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과학자가 그린 꽃

1833년 찰스 다윈의 난초 스케치가 183년 만에 식물 주제의 미술 작품 모은 신저 ‘플랜트’에 실려

01
1833년 아르헨티나 포트 데지레에서 다윈이 그린 난초 가빌레아 파타고니카.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27년 전인 1833년 찰스 다윈을 실은 탐사선 비글호는 아르헨티나 남부 포트 데지레 해안에 정박했다. 다윈은 나무가 없는 그 해변에 앉아서 난초의 일종인 가빌레아 파타고니아 꽃 한 송이를 그렸다. 약 30㎝ 키의 이 난초는 과나코(남미 안데스 산맥의 야생 라마)가 풀을 뜯어먹는 온대초원에서 자란다.

다윈은 먼저 난초의 순형화관(입술 모양 꽃뿌리)을 굵은 선으로 그린 뒤 줄무늬가 있는 꽃잎 6장을 그보다 가느다란 선으로 그렸다. 그런 다음 그 스케치에 말린 꽃을 붙이고 사인을 한 뒤 영국으로 보낼 채비를 마치고 보관해뒀다.

이 스케치는 그로부터 183년이 지난 최근에야 처음으로 출판됐다. 식물을 주제로 한 미술을 총망라한 신저 ‘플랜트’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책에는 BC 1600년쯤 그려진 미노스 문명의 프레스코화(붉은 황토색의 릴리움 칼레콘디쿰 꽃에 제비들이 날아드는 그림)부터 바늘꽂이 꽃의 씨앗을 전자현미경으로 본 이미지를 손으로 그린 그림까지 다양한 작품이 실렸다. 이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다윈이 이 스케치를 위해 연필을 든 이유는 단지 난초를 그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난초를 알고 싶어서였다. 25년 전 다윈의 스케치를 찾아낸 영국의 난초학자 필 크립은 “그림 그리기는 식물학자들이 식물을 파악하는 중요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크립은 런던 큐가든의 식물표본실에 보관된 영국 왕립식물원의 식물표본 750만 개 중에서 이 그림을 찾아냈다. 그림은 펼쳐진 상태로 보호용지에 싸여 있었다. 크립은 “이 식물표본실에 줄지어 있는 내화성 금속 캐비닛들은 식물의 정체 확인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대한 색인 카드와 같다”고 말했다.

02
플랜트 / 파이던 편집팀 지음 / 파이던 프레스 펴냄

크립이 이 스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 중 하나는 그 과학적 유용성 때문이다. “내가 현장에 갔을 때 (참고용으로) 서둘러 그릴 만한 그림”이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이 그림을 아끼는 또 다른 이유는 다윈에게 일종의 형제애를 느끼기 때문인 듯하다. “식물학자들은 다윈을 무척 좋아한다. 게다가 난초는 그가 열정을 품었던 식물이다.”

‘플랜트’의 편집자들이 이 스케치에 흥미를 갖도록 만든 사람은 큐가든의 미술 큐레이터다. 그들은 이 책을 편집할 때 과학적 가치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17세기에 제작된 동판화 작품은 단단한 봉오리 상태부터 만개하기까지 양귀비 꽃의 변화 과정을 그렸다. 이 작품의 맞은편에는 죽어가는 개양귀비 꽃을 찍은 1968년 어빙 펜의 사진이 실렸다. 종이 티슈처럼 바싹 마른 꽃이 고개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 피할 수 없는 최후에 순응하는 듯 보인다.

크립은 “훌륭한 예술가는 식물학자가 놓치는 걸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식물학자는 식물을 대할 때 그 생장과 소멸의 원리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예술가는 열린 눈으로 바라본다.”

– 이사벨 로이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