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마우스로 그려낸 일상

이재선 작가, 소소한 풍경 사진에 작가의 기억을 모던하게 담은 팝아트 전시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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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 작가(아래)의 작품 ‘어느 목요일 밤’(위 왼쪽)은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우스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빨간 트램’(위 오른쪽)은 이탈리아 유학시절의 기억을 담은 작품이다.

“순수 사진 예술의 벽을 깨려는 노력의 결정체다.”

예술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진작가 이재선(67)이 개인 전시회 ‘꼴레지오네 팝아트(Collezione Pop·Art)’를 두고 한 말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는 디지털 아트와 사진이 만난 ‘팝아트’를 선보였다. 진중하고 낮은 톤의 사진과 작가 의도와 다르게 마우스가 그려낸 비정형 선들의 조우는 신선함 그 이상을 선사한다. 작가의 따뜻한 기억을 담아서일까. 디지털 기술에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상이한 세계를 어색한 경계선 없이 도회적으로 그려냈다.

1983년 홍익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 광고팀에서 3년간 재직한 이 작가는 외도를 충분히 즐겼다는 듯 돌연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밀라노에 있는 이탈리아 사진 전문대학(Istituto Italia di Fotografia)에서 그는 순수 사진 예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돌며 현지 풍경과 일상을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빛으로 사물을 담는 사진에 매료됐다.

유럽은 그에게 창작의 기쁨뿐만 아니라 패션을 한국에 알리는 기회도 줬다. 장 폴 고티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지아니 베르사체 등 세계 최고 디자이너들의 패션 사진과 기사를 한국에 소개하는 ‘특파원’ 역할을 한 것. 사진이 인연이 돼 소소하게 시작한 일은 프랑스 파리의 기성복 박람회 쁘레따뽀르떼와 밀라노 컬렉션 등 굵직한 패션쇼의 사진작가로 활동하는 계기가 됐다. 제일모직에서 일했던 경험도 한몫했다. 세계 패션산업의 중심이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오던 ‘르네상스’를 체험한 그였기에 국내 일간지와 패션 잡지들에 최신 패션 트렌드를 감각 있게 전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나기 전 영레이디, 라벨르 등 여성지에서 아트 디렉터로 이름을 알렸던 터라 국내 미디어로부터 그의 사진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1998년 외환위기는 그에게 또 다른 삶을 강요했다. 이탈리아를 떠나 서울에 온 그는 서초구 양재동에 스튜디오 플라스티크(Plastique)를 열고 상업 사진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하지만 늘 창작에 목말랐던 그는 모델라인 30주년 기념 전시회 ‘더 월(The Wall)’을 끝으로 수십 년 간 몸담았던 상업 사진계를 떠나 자신만의 오롯한 작품 세계에 빠져들었다.

평소 ‘사진은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는 강남 일대를 매일 걸으며 거리에서 만난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탈리아에서처럼 말이다. 늘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그에게 기술은 하나의 창작 도구가 됐다. 필름 카메라가 DSLR로 전환될 때 포토샵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만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했다. 사진이라는 순수 예술의 경계를 뛰어넘어 팝 아트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붓 대신 마우스로, 남이 원하는 작품이 아닌 내가 원하는 작품으로 진정한 자신의 세계를 찾았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어느 목요일 밤(Gio Ve Di Sera)’을 보자. 강남의 한 전시장 풍경을 담은 붉은 톤의 사진에 관능적인 눈빛을 보내는 3명의 여인과 남성을 등장시켰다. 평범한 사진에 일탈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우스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빨간 트램(Tram Rouge)’은 밀라노 유학시절의 기억을 담았다. 파주 영어마을을 찾은 작가가 전시된 전차를 보고 밀라노 도심을 가로지르던 전차가 생각나 만든 작품이다.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던 이미지는 강남 한복판의 러시아워를 배경 삼아 다시 살아났고 르네 마그리트, 살바도르 달리의 초현실주의 작품처럼 어울리지 않는 2개의 세계를 연결시켰다. 난해할 것 같지만 유쾌한 화풍으로 감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작가에게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변은 “느긋하게”였다. 마음 편하게 꾸준히 활동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이라 한다. 연륜에 혈기왕성함이 더해져 7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했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비즈아르떼 이관종 대표는 “이재선 작가의 작품은 사진과 회화가 가질 수 있는 장점의 집약체”라고 말했다. “주거환경을 바꾸는데 최상의 방법은 미술 작품으로 장식하는 것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하나로 여러 가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아마 작가의 기억과 관람객의 기억이 따로 또 같이 만나서일 것이다.

– 김상호 기자

[전시회 ‘꼴레지오네 팝아트’는 오는 3월 15일까지 이태원 경리단길 모던 펍 ‘MOWMOW’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