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내 인생의 영양분”

데이비드 보위의 미술 소장품 경매 앞두고 소더비 경매사에서 순회 전시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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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가 소장한 ‘아름다운 괄약근’ (1995, 왼쪽)과 장-미셸 바스키아의 ‘에어 파워’.

영국 런던의 지도를 꺼내보라. 데이비드 호크니의 자화상 전시회를 보려고 관람객들이 줄 서 있는 피카딜리의 왕립미술원에서 북쪽으로 선을 긋는다. 큐레이터들이 톰 엘리스의 구상화 전시회를 준비 중인 월러스 컬렉션까지. 그 길에는 영국의 권위 있는 경매업체 소더비 본사도 있다. 순수한 예술적 목적은 앞의 두 미술관보다 떨어지겠지만 이곳 역시 분주하다. 소더비 경매장 뒤쪽의 작은 방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데이미언 허스트의 그림 앞에 모여 서 있다. 화려한 색상의 유화물감으로 그린 이 그림의 제목은 ‘아름다운 괄약근(Beautiful, Shattering, Slashing, Violent, Pinky, Hacking, Sphincter Painting, 1995)’이다. 이 구경꾼들은 허스트의 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그림은 데이비드 보위가 소장했던 허스트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보위가 암으로 사망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7월 초 소더비는 올해 말 그의 개인 소장품 중 400점을 경매에 붙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경매는 최소 1000만 파운드(약 149억원)의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더비는 지난 8월 초 이 중 주요 작품을 골라 런던 본사에서 전시했다. 가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홍콩에서 순회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런던 전시회는 하루 평균 1000명이 관람했으며 다른 곳에서도 그 정도의 관람객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보위의 죽음으로 그의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자 하는 대중의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 소장품에는 보위의 삶이 얽혀 있다.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속속들이 런던 사람이었다. 런던 남부 교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런던의 클럽과 음악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가 수집한 미술작품에는 그런 연관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경매에 붙여지는 그림 대다수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한 영국 미술가들의 작품이다. 독일 태생의 영국 화가 프랑크 아우어바흐와 그의 스승 데이비드 봄버그, 헤럴드 길먼 등이다. 낙찰추정가가 가장 높은 소장품은 미국 화가의 그림(장-미셸 바스키아의 ‘에어 파워’, 추정가 250만~350만 파운드)이지만 그 역시 보위에겐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작품이었다.

1996년 보위는 줄리앙 슈나벨 감독이 제작한 바스키아의 자전적 영화 ‘바스키아’에서 그의 멘토였던 앤디 워홀을 연기했다. 비록 보위의 연기는 형편없었지만 뉴욕 미술계의 중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참여하게 돼 매우 기뻐했다.

보위의 미술품 수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갑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지적 과시욕에서 비롯된 듯하다. “보위의 컬렉션을 살펴보면 지적 수준이 매우 높고 일관성이 있다”고 소더비의 현대미술 전문가 톰 에디슨이 말했다. “그는 미술과 미술가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위에게 미술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는 아방가르드 미술품 중에서 흥미롭고 시장성 있는 작품을 알아보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절하게 엮어 넣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언젠가 “미술은 내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될 영양분”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는 “미술은 내가 소유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미술에 대한 보위의 이런 열정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이해하려면 런던 남동부의 브롬리까지 가야 한다. 보위는 1958~1963년 이곳에서 브롬리 기술고등학교를 다녔다. 보위는 그 학교의 미술학과장이었던 오웬 프램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위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고교 동창생인 미술가 조지 언더우드에 따르면 프램튼의 그래픽 디자인 수업은 매우 자유로웠고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프램튼 선생님은 매우 특별했다”고 언더우드는 말했다. “그는 선생님 같지 않고 친구 같았다.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에게 잠재력이 있으며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학교 미술학과에서 프램튼과 함께 14년 동안 근무한 브라이언 이체슬은 그가 스스로 본보기를 보여 학생들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그는 쉬는 시간에 부업으로 벽지 디자인을 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교실에 걸어놨다. 학생들은 그 작품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보위는 성공한 뒤에도 청소년 시절 자신의 역할 모델이었던 프램튼을 결코 잊지 않았다. “보위는 런던에서 공연할 때마다 프램튼 부부를 초대해 무대 뒤에서 인사를 나눴다”고 이체슬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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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 아우어바흐의 ‘제르다 보엠의 머리’ (1965).

하지만 보위는 미술에 재능이 없었다. 언더우드에 따르면 그는 그림 솜씨가 형편없었다. 이체슬도 동의했다. 그는 고교 시절 보위가 그린 형편없는 그림들은 뮤지션으로서 그가 보여준 빛나는 예술성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가 쓴 노래들은 상상력이 아주 풍부했고 그가 스스로 연출했던 페르소나들은 매우 기발했다. 그런 예술성이 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하다.”

보위는 자신에겐 언더우드 같은 (그림) 솜씨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나중에 ‘Space Oddity’와 ‘Hunky Dory’ ‘Ziggy Stardust’ 등 앨범 표지 디자인을 언더우드에게 의뢰했다(언더우드는 고교 시절 말다툼을 하던 보위에게 주먹을 날려 왼쪽 눈에 심각한 부상을 입혔다. 보위의 양쪽 눈 색깔이 달랐던 이유는 그때 다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더우드는 보위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한몫한 셈이다).

보위는 언젠가 언더우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작품이 늘 좋았다. 난 그가 자신도 모르게 나를 음악 쪽으로 떠밀었다고 생각한다. 고교 시절 함께 미술 수업을 받으면서 그가 그리는 부드럽고 우아한 선이나 주제를 다루는 자세 등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느꼈다.”

보위는 화가로서는 재능이 없었지만 그것이 미술품을 구매하는 데 방해가 되진 않았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 뮤지션으로 성공하면서 그의 컬렉션도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보위는 자신의 컬렉션에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지인들은 말한다.

“그는 구매한 작품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고 언더우드는 말했다. “그런 자랑을 늘어놓을 때는 약간 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언제나 농담조로 말했다.” 1990년대 초 보위와 친구가 된 런던의 갤러리 소유주 버나드 제이콥슨은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보위가 언젠가 내 침실 벽에 걸린 초상화를 팔라고 조른 적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국 화가 윌리엄 틸리어의 작품이었다. ‘내 개인 소장품이기 때문에 팔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보위는 ‘당신은 갤러리 주인이니 그림을 팔아야 한다. 그것이 당신 직업 아니냐’면서 막무가내였다. 우리는 그 그림을 놓고 꽤 오랫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그 그림은 결국 보위의 소장품이 됐다.

제이콥슨은 보위가 1992년~2000년대 초 자신의 갤러리에서 그림을 가장 많이(100여 점) 사들인 고객이었다고 밝혔다. “우린 결국 좋은 친구가 됐다”고 제이콥슨은 말했다. “그는 내 갤러리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하루는 프론트 데스크에 2시간 동안 서서 그림을 팔았다.”

보위는 제이콥슨과 절친이 되면서 미술계에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1994년에는 당시 계간으로 발행되던 미술 잡지 ‘모던 페인터스’(1987년 제이콥슨이 창간했다)의 이사가 됐다. 그는 이 잡지에 실릴 기사를 쓰기도 했다. 1994~1998년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등의 미술가들을 인터뷰했다. 수수께끼 같은 프랑스 미술가 발튀스를 인터뷰한 기사로 특종을 잡기도 했다. “보위는 그 일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제이콥슨은 말했다. “그가 쓴 기사엔 취재 대상에 대한 진정한 열정이 담겨 있었다.”

보위는 미술 서적 발행인으로도 활동했다. 1997년 제이콥슨이 미술 서적을 펴내기로 마음먹은 후 그와 보위, 모던 페인터스의 편집장 캐런 라이트, 티머시 세인스베리(영국 슈퍼마켓 소유주 가문의 일원)는 총 21권의 서적을 발행했다. “기존 출판사에서 발행을 꺼리는 책들이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봤다”고 제이콥슨은 말했다.

보위가 소장품에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고 있는 언더우드와 제이콥슨은 일부가 경매에 붙여진다는 소식에 무척 놀랐다. “그가 (부인) 이만과 (아들) 던컨에게 ‘그 그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경매에 붙이라’는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언더우드는 말했다. “정말 그랬기를 바란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보위의 유산관리인 측에서는 논평을 거부했다. 제이콥슨은 “얼마 전 이 경매에 대한 소문을 들었지만 유족이 마음을 바꾸기를 바랐다”며 “이 컬렉션은 데이비드의 사랑이자 열정이었다”고 말했다.

소더비의 에디슨은 보위가 생전에 종종 소장품을 대여해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든 수집가는 기본적으로 작품이 다음 소유주에게 넘어갈 때까지,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게 될 때까지 그것을 돌보는 관리인이다. 보위는 그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 컬렉션의 주요 작품은 소더비 런던(8월 9일까지)에 이어 미국 로스앤젤레스(9월20~21일)와 뉴욕(9월 26~29일), 홍콩(10월 12~15일)에서 순회 전시된다. 컬렉션 전체 전시회는 소더비 런던에서 11월1~10일에 열리며 경매는 11월 11~12일 열린다

– 투파옐 아메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