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징검다리에서 만나는 난민들

예멘인은 내전에서 도망치기 위해, 에티오피아인은 가뭄을 피해 예멘으로 가려고 사막국가 지부티의 난민촌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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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부티 오보크의 예멘 난민촌에 머무는 예멘 출신의 아보 바크르 무함마드(12).

시신 한 구가 도로변에 놓여 있었다. 에티오피아인으로 보이는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시신은 덤불 아래서 팔을 앞으로 뻗은 채 엎드려 있었다. 반바지에다 먼지와 피로 얼룩진 노란색 민소매 티셔츠 차림이었다. 신발도 돈도 신분증도 없었다. 금요 기도회 장소로 가는 행인들은 본능적으로 조의를 표하면서도 놀라진 않았다.

망자는 에티오피아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고 일자리를 찾으려고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려는 수천 명 중 한 명일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지부티까지 걸어간 다음 밀입국 알선업자의 배를 타고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예멘으로 향한다. 그들은 예멘에서 다시 밀입국 알선업자에게 돈을 주고 안내 받아 사우디 국경을 건넌다. 에티오피아 소녀 제이나바 카밀(16)은 “사막의 열기가 가장 끔찍하다”고 말했다. 예멘이 내전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그녀는 기온이 심할 땐 55℃까지 올라가는 소금 호수 아살을 지나 보름 동안 걸어서 지부티 사막을 건넜다.

카밀은 지부티 북부의 작은 항구도시 오보크까지 갔다. 오보크는 전쟁 지대인 예멘에서 탈출하고 또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중간 경유지가 됐다. 에티오피아인은 여기서 예멘으로 들어가길 원하는 반면 거꾸로 예멘의 내전을 피해 탈출한 난민 수천 명은 지난해 지부티의 해안에 도달했다.

에티오피아인은 예멘으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해 며칠, 때로는 몇 주 동안 기다리면서 바싹 마른 노간주 나무의 그늘을 찾아다니며 이슬람 사원 곁에서 동냥으로 먹고 지낸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가뭄으로 발생한 에티오피아 출신 이주민의 수는 약 1000명이다. 오보크에서 몇㎞ 더 가면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에 둘러싸인 마르카지 난민촌이 나타난다. 그곳엔 예멘 출신 난민 1400명이 산다.

예멘에선 지난해 3월부터 내전이 격화됐다. 후티 반군으로 알려진 예멘 내 시아파 무장단체가 수도 사나를 장악하고 정부군을 몰아내자 사우디는 연합군을 결성해 위협받고 있는 예멘 정부를 공습으로 지원한다(국제사회는 현 예멘 정부를 예멘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한다). 지금까지 예멘인 270만 명이 국내에서 집을 잃고 난민이 됐으며 1만9600명 이상이 지부티로 탈출했다.

다른 한편으로 지역혼합이주사무국(RMMS)의 추정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에티오피아인 약 4만 명이 빈곤과 5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으로 굶주리다 못해 예멘을 거쳐 사우디로 가려고 오보크를 통과했다.

사우디가 목적지인 에티오피아인 미프타후 칼릴(30)은 예멘의 전쟁에 관해선 잘 알지만 어쨌든 그곳을 거쳐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고향인 에티오피아 오로미아 주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가뭄이 작물을 완전히 망쳤다. “내가 겪은 가뭄 중 최악이었다.” 그와 마을 주민 10여 명은 오보크 외곽의 나무 아래서 잠을 자며 밀입국 알선업자가 배를 태워주기만 기다렸다. 에티오피아인은 먼저 비좁은 나무 보트를 타기 위해 100달러를 지불한다. 바다에서 살아남아 예멘에 도착한 뒤엔 경비가 삼엄한 사우디 국경을 넘는데 250달러를 더 지불해야 한다.

오보크에서 몇㎞ 떨어진 도로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에티오피아 남자는 그 여정에서 목숨을 잃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다. 나중에 칼릴과 동료 에티오피아인들이 인근의 공동묘지에서 표시 없는 다른 3명의 이주자 무덤 곁에 그를 매장했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 돌아가며 땅을 판 다음 시신을 묻고는 신속히 나무 아래로 돌아갔다.

이주민 또는 난민 중 지부티에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소말리아와 국경을 맞댄 사막국가 지부티는 미군 기지로 가장 유명하며 극심한 기후 외에는 외국인에게 자랑할 만한 게 없다.

몇몇 에티오피아인은 예멘의 내전이 여정을 더 쉽게 만들어줄지 모른다고 기대한다. 예멘 당국이 반군과 싸우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IOM은 실상은 그 반대라고 경고했다. IOM의 오보크 프로젝트 담당 알리 알-제프리는 “에티오피아인 수백 명을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중 다수는 예멘에서 총상을 입었다.” 에티오피아인 밀입국 알선업자로 최근 은퇴한 지아드는 요즘 예멘으로 가는 바닷길이 더 위험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보트 한 대가 침몰해 고객의 시신이 해변으로 떠밀려 온 것을 본 뒤 밀입국 알선을 그만뒀다. 요즘 그는 어부로 일한다. 예멘으로 가려는 에티오피아인에게 그는 “호신용으로 칼을 챙겨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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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을 탈출한 난민은 에티오피아의 이주민이 예멘으로 가려고 난민촌을 지나가는 것을 자주 본다. 그들은 자신들이 탈출한 그 끔찍한 예멘에 사람들이 왜 가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예멘 남부 아덴 출신인 의대생 라니아 데야는 “그곳에 가려는 에티오피아인들은 미쳤다”고 말했다. 그의 가족은 1년 전 후티 반군이 고향을 점령하고 “거리를 피로 뒤덮자” 그곳을 탈출해 지부티에 도착했다.

그는 지부티가 자신의 가족을 받아줘서 고마워하지만 오보크에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 사막은 사막이다.” 난민촌은 야생동물로부터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담장이 둘러져 있다. 그래도 뱀과 전갈이 자주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여름엔 거센 모래폭풍으로 텐트가 무너진다.

예멘 난민은 태양이 너무 뜨거워 땅 위에서 달걀을 프라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무자비한 열기 등으로 지난 2월 이래 지부티의 수도나 예멘의 안전한 곳을 찾아 오보크의 난민촌을 떠난 난민이 약 1000명이나 된다.

지부티는 오랫동안 내전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의 피난처로 잘 알려졌다. 1990년대 초 이래 소말리아의 난민이 지부티로 넘어왔다. 예멘의 다른 이웃나라인 오만이나 사우디와 달리 지부티는 난민에게 의료과 교육, 일자리를 얻을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인구가 100만 명도 채 안 되고 공공서비스가 제한돼 있으며 실업률이 60%에 이르는 지부티가 난민과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큰 부담이다. 오보크의 하산 가발레 아메드 시장은 “우린 난민을 돌려보내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부티 난민국의 난민촌 관리관 아메드 후메드는 난민이 오보크의 쇠약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고 말했다. 예멘인은 현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오보크의 유일한 사이버카페에서 몇 시간씩 보낸다. 현지인과 유엔 직원들이 예멘 전통음식을 즐기는 난민 운영 식당도 인기가 좋다. 굶주린 에티오피아 이주민은 절망의 눈초리로 그들이 먹는 모습을 지커보다가 남은 음식을 가져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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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크에서 몇 km 더 가면 사막 한가운데 마르카지 난민촌이 나타난다. 그곳에 예멘인 난민 1400명이 산다.

에티오피아의 극심한 가뭄으로 RMMS 조종관 브람 프루스는 “에티오피아인의 탈출이 조만간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예멘의 전쟁이 그들의 유입을 중단시킬 수 없다면 뭣이 그들을 가로막을 수 있겠는가?” 예멘에서 지부티에 도착하는 난민은 크게 줄었다. 현재 유효한 임시 휴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쿠웨이트에서 진행되는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평화협상은 진전이 없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불안한 휴전이 이전의 3차례 휴전처럼 깨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이곳에선 모두가 어정쩡한 상태다. 예멘인은 고향의 가족에게 문자를 보내 돌아가도 될 만큼 안전한지 묻는다. 에티오피아인은 어느 밀입국 알선업자에게 목숨을 맡겨야 할지 서로 논의한다. 칼릴은 동료 이주자의 무덤에 돌을 놓은 뒤 IOM 직원을 찾아가 말했다. “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는가?”

그러나 IOM은 지부티에서 자발적으로 귀국하는 이주민을 도울 자금이 없다. 직원은 그에게 기다리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통역자가 본국으로 돌아가기 원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물었다. 칼릴은 “우리 전부”라고 말했다. 그 주위에 서 있던 남자 20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자 그중 5명은 길을 떠났다. 에티오피아로 걸어서 돌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 로라 시코런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