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투어에도 할리우드 바람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들, 맛 좋은 와인과 아름다운 풍경에 연극이나 영화적인 요소 가미해 관광객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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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의 영화 박물관에서는 코폴라 감독의 영화에 나왔던 소품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영화 ‘터커’(1989)에 나왔던 자동차.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소노마 카운티에 있는 부에나 비스타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원래는 시음장에서 대표적인 와인 몇 가지를 맛본 뒤 이 역사적인 포도원 곳곳을 둘러볼 생각이었다(이곳은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오래된 상업 와이너리로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이 시작된 곳이다). 하지만 19세기식 프록 코트(과거 서양 남자들이 입던 긴 코트)와 중절모 차림을 한 남자가 나를 맞았다. 그는 유럽 귀족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는 듯했다. “환영합니다. 저는 어거스턴 하라스티 백작입니다.” 그가 말했다.

“설마 그럴 리가요?”라는 내 말을 무시한 채 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포도원에서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품위 있는 와인을 만듭니다. 알코올 맛이 강하지 않은 와인이죠. 우린 특별한 와인에 가족 중 누군가의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엘리노라’ 샤르도네는 제 아내의 이름을 딴 것이랍니다.”

진짜 어거스턴 하라스티 백작은 최초의 헝가리 출신 미국 이민자로 캘리포니아 포도 재배의 아버지로 널리 인정 받는다. 그는 1857년 이곳에 와이너리를 처음 지었다. 그러니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진짜 하라스티 백작이라면 200세가 다 됐을 것이다. 사실 그는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 조지 웨버다. 그가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에는 연극조의 설명 없이 와이너리 투어와 시음이 진행됐다.

하라스티 백작이 시작한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은 성공적으로 맥을 이어가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세계 최대의 와인 산지 중 하나로 연간 30억 병을 생산한다. 소노마 카운티는 나파 밸리와 함께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의 중심을 이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동차로 1시간밖에 안 걸려 지역 주민이나 외국인 방문객 모두에게 짧은 나들이 코스로 인기다. 또 이 지역 포도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음식 맛 좋은 레스토랑과 시음장을 갖추고 저장고에서 와인 세일을 하는 등 관광 여건이 몰라보게 향상됐다.

이번 와인 투어의 그 다음 목적지는 소노마 카운티 북쪽 끝 게이서빌에 있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이하 코폴라)였다. 부에나 비스타는 이곳에 비하면 아주 소박한 축에 속했다. 코폴라는 영화 박물관과 포도원, 휴양지가 어우러진 곳으로 매년 15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은다.

코폴라에 도착하니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E 스트리트 밴드의 음악이 쾅쾅 울렸다. 시음장으로 가는 길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영화를 기리는 기념물이 전시된 박물관에 들렀다. 영화 ‘대부’(1972)에서 돈 코를레오네가 쓰던 책상, ‘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플레이보이 모델들이 착용했던 고고 부츠와 미니 스커트, ‘드라큘라’(1992)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입었던 갑옷 등등. 영화 박물관을 지나니 아르헨티나 소갈비로 유명한 레스토랑과 시음장이 나왔다. 시음장에서는 코폴라에서 생산되는 48종의 와인 중 몇 가지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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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 카운티의 스트라이커 와이너리 시음장에서 방문객들이 와인을 맛보고 있다(왼쪽). 부에나 비스타 와이너리에서는 어거스턴 하라스티 백작으로 분장한 배우가 포도원 안내를 한다.

나파 밸리에도 큰 포도원을 갖고 있는 코폴라 와이너리는 연간 100만 상자(1200만 병)의 와인을 생산한다(부에나 비스타의 연간 생산량은 10만 상자다). 사실 소노마 카운티의 와이너리는 연간 5000~1만 상자를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가 대다수다. 이들 업체는 와인을 회원과 방문객에게 직접 판매한다.

소노마 카운티의 포도재배 전문가 글렌 시걸은 “소규모 와이너리들의 이런 특성이 사람들을 그곳으로 불러들인다”고 말했다. “이 업체들이 생산하는 와인은 포도원에 가야만 살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이 지역은 경치가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사람들이 친절하다.” 게다가 소노마 카운티에서 생산되는 피노 누아르와 샤르도네 와인은 맛이 아주 뛰어나다. 대다수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국의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로부터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받았다.

할리우드식으로 운영하는 대규모 포도원 두 곳을 방문했으니 그 다음엔 조그만 부티크 와이너리들을 찾아가 보는 게 좋을 듯했다. 그래서 먼저 바치갈루피 빈야즈를 찾았다. 힐즈버그 시 외곽의 러시안 강이 흐르는 이 지역은 미기후(microclimate, 주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정 지역의 기후)가 프티트 시라 품종을 재배하기에 알맞게 따뜻하고,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르 품종을 키우기에 적당할 정도로 선선하다.

바치갈루피 가문 사람들은 19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이민해 줄곧 이 지역에서 살아 왔다. 이 가문의 후손인 찰스(치과의사)와 그의 부인 헬렌(약사)은 1950년대에 땅 약 48만㎡를 사들여 훌륭한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르 와인을 생산해 왔다. 지금은 그들의 손녀인 니콜라가 포도원을 운영한다. 매년 각 품종을 300상자 정도 생산하는데 이 와인을 구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포도원 시음장을 찾아가서 니콜라를 만나 직접 사 들고 나오는 것이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해안가 언덕에 자리 잡은 포트로스 빈야드는 더 인상적이다. 그곳에 가려면 미국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구불구불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주 116번 도로를 지나야 한다. 그런 다음 태평양 연안 도로로 불리는 1번 도로를 타고 몇 ㎞ 더 간다. 오렌지 카운티부터 멘도치노까지 해안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이다.

포트 로스 역시 이민자 집안 소유다. 1970년대 중반 남아공에서 이민한 레스터와 린다 슈워츠는 원래 이 400만 ㎡의 농장에 양로원을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국을 그리며 남아공 원산의 피노타주 포도 나무 몇 그루를 심은 것이 계기가 돼 서늘한 해안 지방에서 잘 자라는 피노누아르와 샤르도네까지 품종을 확장하며 아예 포도원을 만들게 됐다. 싱글 빈야드 피노 3종과 샤르도네 1종, 피노타주 1종을 맛보고 나니 파커가 이들 와인에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라스티 백작이 살아 있었다면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을 듯하다.

– 그레이엄 보인턴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