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의 힘을 믿어라”

‘타이타닉’과 ‘아바타’ 제작자 존 랜도, 좋은 영화 만들려면 뚜렷한 관점과 공감 불러일으키는 주제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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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랜도는 오락이나 돈벌이를 뛰어넘는 영화 제작의 비전을 추구한다.

존 랜도는 영화 흥행 성적으로 볼 때 역사상 가장 성공한 제작자다. 1997년 제임스 캐머런과 공동 제작한 ‘타이타닉’은 아카데미 11개 부문(작품상 포함) 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사상 최대의 히트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또 2009년에는 역시 캐머런과 공동 제작한 ‘아바타’가 ‘타이타닉’을 뛰어넘어 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미국 뉴욕 태생의 이 영화 제작자는 단순히 오락이나 돈벌이를 넘어서는 영화 제작의 비전을 추구한다. 그는 지난 9월 30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원 영 월드(One Young World )’(젊은 지도자들을 위한 세계 포럼)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을 가볍게 봐선 안 된다”며 “그것은 세계를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그 다음날 랜도를 만나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비결이 뭔지, 영화계가 넷플릭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만약 지금 다시 ‘타이타닉’을 제작한다면 어떻게 달라질지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날 영화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와 기회를 꼽는다면?

현재 영화 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 조절이다. 영화에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각각의 영화가 하나의 새로운 사업이다. 그래서 어렵다. 또 전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만한 영화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만드는 것이 어려운 과제다. 오늘날 영화 산업의 가장 좋은 점은 세계 어디라도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가 영화 시장이며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넷플릭스가 TV와 영화 시장을 잠식하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람들이 극장을 찾지 않는 날이 올 것 같은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집단 경험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고대 그리스 비극 이후 줄곧 이어져 왔다. 다른 사람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다. 라디오나 CD로 얼마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라이브 콘서트에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영화는 라이브 콘서트에 견줄 수 있다. 극장 안이 어두워지고 커다란 화면에 영상이 비쳐질 때 아주 특별한 감흥이 일어난다. 코미디는 300명의 관객이 함께 웃을 때 더 재미있고 비극은 그만큼의 관객이 같이 울 때 더 슬프다. 극장에서 나오면 모두가 방금 본 영화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그건 일상에서 벗어난 특별한 경험이다.

신기술과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방식이 관객과의 연결을 더 쉽게 만드나?

기술 덕분에 콘텐트를 손에 넣기가 쉬워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콘텐트 창조 능력을 스토리텔링과 혼동한다. 비디오 한 편을 찍는 것이 곧 스토리텔링을 의미하진 않는다. 스토리텔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관객을 이야기의 흐름에 끌어들여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많은 사람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훌륭한 영화 감독도 더 많이 나올 것이다. 기쁜 일이다. 하지만 기술을 스토리텔링의 매개체로 이용할 줄 모르는 감독은 가려내야 한다. 펜과 종이를 가졌다고 누구나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과 그저 영화 한편을 찍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분명한 관점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담겨 있어야 한다. 좋은 이야기는 듣는 사람에게 부지불식간에 깨우침을 준다. 이야기에 줄거리만 있고 뚜렷한 관점과 주제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보고 나면 ‘도대체 이 영화를 왜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제작진이 영화를 찍으면서 왜 그 작품을 만드는지 목적의식을 잃었거나 애초에 뚜렷한 방향을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은 영화 촬영 기간이 길어질 경우 중간에 누군가 ‘작품이 더 재미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당초 코미디를 만들 생각이 없었더라도 그런 방향을 흘러가는 수가 있다.

제임스 캐머런 같은 사람들은 처음에 정한 목표를 절대로 잊지 않는다. 누군가 그에게 작품을 더 재미있게 만들라고 말하면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건 코미디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 이야기 줄거리와 주제는 내가 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 목적의식을 놓치는 법이 없다.

과거에 제작한 영화를 신기술을 이용해 다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예를 들어 ‘타이타닉’을 지금 제작한다면 어떤 식으로 관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안겨주겠는가?

우리는 ‘타이타닉’을 개봉한 지 15년 만에 3D로 변환했는데 지금 같으면 애초에 3D로 제작하지 않았을까? 또 ‘타이타닉’을 찍을 때 길이 약 250m의 배를 건조했는데 요즘 같으면 디지털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작업이 쉽긴 해도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는 도움이 안 될지 모른다. 왜냐하면 배우들이 실제로 배 안을 걸어 다니면서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옛날 방식 그대로 찍을 수도 있다. “예전 방식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니 똑같은 방법을 쓰자”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은 디지털로 처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할 때 배우들이 연기하기가 더 힘들어지나?

더 힘들다기보다는 환경이 달라질 뿐이다. 실제 세상을 무대로 촬영한다면 배우는 그 속에서 연기를 한다. 하지만 연극 무대의 배우를 생각해 보라. 배우는 객석을 바라보며 연기한다. 관객에게 등을 돌리고 뒤에 펼쳐진 무대 장치를 보면서 연기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배우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서 연기하는 데 매우 익숙하다.

하지만 ‘아바타’를 촬영할 때는 하와이 열대우림에서 리허설을 했다. 배우들은 그때의 경험을 우리가 창조하는 세계에 적용해 연기했다. 배우들이 그런 방식에 아주 잘 적응했던 것 같다. 그들에겐 그런 환경이 일종의 ‘블랙박스 극장’(네모난 상자처럼 내부가 비어 있어 무대와 객석을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가변형 극장)인 셈이었다.

‘원 영 월드’에서 스토리텔링의 힘에 관해 연설했는데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줄 수 있나?

우리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 그들에게 세상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확실한 주제가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장르보다 더 중요한 게 주제다. 플롯은 관객이 극장을 떠나는 순간 잊혀질 수 있지만 주제는 오래도록 그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오늘날 우리는 긴밀하게 연결된 세상에 산다. 따라서 북미나 중국 등 특정 지역에서만 통하는 주제는 곤란하다.

공상과학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좋은 비유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여기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벌어지는 난민 이야기가 있다’는 식으로 직접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공상과학적 비유로 전환해 제시하면 사람들은 그 의미를 이해하고 세상을 달리 보게 된다.

‘아바타’는 제이크가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눈을 뜨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모든 영화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눈을 뜨고 자신의 행동이 주변 사람과 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 수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직접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이치를 깨닫게 해주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 네이나 배지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