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의 명성을 독창적인 맛으로 지킨다

덴마크 레스토랑 노마의 1호 체인점 ‘108’ 한국계 셰프, 노르딕 퀴진의 기본기 지키면서 창조적인 요리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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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고등어 조각들이 에머럴드 빛 전나무 기름에 잠겨 나오는 이 요리는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지난 9월 20일 늦은 밤 덴마크 코펜하겐 항구에 있는 레스토랑 ‘108’. 이 레스토랑의 주방장인 한국계 덴마크인 크리스티안 바우만의 친구들이 그의 30세 생일 축하 파티를 열었다. 그들은 AC/DC(호주의 로큰롤 밴드)의 음악을 틀고 스파클링 와인이 든 잔을 돌렸다. 레스토랑 밖에 세워진 핫도그 트럭에서 베이컨에 싼 소시지도 사왔다. 테이블 위엔 케이크 2개가 놓였고 그의 동료가 매콤한 향이 나는 커리를 내왔다. 바우만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깜짝 파티를 열어준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그의 축 처진 어깨가 그에겐 생일 파티보다 잠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듯했다.

바우만은 지난 7월 27일 108을 개업한 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16시간씩 일했다. 야심 찬 새 레스토랑의 주방장에겐 흔한 일이지만 바우만은 다른 요리사들에 비해 유난히 압박감이 심했다.

108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널리 인정 받는 ‘노마’의 자매 업체이며 바우만의 상사는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막강한 셰프 르네 레드제피이기 때문이다. 108의 주방장을 맡은 바우만 앞에는 노마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 게다가 108은 노마에서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부모의 그늘 밑에 있는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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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돼지고기와 신선한 물냉이를 얹은 바삭바삭한 팬케이크에 설탕에 졸인 우유를 씌운 이 요리는 108의 대표 메뉴 중 하나다.

“개업 후 지금까지 정말 정신없었다”고 바우만은 말했다. “매일 장시간 일해야 했고 압박감이 컸으며 예약도 엄청나게 밀려들었다. 난 시간과 장소의 개념을 잃어버리다시피 했다.”

체격이 호리호리해 타이복싱 선수처럼 보이는 바우만(실제로 전에 시간이 있을 때는 타이복싱을 즐겼다)은 현지에서 나는 제철 재료를 위주로 요리한다는 노마의 신념을 공유한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에 따라 다른 재료를 첨가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레드제피가 바우만에게 노마의 자매 레스토랑 제1호점을 맡긴 이유는 그가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는 데 필요한 ‘고요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우만은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비판도 잘 받아들인다”고 레드제피는 말했다. “그는 파이터이기도 하다. 난 그가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108의 주방장을 맡게 된 건 바우만에게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는 노마처럼 유명한 레스토랑의 뒷받침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점인지 잘 안다. 하지만 그만큼 손님들의 기대치도 높기 때문에 어려움이 따른다. 108은 지난 1월 팝업(한시 운영) 형태로 처음 선보였다. 예전에는 새로운 레스토랑이 정식으로 평가를 받기 전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좀 벌 수 있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108은 개업하자마자 관심의 초점이 됐다.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바우만은 개업과 동시에 쏟아진 큰 관심에 놀랐다. “팝업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기자와 비평가, 블로거들이 몰려들었다”고 그는 돌이켰다. “리카르도(108의 소믈리에)는 내게 ‘우리가 괴물을 만들었다. 이제 이 괴물을 조종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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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어깨 고기 구이는 훈제 버터 소스를 끼얹어 구운 부드러운 양고기에 시큼한 엘더베리 케이퍼를 곁들인다.

바우만은 또 레드제피와는 다른 개성으로 그와 거리를 두는 법도 배워야 한다. 바우만은 초창기에 노마에서 견습 요리사로 훈련 받은 뒤 코펜하겐의 또 다른 유명 레스토랑 ‘렐레’의 부주방장으로 갔다가 2014년 다시 노마로 돌아왔다. “레드제피와 일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가 뭘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그때그때 그의 마음 상태를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날이면 그는 더 풍부한 맛이 나는 요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바우만은 레드제피가 원하는 걸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다 보니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가 힘들어졌다. “레드제피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난 한동안 길을 잃었었다.”

역설적이게도 바우만이 제 갈 길을 찾은 건 노마의 특징으로 꼽히는 활동(재료 채취)을 통해서였다. “숲에 가서 재료를 찾다 보니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요리법을 개발하는 과정을 통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찾을 수 있었다. 바우만은 양 어깨 고기 요리를 개발할 때 미소 된장 소스 200㎏을 다 쓴 뒤에야 주변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발효 자두 쪽으로 눈을 돌렸다.

“자두는 현지에서 많이 나는 재료이기도 하지만 발효 자두에서 전통적인 레드 와인 소스의 맛이 나서 정말 좋았다”고 바우만은 말했다. 108의 정식 개업을 앞두고 그는 참신하고 현대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메뉴의 개발을 완료했다. 일례로 노마에서는 잉어 알을 요리할 때 재료 본연의 진한 맛을 강조하는 반면 108에서는 들장미 열매 기름에 절여 자두 소스를 곁들이고 코리안더 꽃으로 장식한다. 어란의 강한 맛이 단맛과 향신료, 소금으로 중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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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워도우 콘에 담겨 나오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은 식사를 상큼하게 마무리한다.

노마와 다른 면모를 보여주려는 108의 전략은 메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08은 스푼과 포크, 나이프를 보관하는 가죽 주머니부터 푸른색 네온 불빛으로 레스토랑의 이름이 새겨진 주방의 스토브까지 모든 걸 맞춤 제작했다(바우만은 이 두 디자인에 모두 관여했다). 108은 음식 가격도 노마보다 훨씬 싸다. 또 건물 모퉁이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는 아침엔 커피와 페이스트리를, 밤엔 와인을 판다. 최근엔 100크로네(약 1만7000원)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점심 메뉴도 선보였다. 또 유명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 위해 3개월 전부터 예약하느라 부지런을 떨어본 사람들에겐 예약 없이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 몇 테이블을 비워두는 108의 배려가 매우 반갑다.

하지만 바우만이 노마의 자매 레스토랑 운영에 따르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한 건 아니다. “우리 레스토랑의 성격을 잘 모르고 무조건 노마와 똑같은 음식과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108의 예약은 늘 꽉 찬다. 최근 어느 토요일에는 손님 191명을 받았고 테이블 회전이 4번 이뤄졌다. 그래서 이 레스토랑은 최근 일주일 내내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렇게 하기엔 인력이 모자란다”고 바우먼이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우린 해낼 것이다.”

레드제피는 108의 명성이 높아져 언젠가는 누구도 그것이 노마에서 파생된 레스토랑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바우만은 108이 서서히 독자적으로 자리 잡아가는 걸 느낀다. “지난주엔 낯선 손님이 다가와 ‘오늘 먹은 고등어 요리 맛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바우만이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정말 행복하다.”

108은 재료 채취와 발효, 피클, 훈연 등 노르딕 퀴진의 기본기를 충실히 따르면서 창조적이고도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요리를 만든다. 그중에서도 절인 고등어 요리는 매우 인기다. 보기엔 아주 단순하다. 깔끔한 삼각형 모양의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고등어 조각들이 에머럴드 빛 전나무 기름에 잠겨 나온다. 솔향 소금에 살짝 절인 고등어 위에 구스베리를 얹은 다음 전나무 기름을 부은 접시에 담아내는 이 요리에선 바다와 숲의 맛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깔끔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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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의 주방장인 한국계 덴마크인 요리사 크리스티안 바우만은 노마의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어려운 과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

천수국 꽃잎을 질서정연하게 늘어놓은 로메인 샐러드는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신선한 채소에 발효 채소로 만든 짭짤한 페이스트를 뿌려 버무렸다. 돼지 뱃살을 얹은 팬케이크에 설탕에 졸인 우유를 씌운 요리는 좀 실망스럽다. 구운 돼지고기와 신선한 물냉이를 얹은 바삭바삭한 팬케이크가 먹음직스럽게 보이지만 고기와 우유의 지방이 겹치면서 나는 느끼한 맛은 와사비로도 잡아지지 않는다.

108의 3대 메인 요리 중 하나인 양 어깨 고기 구이는 앞의 요리보다는 맛의 균형이 잡혀 있다. 훈제 버터 소스를 넣어 조리한 부드러운 고기에 시큼한 엘더베리 케이퍼가 곁들여져 톡 쏘는 맛을 더한다. 아귀 꼬리에 미소 된장 소스를 발라 그릴에 구운 요리는 칠기처럼 윤이 난다. 그릴의 견목이 타면서 뿜어낸 연기가 생선의 단맛을 한층 더 살려준다. 마지막으로 사워도우 콘에 담겨 나오는 블루베리 아이스크림은 식사를 상큼하게 마무리한다.

– 리사 어벤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