 디올의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디올은 1947년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1945~46년의 파리는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다”고 톨레다노 CEO는 말했다. “난 1951년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났는데 여섯 살 되던 해인 1957년 디올가 세상을 떠났을 때를 기억한다. 당시 카사블랑카에서도 디올의 죽음은 큰 사건이었다.” 톨레다노 CEO의 어머니는 디올의 고객이었다. “디올은 프랑스의 우아함과 여성성,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의 밝은 분위기를 대표했다.”

그 후 프랑스 정권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크리스찬 디올은 남았다. 톨레다노 CEO는 자신이 세계적인 사업체의 운영자일 뿐 아니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가적 기념물의 관리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오트 쿠튀르 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오트 쿠튀르 부문은 예전에 비해 크리스찬 디올 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하게 줄었지만 그는 그것을 단지 과거의 유산으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톨레다노 CEO는 오트 쿠튀르를 포뮬러 원(F1) 경주용 자동차에 비유했다. “F1 자동차가 평상시에 많이 팔리진 않지만 그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오트 쿠튀르는 크리스찬 디올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창조적 과정의 바탕이다. 톨레다노 CEO는 15분짜리 패션쇼가 런던 매장 건설 같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5년짜리 프로젝트보다 더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매장을 열 때는 그 전날 쇼윈도의 상품부터 조명까지 모든 걸 꼼꼼하게 확인한다. 하지만 패션쇼는 아무리 재능 있는 인기 디자이너와 함께해도 늘 위험 부담이 있다. 15분 안에 사람들에게 확신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매장은 다음날 미비한 부분을 수정할 수 있지만 패션쇼는 다르다.”

톨레다노는 크리스찬 디올의 CEO로 취임한 1998년 첫 번째 패션쇼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해 봄·여름 컬렉션의 주제는 증기기관차였다. 패션쇼가 파리 오스테를리츠 역에서 열렸는데 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졌다. “2시간 정도 지체된 후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기관차를 타고 나타났다”고 톨레다노 CEO는 설명했다. “분위기가 환상적이었다. 기관차가 멈추고 모델들이 걸어 나왔는데 마치 5분 간의 마술 같았다. 상당히 성공적인 컬렉션이었다. 그 순간은 내 머릿속에 각인됐을 뿐 아니라 패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갈리아노는 파리의 한 바에서 반유대적 발언을 한 뒤 크리스찬 디올에서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났다. 톨레다노 CEO는 갈리아노 문제를 침착하게 처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려면 신경 쓸 일이 많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갈리아노의 후임 라프 시몬스가 회사를 떠난 뒤 톨레다노 CEO가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도 과거의 경험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

톨레다노 CEO는 앞으로 한 해 동안 바쁘게 지낼 듯하다. 새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메종 디올’ 창립 70주년 기념행사도 감독해야 한다. 또 크리스찬 디오올은 파리에 새로운 고급 보석 매장을 열고 본점 리모델링 작업도 할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런던 매장이 성황리에 문을 연 뒤 그는 크리스찬 디올의 시작 지점인 파리 본점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리는 크리스찬 디올의 고향”이라고 그가 말했다. “이 위에 아틀리에가 있었다. 그곳에 갈 때마다 1958년 내가 처음 파리에 왔을 때 맡았던 냄새가 난다.” 크리스찬 디올의 진정한 주인공이었던 디자이너들이 한결같이 느꼈던 감정이다. “그들이 모두 프랑스인은 아니다”고 톨레다노 CEO는 말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프랑스의 힘을 느꼈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