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야생’을 찾아서

부자들의 여름 휴양지로 알려진 미국 뉴욕 주 북부의 애디론댁 공원은 도시 생활에 지친 일중독자들의 쉼터로 안성맞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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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파인 캠프’는 자동차와 컴퓨터,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취하는 데 중점을 둔다.

미국 동해안 지역의 주민들은 늘 서해안에 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서해안 지역에 미국 최고의 국립공원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 앤설 애덤스의 사진으로도 유명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장엄한 하프돔(둥근 돔의 절반이 잘려나간 듯한 모양의 거대한 바위),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수백만 장씩 올라오는 그랜드캐년 국립공원의 홀스슈벤드(말발굽 모양의 협곡),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끝없는 상록수 숲, 워싱턴 주의 해안 약 110㎞에 걸쳐 있는 올림픽 국립공원 등등. 미국 서해안에는 이 밖에도 드넓은 녹지와 광활한 하늘, 멋진 석양으로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내는 곳이 부지기수다.

반면 고층건물과 최신 유행 등 도시 정서가 지배하는 동해안 지역에는 그에 견줄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뉴욕 주 북부에 요세미티와 그랜드캐년, 옐로스톤과 올림픽 국립공원을 합친 것보다 더 넓은 공원이 있다. 총 면적 2만4000㎢가 거의 야생 그대로 보존된 애디론댁 주립공원이다.

애디론댁 공원은 북미 대륙의 미국 주 가운데 알래스카를 제외한 48개 주(Lower 48)에서 가장 크다. 버몬트 주와 맞먹는 규모로 뉴욕 주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3000개의 호수와 4만8000㎞의 하천, 미국 동해안 지역의 다른 어느 곳보다 더 넓은 황야를 포함하고 있다. 이 공원은 또 세계 최초로 헌법으로 지정된 야생보호 구역이다. 1894년 뉴욕 주 헌법은 이 지역을 ‘영원한 야생(forever wild)’ 구역으로 지정하고 공공 숲의 개발과 벌목, 매각이나 임대를 금지했다.

애디론댁은 지난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공동창업자인 마윈 회장이 이 지역에 11만3720㎡ 규모의 부동산을 구입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한때 로커펠러 가문과 듀퐁 일가가 소유했던 이 땅을 2300만 달러(약 255억원)에 매입했다. 이 땅에는 세인트 레지스강 14㎞ 구간과 송어가 뛰노는 계곡, 울창한 삼림, 2채의 가옥과 메이플 시럽 공장이 있다. 1980년 동계올림픽이 열린 아름다운 도시 레이크 플래시드도 애디론댁에 있다.

애디론댁 공원은 100여 년 전 부자들의 여름 휴양지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인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뉴욕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이 막강했던 가문(밴더빌트와 로커펠러, 포스, 구겐하임 등)의 사람들이 ‘그레이트 캠프(great camps)’라고 불리는 시골의 드넓은 사유지에서 여름을 보냈다. 그들은 오지의 전용도로 깊숙한 곳에 통나무 저택을 짓고 수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초호화 글램핑(glamping, 다양한 편의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고급스런 캠핑)을 즐겼다.

그레이트 캠프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철도업계의 거물 토머스 듀런트의 아들 윌리엄 웨스트(W W) 듀런트다. 오염되지 않은 호숫가의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이 캠프에는 숙소, 볼링장 등 각기 용도가 다른 여러 채의 통나무집이 흩어져 있었다. 이 통나무집들은 현지에서 나는 재료로 지어졌고 주인의 부에 걸맞게 호화로운 장식을 더했다. 대형 석조 벽난로와 높은 통나무 천장, 나무껍질과 곰 가죽을 이용한 실내장식, 보트 창고, 실내 테니스장, 이국적인 동물 머리 장식 등이 그레이트 캠프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키 큰 가문비나무와 전나무, 솔송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목조 건물들이 살짝살짝 엿보였다. 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지나갈 때 그곳이 그레이트 캠프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유일한 방법은 물가에 지어진 근사한 보트 창고뿐이었다. W W 듀런트의 그레이트 캠프에는 1877년 지어진 철도왕 콜리스 헌팅턴의 ‘캠프 파인 노트’와 금융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의 ‘캠프 엉카스’(1893), 갑부 알프레드 그윈 밴더빌트의 ‘새거모어 캠프’(1895)가 포함됐다. 이들 캠프는 모두 미국 역사명소(NHL)로 지정됐다.

1869년 보스턴의 목사 윌리엄 H H 머리가 쓴 ‘황무지의 모험(Adventures in the Wilderness)’이 최초의 애디론댁 안내서다. 머리는 “반짝이는 호수와 에머럴드 빛 벨벳 같은 숲이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도망치는 기쁨을 준다”면서 이곳을 스위스에 비유했다. 이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삶과 건강의 회복을 원하는 관광객이 줄을 이었다. 머리는 “애디론댁은 치유 능력을 지닌 숨겨진 전원”이라고 말했다. 도시 생활에 기진맥진한 나 같은 일중독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그로부터 146년이 지난해 봄 나는 머리의 충고를 받아들여 며칠 동안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얽매인 뉴욕시의 바쁜 생활을 접고 1864년 뉴욕타임스가 ‘세계의 중앙공원’이라고 칭한 애디론댁으로 갔다.

올버니(뉴욕 주의 주도) 기차역과 ‘화이트 파인 캠프’(캘빈 쿨리지 전 미 대통령이 1926년 여름철 백악관으로 이용했다) 사이에서 길을 잃어 길가에 차를 세우고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구글맵을 작동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지도가 안 떴다. 그 지역에선 와이파이도 데이터네트워크도 이용할 수 없었다. 난감했다.

자동차 앞 좌석의 사물함을 열고 뉴욕 주 지도를 꺼냈다. 그 지도는 이불만큼이나 컸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종이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A2 칸을 봐야 하나, F7 칸을 봐야 하나? 70대 부모님에게 페이스타임(애플사에서 제공하는 영상 통화 기능) 이용법을 가르쳐드릴 때가 훨씬 쉬웠다.

“길을 잃으셨나요?”

‘애디론댁 공원’이라고 쓰인 트럭을 타고 가던 중년 남자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그는 “자주 있는 일”이라면서 제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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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준비해 주는 것이 ‘더 포인트 리조트’의 철학이다. 새벽 4시에 스테이크 2인분을 요청해도 문제 없다.

약 16㎞를 더 달려 글렌스 폴스에 도착했다. 이전에 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으로 양조장 3개와 싸구려 술집 몇 개, 그리고 어울리지 않는 지중해식 레스토랑 ‘레어 어스 와인 바’가 있었다. 그 바의 음식은 그 주말에 내가 먹었던 중 최고였다. 바의 공동 소유주이자 요리사인 폴 파커는 “글렌스 폴스는 애디론댁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레어 어스 와인 바가 이곳에 어울리진 않지만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 알려줬다. “글렌스 폴스는 근로계층이 모여 살던 곳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뭘 먹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려고 노력해 왔다.” 파커는 오리 콩피(저온의 기름에서 오랫동안 조리하는 기법) 샐러드와 메추라기, 달팽이 요리를 내놓는다(레어 어스 와인 바는 지난해 12월 문을 닫았고 현재 파커는 그 도시의 또 다른 레스토랑 ‘다운타운 시티 태번’의 수석 주방장을 맡아 피자와 닭날개 튀김, 햄버거를 만든다).

파커의 딜레마는 공생의 문제와 관련 있다. 이 지역엔 주민 약 13만2000명과 별장 등지에서 특정 계절에만 머무르는 인구 11만 명이 있다. 그리고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약 1000만 명에 이른다. 애디론댁의 일부 지역은 미국의 여느 시골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꾸려 간다. 하지만 미국의 상위 0.001% 부자들이 이곳에 별장을 갖고 있다.

“이 지역은 극심한 빈부차의 역사가 160년 이상 지속됐다”고 애디론댁 위원회의 윌리엄 제인웨이 이사가 말했다. “1850년대에 모건 일가 등 갑부 가문들이 애디론댁 공원에 철도를 건설하고 부동산을 많이 사들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 지역에 갑부들이 들어오면서 위화감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개발과 일자리 창출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애디론댁은 뉴욕 주의 11개 지역 중 관광 의존도가 가장 높다. ‘뉴욕 주 관광업의 경제적 영향’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이 지역의 전체 일자리 중 관광 관련 직종이 19%를 차지했다. 그해 애디론댁의 관광산업 규모는 13억 달러에 달했다.

애디론댁은 오랫동안 초특급 부자들의 놀이터가 돼 왔지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제인웨이 이사는 “국유지와 공원이 넓게 분포된 이 지역에는 저렴한 숙소가 많다”고 말했다. “레이크 플래시드의 모텔에 묵거나 오지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해도 된다. 또 체크 무늬 셔츠 하나면 빈부차를 뛰어넘을 수 있다. 현지 철물점에 가면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뱅이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현지 아이스크림 상점도 마찬가지다. 대다수가 가족 경영 업체로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며 독특한 맛으로 인기를 끈다. 뉴욕 주 86번 도로에 있는 ‘도넬리스 아이스크림’을 운영하는 피트 도넬리는 “톰 크루즈가 우리 가게에 왔다가 모자를 놓고 갔는데 여자들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화이트 페이스 산의 전경이 바라다보이는 이 상점은 크림이 듬뿍 든 아이스크림 콘으로 유명하다. 내가 도넬리에게 “당신이 톰 크루즈 아닌가요?”라고 농담을 던졌더니 그가 “그렇죠. 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라고 되받았다.

도넬리스 아이스크림에서는 크기만 고르면 된다. 이 상점은 요일 별로 한 가지 맛의 소프트 아이스크림만 판다. 월요일은 견과류 맛, 수요일은 초콜릿 맛, 금요일은 딸기 맛 등등. 이 스케줄은 1960년대부터 변함이 없어 주민들은 자기 집 현관 비밀번호보다 더 잘 안다. “삶이 더 단순했던 시절의 향수를 간직하고 싶다”고 도넬리는 말했다.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는 스타벅스가 아니라 동네 식당에 간다.”

이제 70대에 접어든 도넬리는 옛날 이야기를 자주 한다. 언젠가 그 지역을 지나던 쿨리지 대통령의 차가 도넬리 집안의 농장 앞에서 엔진 과열로 멈춰 섰을 때 그의 할머니가 돌담에 걸터앉아 엔진이 식기를 기다리던 대통령에게 차를 가져다 준 이야기. ‘포스트 시리얼’의 상속녀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가 도넬리 아이스크림을 비행기 편으로 워싱턴 DC까지 날라다 먹었다는 이야기 등이다. 도넬리는 또 매년 여름이면 뉴저지 주나 메인 주, 매사추세츠 주의 주민들이 몇 시간씩 차를 몰고 와서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냉동고에 넣어 가져간다고 말했다.

도넬리스 같은 아이스크림 상점들이 애디론댁을 특별하게 만든다. 제인웨이 이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을 떠났다가 25년쯤 지나 돌아온 사람들도 여전히 도넬리스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그 상점 앞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하루에 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만 파는 전통이나 화이트페이스 산이 바라다보이는 전망도 여전하다.”

100년 전에는 미국 내에서도 애디론댁의 그레이트 캠프까지 가려면 몇 주일씩 걸렸다. 부유한 가문에서는 침대 설비가 있는 전용 풀먼 기차로 손님들을 모셨다. 그 기차 안에는 일류 요리사가 탑승해 손님들에게 진미를 대접했고 은식기와 대리석 싱크대, 무늬가 새겨진 마호가니 식탁이 갖춰져 있었다(애디론댁 박물관에 1890년에 제작된 풀먼 객차가 전시돼 있다).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는 전용 비행기와 26인승 보트에 손님들을 태워 ‘톱리지 캠프’로 데려갔다. 68채의 건물로 구성된 그 캠프에서는 85명의 하인이 시중을 들었다.

지난해 봄 나는 뉴욕시에서 출발해 기차와 자동차로 6시간 만에 애디론댁에 도착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화이트 파인 캠프’였다. 숲 한가운데 난 비포장도로를 4㎞나 달린 끝에 도착했다. 현재 그레이트 캠프 대다수가 사유지거나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 캠프로 이용되지만 화이트 파인 캠프는 일반인도 묵을 수 있는 세 곳 중 하나다. 밴더빌트 일가가 리케트 호숫가에 지은 방 46개짜리 새거모어 캠프는 현재 박물관과 교육연구소로 쓰인다. 또 윌리엄 에이버리 로커펠러가 새러낵 호숫가에 지은 ‘더 포인트 캠프’는 ‘를레 & 샤토’(세계 최고 수준의 부티크 호텔과 레스토랑 연합)가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화이트 파인 캠프는 보통사람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1908년 뉴욕의 은행가 아치볼드 화이트가 지은 이 캠프는 14만㎡의 울창한 소나무 숲에 자리 잡았다. 통나무집 13채가 검푸른색의 오스굿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다. 곧 무너질 듯한 볼링장은 호러 영화의 배경으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근처에 애디론댁에서 가장 사랑받는 사진 촬영지인 ‘재패니즈 티 하우스’가 있다. 풀로 덮인 작은 섬에 있는 이 정자는 고요한 석호 위를 가로지르는 약 90m의 좁은 나무 다리와 아치가 있는 다리를 건너야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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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디론댁 공원은 버몬트 주보다 면적이 더 넓으며 세계 최초로 헌법으로 지정된 야생보호 구역이다

통나무집은 성수기(6월 말~10월)엔 1박에 155~370달러이며 모두 TV와 전화가 없고 와이파이가 안 된다. 본관에서는 언제든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자주 끊기긴 하지만 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화이트 파인 캠프는 자동차와 컴퓨터, 전자기기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주안점을 둔다. 캠프 측은 손님들에게 차를 멀리 있는 주차장에 세워두도록 권한다. 그곳에 머무는 동안 자동차가 눈에 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내가 한 직원에게 좋은 레스토랑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손님이 머무실 통나무집엔 완벽한 주방과 그릴이 준비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주변의 레스토랑은 도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볼 때 형편없습니다. 음식 사막이나 다름없다고 봐야죠.”

하지만 난 약간의 비상식량(과일과 견과류 바, 병에 든 아이스 커피, M&M 땅콩 초코볼)밖에 안 가져갔기 때문에 거의 매일 외식을 했다. 그래서 더 포인트 캠프에 도착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은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화이트 파인 캠프와 정반대였다. 캠프 운영 책임자 조 마이우라노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을 손님의 집으로 생각하고 편안하게 머물다 가십시오. 원하시는 건 뭐든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이 캠프는 윌리엄 에이버리 로커펠러가 1930년대 초 아내의 생일 선물로 지었다. 외딴 곳에 자리 잡은 약 30만㎡ 규모의 이 캠프는 지금은 연간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리조트가 됐다. 숙박료가 매우 비싼 이 리조트에서는 대호황 시대의 갑부처럼 호화롭게 먹고 놀고 쉴 수 있다. 마이우라노의 말처럼 “손님의 요청에는 무조건 ‘예스’라고 대답하는 것”이 이 리조트의 철학이다.

더 포인트 리조트는 1999년 이후 매년 경제지 포브스에서 별 다섯 개를 받았다. 워낙 고급스런 곳이라 웹사이트에 ‘찾아오는 길’도 안 나와 있다. 대신 ‘예약이 확인된 후에 찾아오시는 길을 자세히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써 있다. 더 포인트 리조트에는 간판도 없다. 나뭇잎이 터널을 이룬 길에 주소 하나만 달랑 있을 뿐이다. 정문에는 경비원 대신 예쁜 새집이 하나 있다. 리조트 내의 통나무집들처럼 연회색 통나무에 빨간색 덧문이 달렸고 현관 위엔 박공 지붕이 있다.

정문에 달린 키패드에 001을 누르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애비게일이라고 하는데 체크인 좀…”

명랑한 목소리의 직원이 내 말을 가로챘다. “안녕하세요? 존스 양, 더 포인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통나무와 잔가지로 만든 정문이 열렸다. 나는 차를 몰고 그 문을 통과해 나무가 늘어선 길을 한참 달렸다. 크로켓 코트와 애디론댁 체어(나무로 만든 야외용 의자)가 줄지어 놓여 있는 곳, 아름다운 통나무집 몇 채를 지나서 갔다. 본관 앞에서 3명의 직원이 나를 맞았다. 한 사람은 내 짐을 들고 사라졌고 또 한 사람은 내 차를 주차시켰다. 나머지 한 사람이 나를 ‘레인디어 홀’로 안내했다. 벽이 목조 패널로 장식된 8각형의 방이었다. 머리 위에 사슴 머리 장식 8개가 걸려 있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탁자 위에 우아한 난초가 놓여 있었다. 그 방으로 나를 안내한 사람이 내게 샴페인 한 잔을 건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체크인이 끝났다.

이곳의 숙박료는 세금을 포함해 1박에 1600~3500달러로 매우 비싸다. 하지만 다양한 메뉴의 최고급 식사와 술, 활동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뮤지컬 ‘해밀턴’의 입장권 가격이 최고 900달러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니다). 이 리조트에는 테니스 코트와 하이킹 코스가 있고 전망이 아름다운 곳에 설치된 해먹(나무 등에 달아매는 그물 침대)도 이용할 수 있다. 호화로운 펍에는 곰 가죽 카페트가 깔려 있고 주크박스와 당구대도 있다.

밤이 되면 호숫가의 별채 앞에서 캠프파이어 행사가 열린다. 스모어(크래커 사이에 불에 구운 마시맬로와 초콜릿을 끼운 간식)와 송로버섯으로 맛을 낸 팝콘이 제공된다. 졸음이 올 경우 편안하게 눈을 붙일 수 있도록 베개와 담요도 준비돼 있다. 엘코 전기 보트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리면서 석양을 바라보며 칵테일을 즐길 수도 있고 1933년형 수제 마호가니 쾌속정의 복제품도 타볼 수 있다. 하룻밤에 2만5650달러를 내면 리조트를 통째로 세낼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위한 구명조끼가 필요할 때는 요청하면 된다. 새벽 4시 30분에 포터하우스 스테이크 2인분을 요청해도 문제 없다. 새러토가 스프링스에 가서 경마 관람을 하고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돌아오기 위해 헬리콥터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리조트 측에서 주선해 줄 것이다. 더 포인트 리조트에서 구할 수 없는 건 몇 가지 안 된다. 객실의 TV와 전화기, 와이파이 정도? (방문객 센터에 가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은 객실마다 이름이 있다. 내가 묵은 객실의 이름은 ‘이로콰’였다. 로커펠러의 딸이 침실로 쓰던 곳이다. ‘모호크’는 주인의 침실이었고 ‘센티넬’은 원래 마구간과 차고였다. 가장 인기 있는 방은 ‘보트하우스’로 캐노피가 달린 침대와 2인용 욕조가 있고 베란다에 그네 침대가 2개 더 있으며 전망이 기막히다.

더 포인트 리조트는 휴식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파티와 음식에도 무척 신경 쓴다. 또 ‘그레이트 홀’과 펍, 호숫가 별채, 보트 창고 등 곳곳에 바가 있어 어디서든 느긋하게 술을 즐길 수 있다. 보트 창고에 있는 객실 안에도 바가 있는데 그곳은 객실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다. 나와 동행한 친구가 버번 위스키를 청하자 매우 희귀한 ‘패피 밴 윙클’ 버번이 나왔다.

그레이트 캠프의 전통에 따라 식사는 투숙객들이 한 곳에 모여서 한다. 바비큐 오찬에는 프라이드 포카차(크고 둥근 이탈리아 빵)와 노릇노릇하게 익힌 양파, 맛있는 맥 앤 치즈(마카로니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운 요리)와 프라이드 치킨이 나왔다. 모든 요리가 캠프의 들판에서 꺾은 꽃과 풀로 장식됐다. 하지만 더 포인트 캠프 식사 중 백미는 7가지 코스로 구성된 정식 만찬(정장을 입어야 한다)이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그레이트 룸’(이곳엔 무스, 아프리카 물소 등 동물 머리 장식품만 32개가 놓여 있다)에서 열린다. 흰 장갑을 낀 웨이터들이 정교한 요리를 한 가지씩 날라다 준다. 각각의 요리는 투숙객의 식성에 맞춰 준비되고 최고급 와인이 곁들여진다.

더 포인트 리조트에서 인터넷 없이 48시간을 보낸 뒤 마지막 날 아침 비즈니스 센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존스 양!” 센터 안으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내게 인사했다. 전에 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미소로 답한 뒤 구석에 있는 컴퓨터로 발길을 옮겼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지난 2일 동안의 평화와 고요가 깨지는 순간 현관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조트를 한번 둘러볼 수 있을까요?” 한 여자가 물었다.

“리조트 내 투어는 투숙객에게만 제공됩니다.” 내게 인사했던 사람이 설명했다.

“하지만 더 포인트 리조트를 꼭 한번 보고 싶었어요. 잠깐만 둘러보면 안 될까요?” 여자가 다시 물었다.

이 대화는 7~8분이나 계속됐다. 여자가 포기하고 나갈 때까지. 그러고 보니 더 포인트 리조트에서도 ‘노’라는 대답을 들을 때가 있었다.

– 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