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몸짓은 시간을 초월한다”

에이즈에 관한 무용극으로 논란 일으킨 안무가 겸 무용가 빌 T 존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젊은 여성의 이야기 무대에 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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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를 주제로 한 존스의 작품 ‘아직/여기에’는 ‘희생자 예술’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는 미국 사회로 하여금 이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빌 T 존스/아니 제인 무용단은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신작 무용극 ‘내 조카 프리티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to My Nephew/Pretty)’를 공연했다. 빌 T 존스(63)의 조카 랜스 T 브릭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존스는 조카를 이렇게 묘사했다. “46세의 핸섬한 흑인 남성으로 모델이자 무용수, 성매매업 종사자, 코카인 중독자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병들어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존스의 이름을 무용계 밖까지 알린 작품은 1994년 무대에 올리기 시작한 무용극 ‘아직/여기에(Still/Here)’다. 에이즈 등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다룬 작품으로 실존인물들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해 논란을 일으켰다.

하지만 존스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난 무용단과 함께 유럽에 도착했다. 에펠탑과 시리아 난민 위기, 볼티모어 폭동(지난해 4월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대규모 흑인 폭동) 당시의 불타는 자동차 사진을 들고.” 그는 공연을 끝내고 단원들과 함께 뒷풀이하는 자리에서 11·13 파리 테러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이 어려운 시대를 이해하려고 몸부림치는 예술작품에서 빠져 나와 그 시대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안무가이자 감독인 존스는 최근 또 다시 자신의 최신작 속으로 걸어 들어갈 채비를 한다. 지난해 미국 뉴저지주 몬트클레어의 캐서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어낼로지/도라(Analogy/Dora: Tramontane)’가 오는 3월 10일 샌프란시스코 예버 부에나 예술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프랑스 점령기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프랑스계 유대인 간호사 도라 아멜랑(95)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도라는 현재 존스의 파트너인 디자이너 비요른 아멜랑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비요른이 디자인한 이동식 구조물(무대 위에서 집과 가축 운반차로 쓰인다)을 배경으로 존스의 무용단이 펼치는 우아한 공연 사이사이 도라의 이야기에서 발췌한 내용이 낭독된다.

존스는 당초 비요른과 그의 남자형제 로니에게 어머니의 구술 역사를 선물로 주려고 도라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라의 이야기를 듣다가 작품 소재로 찾던 요소가 그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수십 년의 세월과 세계대전들을 배경으로 실화와 허구를 넘나드는 W G 세볼드의 소설 ‘이민자들(The Emigrants)’에서 영감을 얻어 3부작 무용극 제작에 착수했다. 1부는 도라의 여행, 2부는 조카 랜스에게 초점을 맞춘다.

존스는 뉴욕 자택에서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1939년 벨기에 해변가의 산책로에 관해 뭘 알겠는가? 도라는 17세 소녀 시절 그 길에 있는 카지노에서 게임을 하면서 처음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을 들었다. 또 전시에 등화관제로 암흑 천지가 된 앤트워프에 관해 내가 뭘 알겠는가? 그녀의 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프랑스 비시에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는 그 시절 프랑스 노동자들이 허기를 달랠 때 그랬듯이 레드 와인 한 잔과 카망베르 치즈를 먹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내게 감동을 줬다.”

관객은 도라의 용기에 감동 받는다. 도라의 가족이 벨기에에 살고 있을 때 나치가 침공했고 어머니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당시 10대 소녀였던 도라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비시 정권 하의 프랑스로 도망쳤다. 그녀는 또 1942년부터 프랑스 인도주의 기관 OSE(이 기관은 많은 유대인 난민의 목숨을 구했다)에서 일했다.

도라는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나치 포로수용소로 음식(그녀에 따르면 대부분이 퀘이커 교도가 기부한 것이다)을 날랐다. 여러 무용수가 돌아가며 당시 그녀가 목격한 수용소 광경을 묘사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땟국이 줄줄 흐르는 (포로들의) 몸, 악취 나는 화장실, 벌어진 상처.’ 도라는 언젠가 자신이 막사로 나르던 음식을 땅바닥에 쏟았을 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포로들은 언제나 숟가락을 한 개씩 갖고 있었는데 내가 음식을 쏟자 그들은 땅바닥에 달려들어 흙투성이가 된 음식을 퍼먹었다. 그 광경이 잊혀지지 않는다.”

나치가 프랑스에 억류됐던 포로들을 폴란드의 집단처형장으로 이송하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하면서 도라의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10대를 갓 넘긴 도라 같은 구호요원들은 어린이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수용소 측에 호소했다. 하지만 나치가 (포로 이송) 할당량을 정해놓아 어린이들을 보내지 않으면 누군가가 대신 가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바드대학에서 이 작품의 중간발표회를 했을 때 사람들은 도라의 이야기에 감동받았지만 그녀에게 자신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점을 꼭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다”고 존스는 말했다. 특히 존스의 유대인 친구 대다수는 그녀가 나치 협력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난 도라에게 ‘사람들이 격리되고 그중 일부는 강제 이송되리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을 수밖에 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뭘 할 수 있었겠나? 난 그냥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고 대답했다. 과장되지 않고 정직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 물으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할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밤에 담장이라도 넘어 그들을 구하려 했을까?’”

존스는 그 나름대로 호된 비난을 들었다. 뉴욕 댄스 시어터 워크숍(DTW) 극장의 감독을 지낸 데이비드 화이트는 “1988년 사업 동지이자 동성애 파트너였던 아니 제인이 에이즈로 사망한 뒤 존스는 ‘세상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에이즈 예술가라’는 짐을 짊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제인의 죽음이라는 렌즈를 통해 그는 소리와 근육을 혼합해 놀라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경이로운 존재에서 한 시대의 비극을 떠안은 사람으로 탈바꿈했다.”

존스가 제인과 함께 한 작업은 개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화이트 감독이 그들에게 의뢰한 작품들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지역에서 제목을 따왔다). 그리고 1980년대에 흑백 게이 커플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파고들었다. 파트너를 잃은 상실감과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사실(존스는 HIV 양성 판정을 받았다)이 존스의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된 듯하다. 1990년대 초 그는 미국 11개 도시를 돌며 에이즈와 암, 낭포성 섬유종 등 치명적인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직/여기에’의 밑바탕이 됐다.

존스는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과 사랑하는 게 뭔지 물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대다수가 전에 춤을 춰본 적이 없다)에게 “당신의 인생을 한 가지 단순한 동작으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동작들은 존스 무용단의 공연 안무에 이용됐고 그가 만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도 공연의 일부가 됐다.

존스는 1997년 PBS 방송에서 이 작품에 관한 특별 프로그램을 제작한 빌 모이어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이 (HIV 양성 판정을 받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으로서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초침이 째깍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면서 내 생의 이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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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낼로지/도라’에서 존스는 프랑스의 나치 점령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프랑스계 유대인 간호사 이야기를 다룬다.

‘아직/여기에’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모이어스는 ‘20세기 무용의 획기적 작품’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뉴요커지의 무용 평론가 알렌 크로스는 이 작품을 소위 ‘희생자 예술(victim art)’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녀는 심지어 이 작품을 보지도 않았다. 크로스는 1994년 12월 26일 자신의 칼럼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난 빌 T 존스의 ‘아직/여기에’를 보지 않았으며 거기에 대한 평론을 쓸 계획도 없다.’

그녀는 이 작품이 실제 희생자들의 이미지를 사용해 관객의 감정을 조종하려는 이른바 ‘예술의 병적 측면(pathology in art)’을 드러낸다고 덧붙이면서 자신이 그런 작품을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크로스는 희생자들의 이미지가 포함된 이 작품은 비평의 대상조차 될 수 없으며 관객이 ‘경멸 받는 흑인과 학대 받는 여성, 권리를 박탈당한 동성애자’에게 동정심을 느끼도록 강요당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이 충격적인 칼럼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뉴요커지에는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수많은 편지가 쏟아졌다. 예술계는 전반적으로 존스 편에 섰다. 크로스는 존스뿐 아니라 로버트 매플소프의 사진과 피나 바우슈의 안무도 감상적인 ‘희생자 예술’의 예로 꼽았다.

크로스는 자신의 칼럼이 공격을 받자 수정의 여지가 있다고 한발 뒤로 물러섰고 존스는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존스는 뮤지컬 ‘펠라(Fela)!’의 안무로 토니상과 오비(Obie)상을, ‘스프링 어웨이크닝(Spring Awakening)’으로 토니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미국예술훈장을 받았다. 존스는 에이즈를 주제로 한 작품이 ‘희생자 예술’이라는 일부의 시각으로 수십 년 동안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미국 사회로 하여금 그 문제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존스는 “도라를 희생자로 보느냐”고 스스로 묻고 답했다.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라의 균형감각과 용기, 명확성, 그리고 냉철한 이성을 생각할 때 어떤 의미에서 그녀는 승리자다. 도라는 물론 크나큰 고통을 받았지만 난 그녀가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불평조차 하지 않는다. 그녀는 암으로 죽어가는 어머니의 끔찍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아편틴크(아편으로 만든 약물)를 구하려고 등화관제로 암흑 천지가 된 앤트워프 거리를 달렸다. 거리가 너무도 조용해 자신의 발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고 했다. … 도라는 세상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열아홉 살 때 그녀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존스는 정치운동에도 발을 담갔지만 스스로 형식주의자라고 여긴다. 예버 부에나 예술센터의 프로그램 책임자인 시낭송 예술가 마크 바무티 조셉은 “존스는 인종을 뛰어넘은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의 몸에는 자신의 역사, 아니 미국과 지구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감독과 안무가로서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몸짓으로 나타난다. 몸짓은 시간을 초월한다.”

현재 존스와 조셉은 작곡가 대니얼 루메인과 협업으로 힙합 오페라 ‘우리는 움직이지 않으리(We Shall Not Be Moved)’를 제작 중이다. 필라델피아 오페라단이 공연할 이 작품은 현재 필라델피아주의 교육 체계와 흑인해방 단체 MOVE(1985년 필라델피아 경찰은 무장 대치 끝에 이 단체의 본부 건물을 폭파시켰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존스는 조셉에게 가사를 설교조로 쓰지 말라고 압력을 넣었다고 말했다.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좋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써도 설교는 싫다”고 존스는 말했다.

존스가 이렇게 설교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도라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자신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 말한다. “난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젊은 여성에게 초점을 맞추려 했다. 하지만 모든 젊은 여성이 그렇게 용감하고 침착할까? 기차에서 나치가 여권을 보여 달라고 할 때 유대인의 신분이 드러나는데도 당당하게 내밀 수 있을까? 도라는 그 끔찍한 전쟁을 겪고도 사람이 천성적으로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난 아직도 흑인 노예제도에 대한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 션 엘더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