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골동품 기계로 짜는 양말

영국 런던의 맞춤 셔츠 전문점 엠마 윌리스, 원통형 뜨개질 기계 ‘그리즈월드’로 고급 사냥용 제품 생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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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윌리스의 사냥용 양말은 색상과 모양이 아름다우면서도 질기다.

영국 디자이너 엠마 윌리스는 셔츠 전문가로 타고났다. 그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싱어송 라이터로 잠깐 활동한 뒤 1980년대 말 런던의 사무실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이 디자인한 셔츠를 팔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15년 전 저민 거리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열었다. 회원제 클럽 같은 분위기의 이 상점 고객 대다수가 그런 클럽에 드나들 만한 상류층 인사들이다. 헤지펀드 매니저부터 귀족까지. 하지만 내가 윌리스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멋진 부자 고객들 때문이 아니라 남성복에 대한 내 식견을 넓혀줬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난 그리즈월드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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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저민 거리에 있는 엠마 윌리스 매장 전경.

그리즈월드는 사냥이나 걷기 전용의 남성 양말을 짜는 원통형 기계다. 난 박물관에 있어야 어울릴 듯한 이 기계의 고풍스러움이 마음에 든다. 최초로 원통형 틀에 뜨개질 바늘을 배열해 이 기계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마크 브루넬이었다(산업 혁명기에 증기선을 발명하고 터널과 철도를 만드는 데 기여한 유명한 엔지니어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이 그의 아들이다). 브루넬이 만든 기계는 튜브 형태의 니트를 연속적으로 짜냈다. 하지만 양말을 만들려면 발꿈치 부분에서 끊어야 했다. 1880년대에 영국 레스터셔에 살던 미국인 발명가 헨리 조사야 그리즈월드가 원통형 뜨개질 기계를 제작해 특허 신청을 했다. 발목 쪽으로 갈수록 통이 좁아지고 골이 지게 짠 양말을 만들어내는 기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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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짜는 기계 그리즈월드.

빅토리아 시대의 발명품 대다수가 그랬듯이 그리즈월드 역시 잡다한 물건을 한데 뒤섞어놓은 듯 보였다. 수동식 크랭크는 주방에서 쓰는 믹서처럼 보였고 본체는 에두아르도 파올로치(스코틀랜드의 팝아트 조각가)가 조각한 금속 중절모나 단거리 박격포 같았다.

처음에 엠마 윌리스의 양말은 서포크 지방의 한 미술가(여름엔 그림을 그리고 겨울엔 골동품 시장에서 산 기계로 뜨개질을 했다)가 그리즈월드로 짰다. “그녀는 아름다운 색상의 메리노 울을 이용했다”고 윌리스가 말했다. “미술가의 안목으로 색상을 선택했고 완성된 작품에 예쁜 이름(이끼·담배·물총새·파프리카 등)을 붙였다.”

하지만 그 미술가가 류머티즘에 걸려 더는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리즈월드는 글로스터에 있는 윌리스 공장으로 옮겨졌다. 요즘은 린 갤러거와 헬렌 프리차드가 그 기계로 양말을 짠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갤러거는 하루 최대 5켤레, 프리차드는 3켤레를 짠다. 사냥 시즌마다 약 200켤레밖에 생산이 안 된다.

윌리스는 캐시미어로도 양말을 짜봤지만 보풀이 잘 일었다. 게다가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한테 캐시미어는 너무 사치스럽고 섬세한 소재다. “메리노 울을 사용하면 색상과 모양이 예쁘면서도 질긴 양말을 짤 수 있다”고 윌리스는 말했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