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신발 그 화려한 변신

로프와 캔버스 천으로 만든 신발 에스파드류, 시대와 신분 초월한 멋스러움과 편안함으로 사랑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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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리본으로 묶는 에스파드류를 즐겨 신었다.

영국의 극작가 겸 배우 노엘 카워드는 윈저공(에드워드 8세 영국 국왕의 퇴위 후 호칭)에 대해 “매력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만한 알맹이가 없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매우 가혹할 뿐 아니라 정확하지 못한 평가다. 카워드는 윈저공의 대단한 재능을 간과했다. 그는 당대에 의복의 변혁을 일으킨 뛰어난 혁신가였다.

윈저공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당당했다. 대영제국의 왕위에서는 물러났지만 평생 ‘남성 스타일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특히 소박하거나 캐주얼한 제품을 고급스러운 패션 아이템으로 둔갑시키는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그는 스포츠웨어를 즐겨 입고 ‘플러스 포스(plus fours, 무릎 아래 4인치 길이에서 꽉 조이게 만든 헐렁한 반바지)’를 유행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또 야회복 재킷에 코르덴 소재를 써서 입기 편하게 만들었다. 윈저공은 이 재킷을 실크를 덧댄 칼라 부분이 헤질 정도로 애용했다. 그는 또 농부의 복장을 패션 아이템으로 격상시켰다. 에스파드류(로프를 꼬아 만든 바닥에 윗부분은 캔버스 천으로 된 가벼운 신발)가 대표적인 예다. 윈저공은 피레네 산맥의 농부들이 신던 이 신발을 프랑스 비아리츠 지방에 갔을 때 처음 본 후 즐겨 신기 시작했다.

윈저공이 에스파드류를 유행시키기 시작할 무렵 스페인에서는 호안 올리베 바게와 그의 부인 에밀리아 마르티네즈가 이 신발(스페인어로는 ‘알파르가타스’)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이 부부는 스페인 내전이 끝난 후인 1940년 바르셀로나에 ‘라 마누알 알파르가테라’라는 상점을 열고 상류층을 상대로 에스파드류를 팔기 시작했다.

당시 경제 사정이 몹시 안 좋았던 스페인에서는 사람들이 가죽 구두를 사 신기 어려웠다. 그래서 라 마누알 알파르가테라는 로프와 캔버스 천을 이용한 여러 종류의 에스파드류를 만들었다. 앞 코 부분이 코바늘 뜨개질 같은 스티치로 장식된 앵클 부츠, 영국 스타일로 알려진 끈으로 묶는 유형, 2가지 색상의 캔버스 천으로 된 스타일 등등. 당시 이 상점의 여성 신발 사진에서는 그 시대에 유행하던 구두의 스타일을 반영한 다양한 에스파드류를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웨지힐도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이 신발을 좋아해서 라 마누알 알파르가테라는 장사가 매우 잘 됐다. 그 후 다른 상점과 디자이너들이 에스파드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이 신발은 여름 패션의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라 마누알 알파르가테라는 지금도 영업 중이다. 그리고 77년 전 그곳에서 첫 번째 에스파드류를 팔았던 10대 소녀 후아나 마르티네즈 가르시아는 요즘도 가끔씩 매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지금은 그녀의 아들 호안 카를레스 타시에스가 회사를 운영하고 며느리가 공장을 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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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문을 연 바르셀로나의 에스파드류 전문점 ‘라 마누알 알파르가테라’.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도 이곳의 단골이었다.

내가 바르셀로나의 명물인 이 상점에 처음 가본 건 약 20년 전이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독일의 한 상류층 인사가 요한 바오로 2세 (당시) 교황이 그곳에서 에스파드류를 맞춰 신는다면서 나를 데려갔다. 이 작은 상점의 신발을 애용한 사람은 교황뿐이 아니다. 카탈루냐 경찰의 예복용 에스파드류도 이곳에서 만든다. 스페인의 위대한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 단순한 신발을 매우 좋아해서 에스파드류에 리본을 묶어 신었다.

에스파드류를 만드는 방식은 수세기를 거치면서도 거의 변화가 없었다. 꼰 로프를 감아서 창의 형태를 만든 다음 결의 반대 방향으로 꿰매 접합시킨다(손으로 할 경우 매우 힘든 작업이다). 그러고 나서 옆쪽이 납작한 밀방망이 모양의 도구를 이용해 창을 평평하게 만든 다음 캔버스 천으로 된 윗부분을 창에 꿰매 붙인다.

에스파드류의 시작은 비록 초라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신발은 아니다. 애호가들은 로프로 만든 창이 수공예 문화의 모든 걸 보여준다고 말한다. 창을 이어 붙이는 방식이 기본적인 2가지 스타일(발바닥 가운데서 또는 발뒤꿈치와 발끝 부분에서 이어 붙이는 방식)을 뛰어넘어 매우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창의 접합 방식이 다르며 고안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것도 꽤 있다”고 타시에스는 말했다. “우리 상점에서 개발한 방식도 있지만 지금은 전통 방식으로 받아들여져 널리 이용된다. 끈을 묶는 스타일도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카탈루냐 경찰에 납품하는 에스파드류는 발스(카탈루냐의 도시) 스타일로 만든다.” 발스 에스파드류는 캔버스천이 발등을 많이 덮고 발등에 V자로 연결된 끈을 발목 부분에서 묶도록 돼 있다.

달리가 좋아했던 핀초 스타일과는 사뭇 다르다. “핀초는 리본으로 묶는 스타일”이라고 타시에스는 말했다. “흰 캔버스 천이 발끝과 뒤꿈치 쪽에 조금 들어가고 그 사이를 리본으로 연결한다.” 핀초 스타일은 캔버스 천을 최소한만 사용한다. 옆쪽은 트여 있고 발끝과 뒤꿈치 쪽을 천으로 약간만 감싸서 모양을 지탱해 준다. 리본이 앞쪽의 캔버스 천을 덮으면서 발뒤꿈치 쪽으로 연결되며 발레 슈즈처럼 발목 위에서 나비 모양으로 묶는다.

타베르네르는 발스, 핀초와 함께 카탈루냐식 남성용 에스파드류의 3대 스타일이다. 타베르네르 역시 앞쪽에 장식용 리본이 있지만 핀초보다 캔버스 천이 더 많이 사용된다. 발끝은 캔버스 천으로 완전히 감싸고 뒷부분은 고리 모양으로 돼 있어 뒤꿈치가 드러난다.

이 밖에도 지역에 따라 수많은 스타일의 에스파드류가 있으며 그 역사는 수백에서 수천 년에 이른다. 타시에스는 그라나다 근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4000년 된 풀잎 샌들이 현대 에스파드류의 조상인 듯하다고 말했다. 이 유물은 에스파드류의 매력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시대를 뛰어넘어 패셔너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니 말이다. 게다가 교황이든 경찰관이든 휴가 여행을 떠나는 보통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어울린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