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농촌을 사랑한 그림책 작가

‘피터 래빗’의 비어트릭스 포터 탄생 150주년 맞아 기념품 경매와 전시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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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컴브리아에 있는 비어트릭스 포터 갤러리. 포터가 그린 그림의 원본이 전시돼 있다.

그림책 작가 비어트릭스 포터와 관계된 물건은 뭐든 어린 시절의 향수를 떠오르게 한다. 자녀의 세례식 때 선물로 받은 제미마 퍼들덕 도자기 보울이든 다양한 캐릭터의 모험을 그린 미니어처 책 세트든. 하지만 이 독립적인 여성 작가는 파고들면 들수록 의외의 측면이 새록새록 나타난다.

영국 경매업체 드루이츠 앤 블룸스베리는 지난 7월 28일 포터의 책 초판본과 기념품의 경매를 시작했다. 그녀의 처녀작 ‘피터 래빗 이야기’의 페이퍼백 초판부터 수채화 습작, 포터가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까지 여러 가지 품목이 출품됐다.

100점이 넘는 이 컬렉션은 존 캐우드가 1972년부터 수집한 것이다. 캐우드는 포터가 오랫동안 살았던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주민이며 ‘비어트릭스 포터 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 어려서부터 포터의 책을 좋아했다. 현재 그가 수집한 컬렉션의 가치는 약 10만파운드(약 1억5000만원)다.

가장 주목받는 품목은 그녀가 자가 출판한 처녀작의 초판본이다. 당시 발행된 총 250부 중 하나로 매우 희귀한 아이템이다. 1901년 출판된 이 소박한 페이퍼백이 비어트릭스 포터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녀는 이 책을 시작으로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중 1명이 됐다.

그녀의 첫 번째 책이 자가 출판됐다는 사실은 당시 남성이 주도하던 출판업계에서 여성 작가들을 어떻게 대우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다. 헬렌 비어트릭스 포터는 런던 켄징턴 지역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작가로서 그녀의 삶은 빅토리아 시대(1837 ~1901년) 이후의 영국에서 성공을 꿈꾸던 다른 많은 여성들보다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여성은 극소수였으며 여성에겐 참정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포터는 작가 겸 미술가로 성공하겠다고 결심했다.

동물을 좋아하고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포터는 아주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아홉 살 되던 1875년 첫 번째 스케치북에 수채화 물감으로 애벌레 습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20대에는 직접 그린 그림을 크리스마스 카드로 팔았다. 그녀가 피터 래빗을 처음 그린 건 27세 때 전 가정교사 애니 무어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였다. 무어는 포터에게 본격적으로 그림 작업을 해보라고 제안했다.

그 책은 처음에 출판사 6군데서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중 하나인 ‘프레드릭 원 & Co’에서 생각을 바꿔 1902년 천연색 하드커버로 출판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출판된 포터의 ‘피터 래빗 이야기’는 첫해에 2만8000부가 발행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책을 포함해 포터의 어린이 그림책 24권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속적인 인기를 누린다.

포터는 피터 래빗 인형을 디자인하고 만들었을 때 곧바로 특허 등록을 했다. 이렇게 해서 피터 래빗은 특허 등록이 된 첫 번째이자 가장 오래된 캐릭터가 됐다. 포터는 자신의 책을 출판한 편집자 노먼 원과 사랑에 빠져 1905년 비밀 약혼을 한다. 그녀의 부모는 딸이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결혼하려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딸에게 그해 여름 웨일즈로 가서 원과 떨어져 지내면 가을엔 결혼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서로 떨어져 있게 된 두 사람은 매일 편지를 주고받았다(그중 남아 있는 편지는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원은 비어트릭스가 런던으로 돌아오기도 전인 그해 8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은 그녀의 인생을 다시 한번 바꿔놓았다. 그녀는 그 후 런던을 떠나 시골에서 생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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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터가 가장 좋아했던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농장 ‘힐 톱 팜’에서 애견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왼쪽). ‘피터 래빗 이야기’를 포함해 포터의 어린이 그림책 24권은 지속적인 인기를 누린다.

포터는 어린 시절 웨일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사람들이 그녀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많이 떠올리는 곳은 컴브리아와 레이크 디스트릭트다. 책 출판으로 돈을 많이 벌어들인 포터는 부동산에 투자했다. 런던의 호화로운 도시주택이 아니라 레이크 디스트릭트 앰블사이드에 있는 17세기 농장 ‘힐 탑 팜’을 사들였다.

그 호수 지방에서 자연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더 활짝 피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터는 그 지역 15개 농장의 주인이 됐다. 그녀가 면양 키우기(지역 면양 축제에서 많은 상을 탔다) 등 농장 일에 열중하면서 글쓰기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1912년에는 그 지역 변호사 윌리엄 힐리스와 결혼했다.

컴브리아에서의 삶은 그녀가 런던에서 보낸 시간과는 완전히 달랐다. 포터는 아동 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 못지 않게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환경에도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 소유의 농장 15개와 1600만㎡의 땅을 내셔널 트러스트에 기증했다.

요즘 내셔널 트러스트는 힐 탑 팜 투어를 통해 매일 수천 명의 관광객을 이 지역에 끌어들인다. 포터가 시작한 사업을 지속하는 셈이다. 그녀는 1933년 ‘유 트리 팜’의 거실을 찻집으로 개조해 이 땅을 관광지로 만든 최초의 인물이었다. 이 지역은 지금도 그녀가 살았던 때와 똑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포터의 발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하지만 포터가 어떻게 살았고 생각했는지를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녀의 유산을 보존해준 수집가들 덕분이다. 이번 경매는 그들이 아니었다면 자취를 감추었을 그녀의 과거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다. 캐우드의 컬렉션은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V&A) 미술관에 전시된 수집가 레슬리 린더의 소장품과 매우 유사하다. 수채화와 드로잉, 원고 등으로 구성됐다.

린더는 포터가 1881~1897년의 일기 속에 설정해 놓은 암호까지 풀어 그 결과를 1966년 출판했다. 그는 1973년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컬렉션을 V&A에 기증했다. 그 기증품 덕분에 V&A는 비어트릭스 포터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한 박물관이 됐다. V&A는 포터 탄생 150주년을 맞아 현재 이 소장품을 전시 중이다(내년 4월 28일까지).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이며 농부이자 사업가이기도 했던 포터의 커리어는 토끼에 관한 한 권의 작은 책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포터가 사랑했던 이 땅에 미친 그녀의 영향력은 그녀의 독자층처럼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포터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유산을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그녀가 자신이 살았던 땅의 유산을 지켰듯이 말이다.

– 앨리스 커프 IBTIMES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