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사냥복이 탄생시킨 명품

사냥용 재킷과 카디건을 겸한 ‘테바 재킷’의 원조인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남성복점 ‘벨 이 시아’의 역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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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이 시아의 테바 재킷은 카디건과 셔츠, 스포츠 재킷을 혼합해 놓은 듯한 제품이다.

스페인은 남성복 하면 금세 떠오르는 나라는 아니다. 제일 먼저 영국, 그 다음으로는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스페인은 그동안 이 부문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듯하다. 발베 가문이 운영하는 바르셀로나의 우아한 남성복점 ‘벨 이 시아(Bel y Cia, 이하 벨)’를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1842년 문을 연 벨은 원래 셔츠 전문점이었다. 하지만 1990년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셔츠가 아니라 ‘테바(Teba)’라고 불리는 스포츠 재킷 겸 카디건을 사기 위해서였다.

남성 패션에서 우아함의 추구는 종종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다. 허리를 약간 들어가게 만들고 칼라의 윗부분에 벨벳을 댄 남성용 오버코트 체스터필드 코트는 영국의 체스터필드 백작에게서, 웰링턴 부츠는 철의 공작 웰링턴에게서, 벨을 비롯한 스페인의 유명 남성복점에서 판매하는 독특한 스포츠웨어 테바는 스페인 귀족 테바 백작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테바는 사격의 명수였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언젠가 사냥터에서 알폰소 13세 스페인 국왕(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과 함께 20세기 군주 중 베스트 드레서로 꼽힌다)이 입은 옷에 관심을 보였다. 알폰소 국왕은 이 유망한 사격수에게 그 옷을 선물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인 1940년대 초 테바 백작은 2명의 친구(카랄트 백작과 엔리케 마이어)와 함께 사냥에 나섰고 세 사람은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 자리에서 국왕의 사냥용 재킷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당시 알폰소 13세 국왕은 스페인 내전 후 망명 중이었다). 세 친구는 그 재킷을 다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들 모두가 벨의 고객이었기 때문에 그 상점에 그것과 똑같은 옷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앞쪽에 패치 포켓(patch pocket, 겉에 옷감을 덧대 만드는 주머니)이 달린 모직 재킷으로 궂은 날씨에는 목 둘레의 단추를 잠글 수 있다. 하지만 평상시에는 스프레드 칼라(깃이 벌어진 각도가 넓은 스타일)로 입을 수 있으며 스포츠 재킷 같은 느낌을 준다. 소매 부분을 단추로 여밀 수 있는 배럴 커프스와 일자형 밑단이 특징이다.

이 테바 재킷은 큰 인기를 끌었으며 사냥용이라는 원래의 용도를 뛰어넘어 널리 이용됐다. 편안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듯 보이는 이 옷은 BCBG(클래식하고 단정한 스타일)를 추구하는 프랑스 상류계층이나 미국의 프레피(preppies, 사립 명문고 출신의 멋쟁이)와 같은 유형의 스페인 사람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린다. 실생활에서 테바 재킷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이베리아 반도에서 비행기 비즈니스석에 탑승해 보라.

만약 스페인에서 스위스 제네바까지 가는 비행기에 탔다면 집안 대대로 벨을 운영해 온 발베 가문의 최근 세대 다니엘 발베를 만날 수도 있다. 2008년 그는 제네바의 올드 타운(도로에 자갈이 깔려 있고 광장에 카페의 테이블들이 놓인 멋진 곳이다)에 매력적인 매장을 열었다. 요즘 벨은 양복과 셔츠 전문점을 뛰어넘어 기성복과 액세서리, 선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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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이 시아의 원단 견본책. 울-캐시미워 원단(왼쪽)과 여름용 리넨 원단.

벨의 테바 재킷은 맞춤과 기성복 모두 가능하다. 요즘은 모직 소재의 겨울용뿐 아니라 리넨으로 만든 제품도 나와 여름에도 입을 수 있다. 리넨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벨은 최고의 여름용 셔츠로 꼽힐 만한 제품을 완성했다. 테바는 카디건과 셔츠, 스포츠 재킷을 혼합해 놓은 듯한 아이템으로 이 셔츠는 폴로 셔츠와 버튼다운 스타일, 파자마 칼라의 혼합형이다. 폴로 셔츠처럼 단추가 가슴 중간까지 달려 있지만 소매가 길며 칼라에 단추가 없어 파자마 칼라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깃의 각도가 일반 파자마 칼라와 달리 넓게 벌어지지 않으며 버튼다운 스타일로 자연스럽다. 스타일이 매혹적일 뿐 아니라 가슴 부분에 주머니가 달려 실용적이다.

벨은 자체 생산한 의류뿐 아니라 선글라스와 에드워드 그린의 클래식한 구두, 캐시미어처럼 부드러운 사슴가죽 배낭, 매니큐어 세트, 아프리카산 영양의 뿔로 만든 화려한 구둣주걱 등도 판매한다.

요즘은 특정 고객을 고려해 ‘엄선한(edited)’ 제품을 취급하는 남성복 상점이 유행이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닌 듯하다. 예전에도 상점주가 자신이나 고객의 취향을 바탕으로 엄선해 사들인 의상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았다. 이런 유형의 사업에 새롭게 뛰어든 남성복 상점들이 유서 깊은 상점 벨의 안목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듯하다.

– 니컬러스 포크스 NEWSWEEK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