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 기자인 그 남자의 ‘우연한 삶

타임 Inc. 스포츠그룹 편집장 테리 맥도넬 회고록 출간…20세기 말 미국 잡지업계의 실상 재미있고 적나라하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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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넬은 책에서 기사 마감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 얼마나 자주 술에 취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테리 맥도넬은 미국 잡지 역사상 헌터 S 톰슨(1인칭 화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사건을 기술하는 ‘곤조 저널리즘’의 창시자)과 골프를 친 유일한 편집장일 듯하다. 타임 Inc. 스포츠 그룹의 편집책임자인 그는 환각제에 취한 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잡지의 수영복 특집호를 기획했다. 또 그가 내놓은 한 아이디어는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에게 “정말 멍청하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맥도넬은 소설가 리처드 포드부터 여배우 마고 키더까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문화의 주요 인물들과 친분을 맺고 협업을 했다.

남자다운 삶을 추구했던 포드는 맥도넬을 사냥에 데려갈 정도로 가깝게 생각하진 않았다. 맥도넬은 최근 펴낸 회고록 ‘우연한 삶(The Accidental Life)’에서 그에 대한 섭섭함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대목을 제외하면 이 책에선 보복 심리나 독설, 자기과시를 찾아볼 수 없다. 내로라하는 종이 잡지는 거의 다 거쳤을 정도로 많은 잡지사에서 근무한 맥도넬은 에디팅을 매우 좋아한다. 에드워드 애비(생태주의 작가)를 인터뷰하기 위해 유타 주 시골의 바까지 찾아가고 기사 제목에 불만을 품은 스파이크 리(영화 감독 겸 배우)를 기꺼이 상대했다.

맥도넬은 책에서 기사 마감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맞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또 얼마나 자주 술에 취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향수에 빠져 사는 사람은 아니다. 최근 어느날 오후 뉴욕 로어 맨해튼의 한 해산물 식당에서 맥도넬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왓츠앱을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 암호화된 메시징 서비스를 이용해 이라크 바그다드에 사는 아들 닉(저널리스트 겸 소설가)과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했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과 연락할 때는 모두 그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맥도넬은 말했다. 고급 학술잡지와 상품 카탈로그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디지털에 푹 빠진 밀레니엄 세대의 말처럼 들린다.

새로운 것에 대한 맥도넬의 열정은 메시징 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그로브 어틀랜틱 출판사의 모건 엔트리킨과 함께 인기 디지털 문학잡지 ‘리터러리 허브(Literary Hub)’를 창간했다. 맥도넬은 책과 잡지, 신문 등 출판물의 암울한 현실을 잘 알지만 “지금이 기자에겐 더 없이 좋은 때”라고 주장한다. 얼음이 가득 담긴 거대한 그릇에서 굴 칵테일을 고르듯 “할 일이 무척 많다”는 설명이다.

‘우연한 삶’은 맥도넬이 지금까지 해온 일에 관한 책이다. 20세기 말 미국 잡지업계에 대해 사람들이 상상하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잡지를 편집하면서 거물급 남성 언론인들과 친분을 맺었다. 코스모폴리탄의 전설적인 편집장 헬렌 걸리 브라운과도 절친이다(브라운은 독자들과 친근감을 유지하려고 M10 버스를 타고 센트럴 파크 웨스트 거리를 달려 출근한다).

맥도넬은 범죄소설가 리처드 프라이스와 자주 어울렸고 음악 잡지 롤링 스톤을 창간한 잰 웨너와 함께 아이다호 주 새먼 강에서 래프팅을 했다. 또 뉴욕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일레인스 레스토랑에 자리 잡은 문학 클럽하우스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이 책에는 많은 작가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 40년 동안 맥도넬이 기자로 일한 주요 잡지의 수는 놀랄 만큼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아웃사이드, 롤링 스톤, 뉴스위크, 에스콰이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등이다. 맥도넬은 잡지 기자 일을 즐겼고 짐 해리슨, 토머스 맥궤인, 수전 올리언 등의 작가들과 일하는 걸 좋아했다. 싱어송 라이터 지미 버펫과도 함께 일했다. 버펫은 아웃사이드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 기고했고 후자의 수영복 특집호에서는 ‘Getting the Picture’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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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삶 / 테리 맥도넬 지음 / 펭귄랜덤하우스 펴냄

당시는 종이 잡지가 TV의 도전을 받긴 했지만 아직 인터넷에 패하진 않았을 때라 잡지 기자라는 직업이 그렇게 기이하게 생각되진 않았었다. 맥도넬이 정치풍자가 PJ 오루크에게 의뢰한 롤링 스톤의 기사 ‘코카인 에티켓(Cacaine Etiquette)’은 무척 재미있다. 오루크는 이렇게 썼다. “코카인과 에티켓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것들은 ‘코카인’과 ‘더 많은 코카인’처럼 늘 붙어 다닌다.”

출판 미디어업계의 규모가 갈수록 작아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업계가 융성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 맥도넬은 “피플 잡지에서 일하던 한 기자는 언젠가 크리스마스 파티 때 송아지 피카타(얇게 썬 고기에 밀가루와 달걀 옷을 입혀 기름에 익힌 이탈리아 요리)에만 2만 달러를 썼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썼다.

이 책에서 맥도넬은 자신의 실수와 잡지산업의 단점을 인정한다. 일례로 에스콰이어 잡지에는 ‘스파이크 리는 경멸스러운 백인을 혐오한다(Spike Lee Hates Your Cracker Ass)’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맥도넬은 그 제목이 ‘증오를 불러일으킬 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화가 난 스파이크 리에게서 전화를 받았을 때 몹시 당황스러웠다고 돌이켰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부끄럽다”고 맥도넬은 말했다. 그는 또 주요 잡지의 편집장 중엔 여성이 별로 없으며 발행인 중에 유색인종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글에서나 대화에서나 맥도넬은 잡지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낙관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에디터는 낙관적이어야 한다. 다음호는 지난호처럼 형편없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