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방울이 주는 감동

영국의 보틀링 업체 ‘라스트 드롭 디스틸러스’는 대량 판매 후 남은 소량의 진귀한 위스키만 골라 판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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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에스피(왼쪽)와 톰 야고는 2008년 영국의 독립 보틀링 업체 ‘라스트 드롭 디스틸러스’를 창업했다.

영국 런던의 메이페어에 있는 고급 주류 상점 ‘헤도니즘 와인스’(이하 헤도니즘)의 매장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매장 뒤쪽의 선반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값비싼 위스키들로 가득 차 있다. 자물쇠가 채워진 유리 진열장에 보관된 금색과 호박색의 위스키는 조명을 받아 마치 액체 보석처럼 빛난다. 유명한 ‘라프로익’과 ‘마칼란’ 브랜드의 빈티지 위스키 사이에 1960년에 블렌딩한 스카치 위스키 한 병이 눈에 띈다. 영국에서 판매되는 위스키 중 이 종류로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병이다. 같이 진열된 위스키 병들과 달리 ‘라스트 드롭 디스틸러스 리미티드’(이하 라스트 드롭)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제조업체가 아니라 보틀링 업체(제조업자로부터 위스키를 사들여 블렌딩 작업을 거친 뒤 병에 담아 판매하는 업체)의 이름으로 내놓은 제품이라는 말이다.

헤도니즘 매장 안의 참나무로 된 시음대 앞에 영국 주류업계의 거물 톰 야고가 앉아 있다. 이 상점의 최고운영책임자 앤드류 랜킨이 단골 고객 10명을 상대로 시음회를 하는 동안 야고는 간간이 풍자적인 논평을 던지고 업계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야고는 그런 비밀을 정말 많이 알고 있다. 90세가 넘은 그와 동업자 제임스 에스피는 조니 워커 블루 레이블과 시바스 리갈 18년, 말리부, 베일리스 아이리시 크림(위스키에 크림을 섞어 만든 리큐어) 등을 생산했다. 라스트 드롭은 주류업자로서 그들의 길고 성공적인 여로를 마무리하는 사업이다. 그래서 그들은 독립 보틀링 업체의 귀감이 되기를 희망한다.

독립적인 보틀링(IB)은 통 속의 위스키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특이한 방식이다. 보틀링 업체가 증류업체에서 위스키를 통째로 사들인 다음 병에 담아 시중에 내놓을 시기를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일부 보틀링 업체는 특정 위스키를 증류업체보다 몇 년 전 혹은 후에 판매한다. 또 어떤 업체들은 사들인 위스키를 다른 통에 옮겨 숙성시켜 맛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어쨌든 한 증류업체에서 같은 시기에 증류된 위스키라도 독립 보틀링 업체를 거쳐서 시중에 나온 제품은 증류업체에서 파는 것과는 맛이 다르다.

라스트 드롭은 또 다른 차별점이 있다. 이 업체는 그 이름이 암시하듯이 특정 위스키의 마지막 남은 분량만을 판매한다. 회사 명함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Before there is no more)’라는 모토가 적혀 있다.

야고와 에스피는 희귀할 뿐 아니라 품질이 최고인 빈티지 위스키를 찾아 다닌다. 두 사람이 2008년 라스트 드롭을 창업한 이후 출시한 제품은 총 6종에 불과하다. 블렌딩한 스카치 위스키 4종과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1종, 코냑 1종이다. 짐 머리가 발행하는 위스키 안내서 ‘위스키 바이블’은 라스트 드롭에서 생산한 위스키 5종 모두에 상을 수여했다. ‘올해의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상과 ‘올해의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상 등이다. 지금까지 라스트 드롭에서 생산한 총 592병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건 약 40병뿐이다.

라스트 드롭은 현재 일곱 번째 보틀링을 준비 중이다. 오는 10월 엄선된 유통업체들을 통해 라스트 드롭의 단골 고객을 상대로 판매에 들어간다. 1961년산 싱글 그레인 위스키로 지금은 문을 닫은 스코틀랜드의 증류주 업체 덤바튼에서 제조한 것이다. 야고와 에스피가 이 회사에서 사들인 위스키는 32병 분량에 불과하다. 가격은 소매업자들이 붙이기 나름이지만 라스트 드롭의 위스키는 보통 병당 수천 달러에 팔린다. 이번 제품은 매우 희귀해서 가격이 더 높아질 전망이다.

라스트 드롭의 판매·마케팅 책임자 비니 에스피(제임스 에스피의 딸)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사들인 위스키 대다수가 ‘우연히 운 좋게’ 찾아낸 것들이다. 자체 보틀링에 필요한 분량보다 더 많은 위스키를 생산하는 증류주 업체가 종종 있다. 그럴 경우 그 업체는 프리미엄 숙성 블렌드를 제조하겠다는 희망으로 그 위스키를 통 속에 남겨 놓는다. 하지만 담당 직원이나 전략이 바뀌면 그 위스키가 그대로 창고에 남겨질 우려가 있다. 바로 그럴 때 증류주 업체는 위스키의 맛이 변하기 전에 라스트 드롭에 전화해 살 의향이 있느냐고 묻게 된다.

보틀링은 잘만 하면 큰 돈벌이가 되는 사업이다. 라스트 드롭이 가장 최근 출시한 50년 된 더블-머추어드 블렌디드 스카치는 헤도니즘에서 병당 3000파운드에 팔린다. 라스트 드롭이 하는 일은 여러 통의 위스키를 블렌딩해 병에 담는 작업이 전부라는 점을 생각할 때 고수익 사업으로 보인다. 애초에 숙련된 블렌딩 작업과 장기간의 숙성 과정을 통해 훌륭한 위스키를 생산해낸 장본인은 증류주 업체이기 때문이다.

야고에 따르면 대다수 증류주 업체는 마지막 몇 통밖에 안 남은 오래된 위스키의 보틀링에 관심이 없다. 자사가 마케팅하는 위스키가 아닐 경우 특히 그렇다. “우리가 취급하는 병 수는 일반 위스키 업체가 흥미를 가질 만한 분량이 아니다”고 야고는 말했다. “위스키 업체들은 보통 수백~수천 병을 취급한다. 한쪽 구석에 남겨진 소량의 위스키에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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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드롭 디스틸러스의 50년 된 ‘더블 머추어드’ 블렌디드 스카치 위스키.

하지만 2013년 11월 글로벌 주류업체 디아지오가 대규모 보틀링 작업 후 남겨진 소량의 위스키를 자체 판매하는 프로젝트 ‘오펀 배럴(Orphan Barrel)’을 시작했다. 목표는 라스트 드롭과 마찬가지로 “창고에 처박혀 잊혀져 가는 귀하고 맛있는 위스키를 애호가들에게 공급하기 위해서”다.

오펀 배럴 프로젝트를 통해 지금까지 7종의 버번 위스키가 출시됐다. 대다수가 8~12년 숙성된 제품이며 가장 오래된 종류는 ‘블로우하드(26년)’다. 하지만 위스키 평론가들은 이 위스키가 제대로 숙성되지 않았다고 평했다. 위스키 전문 잡지 ‘위스키 애드버킷’을 창간한 존 한셀은 “블로우하드가 4 반세기 이상 담겨 있던 오크통이 외부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과식 후 마시는 식후주로나 쓰일 만하다”고 썼다. 디아지오는 자사의 ‘희귀하고 맛있는’ 위스키가 소화제 취급을 받아 기분이 상했을 듯하다.

라스트 드롭의 마스터 블렌더 랜킨은 “오래된 위스키의 보관에는 위험 부담이 따른다”고 말했다. 위스키가 처음 통에 따라질 때는 알코올 함량 63도의 맑은 액체다. 위스키를 나무통에서 숙성시키는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나무가 위스키에 색깔과 맛을 부여하며 알코올 함량을 낮춰주기 때문이다.

증류주 업체로서는 보틀링의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다. 오크통에 너무 오래 놔두면 알코올이 지나치게 많이 증발한다. 영국 주류법에 따르면 스카치 위스키의 알코올 함량은 최소 40%가 돼야 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위스키 맛의 조절에 있다. 위스키를 저장통 안에 오래 둘수록 나무 맛이 많이 난다. 위스키를 저장할 때 흔히 쓰이는 오크통은 탄닌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탄닌은 위스키의 숙성을 돕지만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위스키의 톡 쏘는 맛이 강해진다.

헤도니즘의 위스키 진열장에 채워진 자물쇠가 말해주듯이 제대로 숙성된 위스키는 가치가 매우 높으며 인상 깊은 맛을 선사한다. 시음대 위에는 라스트 드롭의 최신상품 3종이 놓여 있다. 위스키 바이블에서 ‘올해의 스카치 위스키’로 선정된 48년 된 블렌디드 스카치와 1967년산 싱글 몰트 스카치, 그리고 병당 가격이 3000파운드인 50년 된 더블 머추어드 블렌디드 스카치다.

첫 번째 위스키는 제조업체에서 1977년 블렌딩해 버번 위스키를 보관했던 통에서 숙성시킨 제품으로 황금색이 돌고 잘 익은 복숭아 맛이 난다. 1967년산 싱글 몰트는 혹스헤드(위스키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225~250ℓ들이 오크통)에서 숙성시켜 단맛과 훈연 향이 난다. 세 번째 위스키는 1995년 블렌딩한 제품으로 최소 30년 된 스카치 50여 가지가 들었으며 셰리주를 보관했던 통에서 20년 더 숙성시켰다. 아주 풍부하고 복합적인 맛이 나며 과일과 향신료 향이 돈다.

라스트 드롭은 올가을 1961년산 싱글 그레인 위스키를 출시한 뒤엔 어떤 제품을 내놓을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희귀하고 오래된 술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고 레베카 야고(톰 야고의 딸로 헤도니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가 말했다. “버번이나 럼, 포트 와인이나 셰리주 등에도 관심이 많다. 위스키는 앞으로도 우리 사업의 중심이 되겠지만 거기에 얽매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서두에서 언급한 마지막 한 병 남은 그 스카치 위스키는 과연 누가 살까?

– 미렌 지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