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품은 미술관

인터렉티브 체험과 소셜미디어, 온라인 미술품 데이터베이스 등으로 위압적인 이미지 벗고 관람객에게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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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립미술관(SMK)에서 관람객들이 작품 속 상황을 흉내내며 사진을 찍고 있다.

덴마크 국립미술관(SMK)은 2014년 전시 현대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사진 촬영 금지’ 표지판을 없앴다. SMK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책임자 요나스 하이데 스미스에 따르면 미술관들이 (안전상의 이유나 저작권법에 근거해) 고집스럽게 지켜온 규칙들이 스마트폰을 소지한 관람객의 위반으로 유명무실해진 게 그 이유다. “규칙은 이제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SMK가 이 표지판을 없앤 건 작은 변화지만 더 큰 혁명의 일부였다.

미술관들은 관람객을 인터넷에 빼앗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답답하고 위압적인 이미지를 털어내고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인상을 주려고 노력해 왔다. 미술시장 사이트 ‘인밸류어블’이 올해 초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요즘 미국에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방문하기보다 인스타그램과 핀터레스트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이 더 많다. 또 18~24세 미국인 중 거의 절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신인 미술가를 접한다. 한편 미술관이나 갤러리 방문 회수가 1년에 1번 꼴도 안 되는 미국인이 전체의 84%에 이르며 전혀 가지 않는 경우도 15%나 된다. 미술관이 더 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으려면 소셜미디어를 포용해야 한다. 많은 미술관이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 과정도 그림 그리기처럼 시간이 많이 든다.

유럽의 미술관 컨설팅 업체 ‘라 마그네티카’의 알렉스에스피노스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작품 선택에선 대담성을 발휘해도 본연의 보수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며 사업과 전시 방식에서도 혁신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소셜미디어의 부상이 맞물리면서 미술관들은 큰 위기를 맞았다.” 그동안 소셜미디어 관련 전문기술에 투자할 자금 부족으로 발목 잡힌 미술관들이 이제 서서히 온라인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초기에는 관람객이 미술작품과 함께 셀카를 찍거나 유명 작품의 디지털 복제품 속에 자신의 사진을 삽입하는 ‘셀카 설치미술(selfie installations)’이 유행했다. 2013년 파리 퐁피두 센터는 관람객들이 살바도르 달리의 ‘메웨스트의 입술 소파’ 복제품 위에 앉아 사진 찍는 것을 허용했다.

스미스는 이런 방식보다 증강현실 체험과 인스타그램의 사진 경연, 특별히 설계된 앱을 이용하는 편이 더 깊은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터렉티브 체험은 재원이 넉넉한 대형 미술관의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관광명소에서 멀리 떨어진 갤러리 중에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살아남는 경우도 있다. 대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유명한 대형 미술관을 먼저 찾겠지만 그 다음엔 소형 미술관이나 갤러리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평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고 있던 미술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에스피노스는 말했다.

인체 해부학 표본 등 섬뜩한 소장품을 전시한 런던의 헌터리언 박물관은 2013년 페이스북 계정과 텀블러 웹사이트를 개설한 덕을 톡톡히 봤다. 당시 이 박물관의 최고학습책임자(CLO)는 “소셜미디어 계정의 유지·관리는 현재와 미래의 관람객과 관계를 맺는 재미있고도 필수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헌터리언 박물관의 CLO인 헤일리 크루거는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소셜미디어 활동은 관람객의 증가 측면에서는 눈에 띄는 효과를 못 봤다. 그보다는 우리 박물관의 소장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높이고 쌍방향 대화를 장려하는 효과가 있다.”

일부 미술관은 데이터 분석과 인터넷 커뮤니티의 피드백을 이용해 효과적인 전시방식을 결정한다. 미국의 클리블랜드 미술관은 2009년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관람객의 관람 패턴을 추적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관람객들은 큐레이터들이 선호하는 방식(설명문을 읽은 다음 거기에 제시된 순서대로 관람하기)을 따르지 않고 관심이 가는 작품들 사이를 무작위로 옮겨 다니며 감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이 미술관은 인터렉티브 체험을 위주로 한 ‘갤러리 원’을 신설했다. 모든 전시작의 디지털 버전이 함께 전시된 이 전시실에서는 관람객이 곧 자신의 가이드가 돼 주도적으로 작품을 감상한다.

이런 경향은 미술관이 포퓰리즘에 무릎을 꿇고, 관람객 수가 소장품과 전시품 선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앞날을 예고하는 걸까? 에스피노스는 소셜미디어가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반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미술가의 전시회를 열 경우 온라인에서 특정 커뮤니티에 초점을 맞춰 관람객을 끌어모을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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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파리 퐁피두 센터는 관람객들이 살바도르 달리의 ‘메 웨스트의 입술 소파’ 복제품 위에 앉아 사진 찍는 것을 허용했다.

런던 서펀타인 갤러리스의 예술감독 한스 울리히-오브리스트는 인스타그램이 “21세기 미술가들을 위한 든든한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명 미술가들은 소셜미디어를 발판으로 팬을 확보해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게 될 정도로 지명도를 높일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일랜드 출신의 미술가 지니브 피기스(44)도 같은 생각이다. 그녀는 2013년 아이폰을 사고 나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에 작품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미술계에서 고립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피기스는 설명했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이 이런 상황을 바꿔놓았다. 뉴욕의 해프 갤러리가 그녀의 작품 사진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의 작품이 그 갤러리에서 전시됐다. 아일랜드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외국에 가본 적이 별로 없는 그녀가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만에 처음으로 미국에 갔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 작품의 경우는 문제가 복잡하다. 이런 작품들은 미술관 사이의 정식 계약을 통해 대여와 전시에 관한 합의가 이뤄진다. 계약서에는 대개 대여받는 쪽에서 ‘작품을 복제할 수 없다’는 조건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스마트폰을 소지한 관람객들의 경우는 어떻겠느냐?”고 스미스가 물었다. SMK 같은 갤러리들은 자체 소장품에 대해서만 자유재량권을 갖는다. “우리는 소장품이 워낙 많아(26만 점)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면 소재가 바닥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소셜미디어가 오프라인 미술관과 갤러리들을 몰아낼까? 앞으로 우리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실을 돌아다니는 대신 루브르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통해서만 작품을 감상하게 될까? “그렇게 되진 않을 것 같다”고 에스피노스는 말했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경험을 기억하고 싶어 한다.” ‘구글 컬추럴 인스티튜트’(1000개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소장한 작품 20여만 점으로 구성된 온라인 고해상도 컬렉션) 같은 디지털 미술품 데이터베이스가 실제로 어떤 한 작품 앞에 섰을 때의 감동을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처음으로 직접 봤을 때의 경이로운 느낌에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다. 울리히-오브리스트는 음악산업의 전례를 생각하면 짐작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다운로드가 CD를 대체했지만 라이브 공연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온라인 갤러리가 실제 미술관과 갤러리를 대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온라인으로 작품을 보면 볼수록 전시회에 가고 싶은 욕구도 더 커진다.” SMK가 구글 프로젝트에 등록한 이유도 그래서다. “사용자에게 우리 작품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플랫폼이 많아질수록 더 좋다”고 스미스는 말했다.

온라인 미술품 데이터베이스는 새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모나리자’를 직접 볼 생각이 없던 사람들이 온라인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초상화에 흥미를 갖게 되면 마음이 달라질지 모른다. 스미스는 온라인이 관람객뿐 아니라 미술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사람들에게 소장품을 보여주고 미술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미술관 본연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 크리스 스토클-워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