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자’ 도널드 트럼프

사업 경력을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내세우지만 그의 파괴적인 행동에 도시·사업체·투자자·파트너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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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남긴 업적은 많은 파괴·원한과 함께 약간의 빌딩이 전부다.

미국 맨해튼의 본위트 텔러 빌딩 앞에 먼지가 날렸다. 불법 체류 노동자들이 해머를 휘두르며 건물 외벽을 헐고 있었다. 1980년 6월 5일 오후 작업 현장에는 적개심이 감돌았다. 보수가 몇 주씩 늦게 지급되는 일이 빈번했지만 그 폴란드인들은 미국 내 합법 체류자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응할 수 없었다.

그들이 철거하는 외벽은 건축 예술이었다. 청동·백금, 깨진 알루미늄, 유약 입힌 세라믹, 보석처럼 반짝이는 착색유리…. 많은 뉴욕 주민은 그 아름다운 조각물이 보존되기를 희망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저부조(얕은 돋을새김) 조각판 2개를 복원해 전시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떼어내 달라고 개발업자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개발업자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작업자들은 그 50년 된 아르데코(1920년대 유행한 장식미술) 패널을 부숴 돌·자갈·흙 더미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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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자신의 상장회사가 파산한 2004년부터 NBC 리얼리티쇼 ‘수습사원’에서 성공한 사업가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런 무지한 행동은 맨해튼 예술계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개발업자는 비판을 묵살했다. 기자들과의 전화 통화에서 ‘존 배런’이라며 자기 대변인 행세를 한 그 뻔뻔한 개발업자는 34세의 도널드 트럼프였다. 조각판 보존에 개당 3만2000달러의 비용이 들고 1억 달러 규모의 트럼프 타워 공사가 며칠 지연된다는 변명이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조각판들이 예술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며 큐레이터들을 뛰어넘는 전문가 행세를 했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국가적 유명 인사가 되기 오래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그의 사업경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가 지나간 길에는 언제나 적개심과 파괴가 남았다. 그의 무모함·오만, 절제되지 않은 복수심이 파괴적인 행동을 부채질했다. 거기에 도시·사업체·투자자·파트너 심지어 가족까지 희생됐다.

트럼프는 이제 가장 크고 가공할 파괴 작업의 마무리 과정에 있다. 공화당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지난 10월 초 여성들을 비하하고 성추행을 자랑하는 녹음이 공개된 이후 트럼프는 자신의 선거운동을 막가파식으로 이끌고 있다. 현재는 은행가·언론인·정치인들이 단합해 자신을 해치려고 방대한 음모를 꾸민다며 자신의 악의적인 캠페인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분통을 터뜨린다. 이는 그의 광적인 지지자들과 공화당 사이에 크고 깊은 골을 만들고 있다. 오는 11월 8일 대선에서 트럼프가 이기든 지든 공화당은 36년 전의 아르데코 패널처럼 파편화할 것이다(트럼프 선거 진영은 뉴스위크의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 40년 동안 트럼프를 지켜본 사람에게는 이 중 어느 것도 놀랍지 않다.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은 그가 모든 도전을 성공으로 탈바꿈시키는 탁월한 사업가이자 100억 달러의 자산가라는 주장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본모습은 그와 거리가 멀다. 그보다는 엄청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모험적인 벤처사업으로 부친의 성공을 키워 나가려 했지만 어떤 합리적인 기준에 비춰봐도 번번이 실패한 사업가였다.

아예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지 모른다. 1982년, 트럼프가 뉴저지 주 당국에 신고한 개인 순자산은 3억2100만 달러였다. 하지만 그 밑천은 주로 아버지의 연줄뿐 아니라 대출과 은행신용 보증이었다. 트럼프 측근에 따르면 2년 뒤에도 그의 자산에 큰 변동은 없었다. 2004년 도이체 방크는 대출심사 과정에서 그의 자산 규모를 7억8800만 달러로 평가했다. 현재 재산이 100억 달러에 달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경제지 포브스는 실제 자산 규모를 37억 달러로 추산한다. 분명 거금이지만 트럼프가 어떤 거래도 하지 않고 대신 1982년 모든 자산을 매각해 스탠더드&푸어스 500지수 기반의 펀드에 투자했다고 가정해 보자. 배당을 재 투자했을 경우 개인 재산이 59억 달러로 불어난다. 그가 주장하는 현재 자산 규모 100억 달러를 3년 전에 돌파하고도 10억 달러 이상 남는다. 오늘날 그의 재산은 130억 달러를 넘어 포브스 추산액의 4배에 육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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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타워를 세우기 위해 1980년 본위트 텔러 건물 앞부분을 헐었다.

바꿔 말해 트럼프가 지난 35년 동안 집에서 정원 잔디만 깎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이 시나리오에는 커다란 보너스도 따른다. 수많은 사람이 도널드 J 트럼프와의 만남에서 조롱·사기 또는 그 밖의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건물에 자기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지만 그의 이름을 딴 병원 건물은 없다. ‘도널드 J 트럼프 기증’이라는 명판이 붙은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도 없다. 그는 학식의 증거로 항상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 스쿨 출신임을 내세우지만 그 대학에 그의 이름이 붙은 건물은 하나도 없다(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그는 학부생으로 2년만 다녔고 경영전문대학원 프로그램 학위는 취득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불우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거액을 기부한 워런 버핏,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마이클 블룸버그 또는 찰스 프랜시스 피니 등과 같은 저명한 억만장자들과는 닮은 점이 거의 없다. 트럼프가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특별히 애쓴 증거도 없다. 그가 남긴 업적은 많은 파괴·원한과 함께 약간의 빌딩이 전부다.

트럼프는 골프 경기에서 걸핏하면 속임수를 쓴다. 함께 골프를 친 두 사람에 따르면 그는 경기 후 자신의 스코어카드를 고쳐 패배를 승리로 바꿔 놓기도 했다. 트럼프 일가와 가까운 사람에 따르면 그는 플로리다 주에서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노부부를 설득해 귀중품 2점을 ‘체험’해 보기로 한 뒤 반환도 물건값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그는 맨해튼 5번가의 불가리 매장에서 고가의 주얼리를 구입한 뒤 매장 측과 공모해 빈 상자들을 구매품이 담긴 양 위장해 주 경계 밖으로 반출하는 방법으로 뉴욕 주 소비세를 내지 않았다. 트럼프는 친구와 수년 간 지루한 소송전을 벌인 이유를 두고 그가 자신의 성공을 사람들 앞에서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옆에서 들은 사람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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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포스트에 실린 트럼프의 세번째 부인 멜라니아의 1995년 누드 사진.

트럼프는 기업인들이 자기 사무실에 찾아 왔을 때 현 부인 멜라니아에 관해 자랑하며 그녀가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의 누드 사진들을 보여줬다고 2명의 은행가가 증언했다.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전 중역에 따르면 트럼프는 직원들에게 동료가 있는 자리에서 그들의 결점을 보고하도록 해 회사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질녀와 조카가 트럼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당시 치매에 걸린 아버지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형 쪽 혈육과의 관계를 단절하도록 유서를 고쳐 쓰게 했다는 주장이다. 소송에 격분한 트럼프는 조카의 병든 아기 치료비를 대주기로 했던 약속을 취소했다(양측은 공개되지 않은 조건으로 합의를 봤다).

이상의 사례에는 모두 제보자의 이름이 없다. 조금이라도 비판을 받으면 트럼프가 무섭게 반격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모든 정보원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모두 트럼프가 자신들을 법정으로 끌고 가거나 자신의 경력을 해치려 할까 두려워서다. 그들은 그것이 트럼프의 최대 장기 중 하나임을 잘 안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든 협박하고 위협하고 고소해 입을 닫게 만드는 수법이다.

그는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해치려는 의도를 일찌감치 드러냈다. 예컨대 1980년 본위트 텔러 빌딩의 철거작업에서 불법체류 신분의 폴란드 근로자 고용과 관련해 훗날 뉴욕 주의 연방판사는 노조 연금기금을 빼돌리려는 공모의 일환이라고 판결했다.

또 다른 사례는 그 다음 해 등장했다. 트럼프는 맨해튼의 부자 동네인 센트럴 파크 사우스의 오래된 호텔과 인접 아파트 건물을 재개발 목적으로 구입했다. 아파트에 100여 명의 입주자가 살고 있었지만 시와 주 당국에 제출한 재판서류에 따르면 트럼프는 그들을 쫓아내기 위한 집중 공세를 시작했다. 주민들을 상대로 시당국이 말하는 이른바 ‘괴롭히기 소송’ 세례를 퍼부었다. 난방과 온수 공급을 차단하고, 빈집에 노숙자들을 들여보내 주민들에게 불편함과 두려움을 주려 했다. 건물 경비를 줄여 그 18개월 동안 건물 내 절도 사건이 급증했다.

트럼프는 주민과 정부의 항의를 일소에 부쳤다. 아파트 주민들을 호사하는 백만장자로 폄하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공판 기록을 보면 주민 중 상당수가 노인 또는 중산계급이었다. 1986년 소송절차가 지지부진하자 트럼프가 마침내 아파트 건물 철거 계획을 포기해 주민들의 잔류가 허용됐다.

트럼프는 그렇게 5년간 법정투쟁을 벌이는 사이 또 한편으로 미식축구 리그도 망쳐놓았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미식축구 내셔널리그(NFL) 팀을 인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신생 유에스리그(USFL) 팀을 인수했다. USFL의 아이디어는 간단했다. 미식축구는 미국의 국민 스포츠인데 봄에는 NFL 경기가 없으니까 그 시즌에 USFL 경기를 펼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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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FL 구단주들은 리그를 서서히 키우면서 지출의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었다.

USFL은 1983년 출범했다. 타이밍은 더 없이 좋았다. NFL은 1982년 가을의 선수 파업 여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케이블 스포츠 네트워크 ESPN이 막 출범한 참이었다. 프로그램 개발 수요가 커졌다. 업계 분석가들은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생 USFL은 12개 팀으로 구성됐다. ABC 스포츠와 USFL은 약 2000만 달러에 달하는 2년 중계권 계약에 합의했다. ESPN과의 계약이 뒤를 이었다. USFL의 설계자로 명성을 얻은 탬파베이 밴디츠 팀의 존 배세트 구단주는 리그를 서서히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망한 신생 벤처 투자가 그렇듯이 구단주들은 한동안 적자를 보겠지만 7~8년 뒤에는 USFL이 NLF과 대등해져 우수 선수 영입 경쟁에 뛰어들 만한 자금력이 생길 것이라고 베세트 구단주는 말했다.

USFL 첫 시즌 후 트럼프는 오클라호마 주의 석유사업가로부터 뉴저지 제너럴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배세트 구단주의 계획이 엉망이 됐다. 트럼프는 봄에 미식축구 경기를 하는 건 멍청한 생각이라고 단언했다. 신생 리그가 NFL과 같은 시즌에 경기를 개최하며 경쟁하려 들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배세트 구단주가 경고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묵살했다. 그는 “신이 봄에 미식축구를 원했다면 야구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비용을 줄이는 대신 돈을 마구 뿌리며 스타 선수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돈을 풀어 NFL과 USFL에 연봉 인상 도미노가 일어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티켓 가격을 인상해야 했다. 트럼프는 또한 치어리더들을 늘리기로 하고 트럼프 타워 지하에서 오디션을 열어 미성년자들을 다수 선발했다.

1986년 배세트 구단주는 뇌종양과 사투를 벌이면서 무모한 새 구단주를 통제하려 애썼다. 트럼프는 어르고 달래는 수법으로 봄 리그 구상을 포기하고 가을에 경기를 열자며 다른 팀들을 설득했다. 가을리그 진영은 변호팀을 법정에 내보내 NFL 리그가 불법적인 독점 체제라고 주장했다. 배심원단은 그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USFL이 얻어낸 손해배상액은 1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독점금지법에 따라 3배로 늘린다 해도 3달러였다.

USFL은 항소한 뒤 법적인 전략의 일환으로 그해 봄 시즌을 개막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도 결정이 뒤집어지지 않으면서 USFL은 붕괴되고 말았다. 선수·아나운서·경영자·치어리더 등 수백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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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그 전략을 묵살하고 허셸 워커(오른쪽) 같은 선수들에게 돈을 마구 뿌리며 연봉 인상 전쟁을 촉발했다.

트럼프는 언젠가 “나는 적이 있어야 좋다”고 말했다. “나는 적을 때려눕히기 좋아한다.”

이 말을 한 1989년 무렵 그는 연달아 맹목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상대는 억만장자, 중간급 기업 관리자, 그냥 만만해서 인생을 짓밟아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리어나드 스턴이라는 뉴욕 억만장자와의 싸움이 가장 추하고 이해할 수 없었다. 스턴은 애완용품 업체를 부동산·미디어 제국으로 키웠다.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은 1988년 봄이었다. 스턴의 잡지 중 하나인 ‘세븐 데이즈’에 트럼프 타워에 관해 그리 악의적이지 않은 기사가 하나 실렸다. 아파트를 되파는 가격이 광고의 주장만큼 높지 않다는 논평이 담겨 있었다. 앞서 트럼프 타워의 전 주민들이 손해 보고 아파트를 팔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해 새로울 게 없는 내용이었다.

논평은 사실이었지만 격분한 트럼프는 스턴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분명 트럼프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 쓴 대단히 부정확하고 편향된 기사를 ‘세븐 데이즈’에서 읽었다. 망신당했다.” 트럼프는 곧이어 ‘세븐 데이즈’의 모기업인 스턴 퍼블리싱의 데이비드 슈나이더먼 사장에게 메모를 보냈다. 트럼프 건물들에 거주하는 거의 모든 주민이 집단소송을 제기하려 한다며 모두가 별 볼일 없는 매체의 그 논평에 격분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자신은 고소할 마음이 별로 없지만 소송을 제기하려는 수많은 아파트 소유주들을 말릴 수 없어 동참하기로 했다고 썼다.

‘세븐 데이즈’에 트럼프의 당시 부인 이바나 그리고 그의 플라자 호텔 재단장에서 그녀의 역할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리자 그는 위협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격분했던(그리고 무명의) 트럼프 아파트 소유주들이 당초 기사로 입었다는 피해에 관해 왜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스턴이 자금을 대고 트럼프를 다룬 다큐멘터리에 여전히 피해망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스턴의 부인을 십자포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누군가 ‘뉴욕 데일리 뉴스’에 가십거리를 흘렸다. 스턴의 부인이 트럼프의 사무실로 자주 전화를 걸어 만나달라고 졸랐다는 내용이다. 그 뒤 트럼프는 그 내용을 공식 확인하며 “통화했지만 나는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스턴 부부는 고소를 검토했지만 그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스턴 부인은 트럼프의 주장을 “터무니없고 사춘기 소년 같은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트럼프가 해코지하려던 억만장자는 스턴뿐이 아니었다. 트럼프는 애틀랜틱시티에 카지노를 개장한 뒤 훨씬 더 성공한 카지노 업계 경영자 스티브 윈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트럼프는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윈의 골든 너겟호텔·카지노 사장인 데니스 곰스를 설득해 근로 계약을 파기하고 트럼프 타지마할로 옮기도록 했다. 윈이 네바다 주 법원에 트럼프를 고소한 뒤 재판 과정에서 윈에 대한 ‘개인적 반감’으로 곰스 사장을 스카우트한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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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오만과 무능으로 그의 3개 애틀랜틱 시티 카지노가 파산하고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청업자들의 공사대금도 지불하지 않았다.

스턴이나 윈 같은 슈퍼 부자들은 종종 트럼프의 사나운 공격에도 비교적 무사히 벗어났다. 그러나 그처럼 힘세지 않은 사람들은 때때로 짓밟혔다.

1990년 마빈 로프먼은 ‘재니 몽고메리 스콧’이라는 2류 투자회사에서 근무하는 무명의 애널리스트였다. 그는 애틀랜틱시티 카지노 업계에 대한 투자분석 전문가였다. 트럼프의 사상 최대이자 가장 큰 예산을 들인 카지노 트럼프 타지마할이 그해 봄 개장 예정이었다. 그 전망 기사를 작성하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로프먼 애널리스트에게 전화했다. 그는 타지마할이 개장을 둘러싼 홍보 효과 덕을 보겠지만 그 뒤로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로프먼 애널리스트는 “일단 10월~2월 찬바람이 불면 버티기 힘들다”며 “수요가 없다”고 WSJ에 말했다.

기사를 보고 격노한 트럼프는 ‘재니 몽고메리 스콧’에 팩스 서신을 보내 로프먼의 발언을 ‘언어도단’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그 발언을 공개 철회하거나 아니면 로프먼 애널리스트를 해고하라고 요구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대형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트럼프는 썼다.

회사의 압력을 받은 로프먼 애널리스트는 다음날 트럼프에게 사과 서신을 팩스로 보내며 WSJ이 맥락을 무시한 채 자기 말의 일부만 인용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밤 사이 생각을 바꿔 또 다른 편지를 보내 사과를 철회했다. 하루 뒤 로프먼 애널리스트는 해고당했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은 트럼프는 로프먼 애널리스트를 계속해 공개적으로 성토했다. 뉴욕포스트,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배런스, 포천 등의 매체에 로프먼 애널리스트가 함량미달이라고 평했다. 인콰이어러지에는 그 6개월 전 로프먼의 해고를 막아줬다고도 말했다. 트럼프는 배니티 페어에 최악의(그리고 거짓) 주장을 펼쳤다. 로프먼이 과거 “내게 주식을 매입하면 긍정적 의견을 제시해 주겠다는 암시”를 던지며 자신을 통해 주식을 매입해 달라고 간청했다면서 공갈과 사기 혐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최후에 바보 꼴이 된 쪽은 트럼프였다. 그는 타지마할 개장 전에 로프먼 애널리스트의 컨설팅을 받았어야 했다. 로프먼은 훗날 트럼프를 상대로 한 소송을 비밀 합의로 타결 짓고 전 직장 ‘재니 몽고메리 스콧’ 상대로는 75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타지마할에 관해서도 로프먼의 전망이 맞아떨어졌다. 트럼프의 카지노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리라고 로프먼이 점 찍은 시점 한 달 뒤인 1990년 11월 타지마할은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트럼프의 오만과 무능이 초래한 타지마할의 붕괴와 함께 그는 똑똑한 업종 분석가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날려버렸다.

1988년 11월 트럼프는 메릴 린치를 통해 6억7500만 달러 어치의 정크본드(고위험 고수익 채권)를 발행했다. 그 돈으로 리조트 인터내셔널로부터 타지마할을 인수해 재건하려는 목적이었다. 은행 차입만 이용하겠다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대출자들은 넉넉히 자금을 제공하려 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고리의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한 투자자들도 마찬가지 입장이었다. 트럼프는 채권을 팔기 위해 14%의 이자 지급을 약속했다. 당시 투자등급 회사채의 9% 이자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그 돈으로도 트럼프의 비이성적인 카지노 꿈을 이루기에는 부족했다. 채권 투자 설명서는 향후 15개월 동안 타지마할의 건축·운영비가 8억500만 달러이며, 트럼프의 출자금 7500만 달러 외에 나머지는 트럼프의 신용을 비롯한 기타 융자로 충당된다고 추산했다. 트럼프는 자신이 부동산에 대한 수억 달러의 대출 보증도 선다는 사실을 공시에 밝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신용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카지노 주차장 확장을 위한 부지 내의 주택소유자들과의 싸움에도 돈이 들어갔다.

트럼프는 타지마할과 앞서 건설한 카지노들(트럼프 캐슬과 트럼프 플라자)의 성공이 애틀랜틱 시티의 재건과 파멸을 판가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 받게 된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거액을 카지노에서 쓴다. 평소 냉장고나 신차 구입에 쓰일 돈이다. 카지노로 자금이 몰리면서 지역 사업체들이 타격을 받게 된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가 카지노를 올리는 동안 애틀랜틱 시티는 무너져내렸다. 실업률이 급증하고, 수백 개 음식점이 문을 닫았다. 세탁소와 전문점들도 사라졌다.

시·주민·투자자들의 미래가 위태로워지면서 그리고 트럼프의 자금 기반이 위험할 정도로 얇아지면서 시장에선 트럼프도 여느 현명한 사업가처럼 기존 카지노 제국의 안정에 초점을 맞추리라고 여겼다. 대신 트럼프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사업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추가로 3억8000만 달러를 차입해 항공사 이스턴 셔틀(트럼프 셔틀로 개명)을 인수하고, 백화점 체인 인수에 뛰어들고, 심지어 아메리칸 항공에 대한 75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발표했다.

1989년 후반 카지노 고위 경영자 3명이 기이한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숨졌을 때 트럼프가 직접 경영 일선에 나섰다. 얼마 뒤 그의 정크본드 가격이 폭락했다. 살로몬 브러더스 같은 월스트리트 기업들은 채권 매도 의견을 내놓았다. 그의 달콤한 보장에 트럼프의 채권을 구입했던 많은 사람들이 큰 손실을 입고 있었다.

카지노들의 재무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되자 트럼프는 경영진 숙청에 돌입했다. 일부는 자질부족인 인물들로 교체했다. 그 뒤 해고한 고위 임원들을 공개 매도하면서 일부와의 퇴직 계약을 지키지 않았다. 다른 임원들도 트럼프의 변덕스런 리더십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사표를 던졌다. 타지마할의 최고재무책임자 도널드 우드는 1990년 4월 탈진과 탈수 증세로 들것에 실려나갔다. 트럼프는 이틀 뒤 그를 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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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타워 탬파 콘도미니엄 매입자들은 트럼프가 라이선스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개발업자를 고소했을 때에야 그는 개발사업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진은 시카고 강변에 건설 중인 건물 앞에 선 트럼프.

1990년 6월에도 해고는 계속됐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트럼프는 항공사 자산을 은행들에 넘겨주면서 500명 이상의 직원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은행들은 또한 트럼프에게 요트를 팔고 긴축예산을 집행하도록 했다. 트럼프는 타지마할 하청업자들에게 3500만 달러를 빚졌지만 갚지 않았고, 타지마할이 어려움을 겪지만 일반 대중은 자신의 브랜드를 더 많이 사랑하게 되리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강화됐다”고 말했다.

1990년 11월 타지마할이 파산했다. 고리의 이자를 약속 받았던 채권소유자들은 투자액의 상당 부분을 훨씬 더 위험한 투자자산인 그 카지노 지분과 교환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멀쩡했다. 은행들은 그에게 6500만 달러의 추가 차입을 허용하고 대출에 대한 개인적 지급보증을 면제해 줬다. 단지 트럼프 제국의 완전한 붕괴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되면 그에게 돈을 빌려준 대출기관 중 상당수도 같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 뒤 트럼프 카지노 제국 전체가 파산법정에 섰다. 트럼프는 인원을 더 감원하고, 투자자들은 더 많은 돈을 날렸고, 실업이 급증하면서 애틀랜틱 시티 경제는 악화됐다.

1992년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자 발행된 채권 중 일부의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가격의 약 70%까지 회복했다. 트럼프는 기뻐하며 금융 담당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투자자들의 손실이 보기만큼 심각하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이들 채권 가격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증거”라며 “사람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3년 뒤 그는 신설된 트럼프 호텔·카지노 리조트의 주식을 상장했다. 리조트는 그의 애틀랜틱 시티 카지노 3곳과 인디애나 주에 신설한 또 다른 카지노의 모기업이었다. 그는 주식거래에서 자신의 이니셜인 DJT를 종목기호로 사용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트럼프는 그 리조트 회장으로서 41% 지분을 유지했다. 주가가 주당 29.25달러로 천장을 쳤을 때 그의 지분 가치는 약 4억 달러에 달했다. 상장 후 1년도 채 안된 시점이었다.

그러나 리조트는 트럼프의 리더십 아래서 매년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그의 회장 임기 마지막 해엔 적자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2004년 주당 주가가 65센트로 굴러떨어지고 회사는 파산했다. 트럼프 브랜드를 믿고 투자했던 사람들은 투자자금의 90% 이상을 날렸다. 같은 기간 동안 스탠더드&푸어스 500 지수 기반의 펀드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원금을 배로 불렸다. 사상 최고의 강세장에서 그리고 흔히 화폐 발행 면허로 불리는 사업에서 트럼프가 지나간 길에는 폐허만 남았다. 그리고 트럼프 호텔 투자자들은 적자만 봤다.

반면 트럼프 자신은 잘나갔다. 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매년 적자에도 불구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보면 회장 재임 기간 동안 그 상장기업으로부터 6000만 달러 이상이 트럼프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다.

기적으로 불리는 트럼프 신용회생 이면의 추한 비밀이다. 그는 대중에게 끈기와 수완으로 살아 돌아왔다고 동화를 들려줬다. 실제 비결은 수백만 명의 저축을 날려버리던 회사에서 돈을 주워담은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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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앙갚음하기로 악명 높다. “나는 적을 때려눕히기 좋아한다”고 말했다.

통상적인 사업계약은 이름과 직책을 나열하거나 또는 관련 기업만 밝히기도 한다. 이런 문서에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2004년 트럼프가 작성한 비밀 계약서 사본을 뉴스위크가 입수했는데 그 첫 페이지가 바로 그런 식이었다. 계약 상대는 플로리다 주의 유한 회사 심댁-로벨로 기재됐다. 트럼프는 “관련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동산 건설·개발업자”로 스스로를 밝혔다.

그런 묘사가 트럼프의 자존심은 살려줬겠지만 원래 계약 당사자만 문서를 볼 수 있었다. 어느 쪽도 계약의 존재를 공개해선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트럼프의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 즈음 정보에 밝은 투자가들은 대부분 트럼프에 등을 돌렸다. 그는 전과 달리 체이스 맨해튼에서 안면을 내세운 악수 거래나 개인 보증만으로는 신규 개인신용 대출을 받을 수 없었다. 뉴스위크가 입수한 금융기록에 따르면 대신 그는 2003년 스위스 은행 UBS의 케이먼 제도 지점에 의존했다. 그러나 융자를 받기 위해 상당히 많은 자산을 담보로 내놓아야 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 월드 타워 지분 일부, 페인 웨버 중개사 계좌의 모든 투자자산, 모기지 증서, 그 밖에 수많은 증권과 부동산 등이었다. 곧 도이체방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금융기관이 그를 외면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트럼프는 도이체방크에서 받은 6억 4000만 달러의 건축 대출을 상환하지 못했다. 트럼프를 믿었던 모든 투자자가 손실을 입으면서 주식과 채권 시장의 문까지 닫히고 말았다.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의 자금으로 운용되는 펀드가 트럼프의 개발사업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그것도 한 번뿐이었다. 사모기업인 콜로니 캐피털도 트럼프의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면서 트럼프 오거니제이션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월스트리트와 전 세계 금융기관 모두 트럼프가 사업가로선 최악임을 알게 됐다.

그러자 트럼프는 방향을 바꿔 TV를 통해 명성을 재건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의 상장회사가 파산한 2004년부터 트럼프는 NBC 리얼리티쇼 ‘수습사원(The Apprentice)’에서 성공한 사업가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금융뉴스를 꼼꼼히 챙겨 읽지 않은 한 일반인은 트럼프의 이 같은 이미지가 코미디임을 알 길이 없었다.

‘수습사원’의 성공으로 트럼프는 새로이 신뢰를 얻게 됐다. 그런 이미지는 아파트와 심지어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자신의 브랜드를 파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른 기업과 개발업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상당한 수수료를 받았다. 트럼프 스테이크, 트럼프 워터, 보드카, 초콜릿, 모기지 회사 등 모두가 경제적으로 다른 대안이 거의 없던 트럼프가 자기 이름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시도였다. 2004년에는 영리 교육기업 트럼프 대학을 설립하기로 했다. 대학은 수천 명에게 사기를 쳤다는 비난 속에 문을 닫았다. 전 트럼프 대학의 학생들이 제기한 집단 소송 2건이 캘리포니아 주에서 진행 중이며, 뉴욕 주에서도 에릭 슈나이더먼 검찰총장이 소송을 제기했다.

심대그-로벨과의 2004년 계약은 제3자의 제품에 트럼프의 이름을 빌려주는 또 다른 거래였다. 이번에는 플로리다 주의 콘도미니엄 아파트 빌딩 건설 프로젝트였다. 사업 시행사인 심대그-로벨이 ‘트럼프 타워 탬파’라는 이름의 사용권을 사들였다. 심대그-로벨은 계약에 따라 ‘트럼프 표준’을 준수해야 했다. 문서는 ‘표준’을 뉴욕시의 트럼프 타워 같은 최고급 빌딩과 대등한 ‘수준의 품질과 품격’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건물이 그런 표준에 부합되는지는 심대그-로벨이 ‘상업적으로 합리적인 판단과 재량’에 따라 단독으로 판정한다고 계약서는 밝혔다. 트럼프는 자금 조달이나 개발사업의 처리 또는 검사 등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광고 사진 촬영에 포즈를 취해주고 돈만 받으면 됐다. 최초 브랜드 사용료 200만 달러에 덧붙여 모든 매출에 대해 최대 25%의 커미션을 챙겼다.

심대그-로벨 측은 잠재적 구매자들이 트럼프가 탬파 건물의 개발자라고 믿도록 하는 마케팅 활동에 집중했다. 다음은 2005년 1월 10일자 보도자료의 첫 문장이다. “도널드 J 트럼프는 오늘 플로리다 주 탬파 중심지구에 ‘트럼프 타워 탬파’로 불리게 될 52층짜리 초고급 콘도미니엄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보도자료는 계속해 그 빌딩이 멕시코만에 세우는 ‘트럼프의 첫 프로젝트’가 된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탬파 투자에 감사한다”는 팸 로리오 시장의 말도 인용했다.

트럼프는 탬파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 거기서 돈을 뽑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아파트 구매자들이 거액의 선금을 내고 콘도미니엄을 계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7년 5월 라이선스 수수료를 모두 지불하지 않는다고 트럼프가 심대그-로벨에 소송을 걸면서 아파트 매입자들이 속았음을 알게 됐다. 심대그-로벨은 건물을 완공하지 못했고 계약금을 낸 사람들은 트럼프를 포함해 모든 관련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을 통해 트럼프의 사기수법이 드러났다. 중저가 쉐보레 자동차에 페라리 브랜드를 붙이는 격이었다. 아파트 구매자들이 서명 전 몇 시간 동안 장문의 아파트 구매 계약서를 읽거나 변호사를 고용해 내용을 검토하지 않는 한 자신들이 ‘미끼 바꿔치기 상술(bait-and-switch, 미끼로 유인한 뒤 다른 제품을 판매하는 수법)’의 피해자 임을 알 길이 없었다. 이들의 소송에 맞서 트럼프는 어쨌든 자신의 건물이 아니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런 사기수법은 번번이 먹혀들었다. ‘트럼프 할리우드’가 실패하자 그는 자신의 이름을 사간 개발업자 호르헤 페레스를 비난했다.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과 타워 포트 로더데일도 압류당하고 30명의 매입자가 제각기 1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트럼프 오션 리조트 바하 멕시코’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수십 명의 매수자가 몰려 3200만 달러의 계약금을 걸었지만 땅파기 공사에도 착수하지 못했다. 이때도 트럼프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개발사업이 실패하면서 수억 달러를 날리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그때마다 매입자는 트럼프가 개발 주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매번 트럼프는 계약서의 깨알글씨를 가리키며 구매자들이 계약서를 더 꼼꼼히 살펴봤어야 했다며 빠져나갔다. 트럼프가 라이선스 수수료 수입으로 거액을 챙기는 동안 잠재적으로 수백 명이 수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트럼프 경력의 상당부분이 이런 식의 사기였다. 그는 박수갈채를 강요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은 파멸시킨다. 또 다른 사람들의 부·경력·명성을 짓밟는 방법으로 이룩한 성공을 한껏 과시한다. 다른 사람들의 공을 가로채면서 자신의 수많은 실패는 인정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충동적으로 자기 과시적인 출세를 추구하며 걸어온 길에 그의 피해자들이 숱하게 쓰러져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에게 한 짓을 미국에게도 똑같이 하겠다고 다짐한다.

– 커트 아이첸월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