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와인의 뿌리 찾기 운동

스페인 리오하 지방의 와인업자들, 상표에 ‘리오하’라는 획일적인 이름 대신 포도원과 마을 이름 넣기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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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북부 리오하 지방의 젊은 와인업자들은 개성을 강조한 상표 표기를 주장한다.

아벨 멘도사는 뼛속들이 포도 재배업자다. 와인으로 물든 그의 손가락들이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여기저기 찌그러지고 진흙투성이인 그의 지프차는 스페인 북부 리오하 지방의 후미진 도로에서 자주 눈에 띈다. 멘도사는 이 차로 아발로스, 라바스티다, 산 비센테 등 근처 마을에 있는 작은 포도밭 40군데를 바쁘게 오간다. 그중에는 테니스 코트보다 작은 것들도 있다. 멘도사는 땅에 본능적인 애착을 갖고 있다. 그의 집 주방 벽에는 ‘내가 죽으면 트랙터와 함께 묻어달라’는 글귀가 붙어 있다.

멘도사는 이 지역의 토양과 미기후(microclimate, 주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특정 좁은 지역의 기후)를 누구보다 잘 안다. 멘도사와 몇 시간만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가 지질학과 역사에 얼마나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지, 또 얼마나 겸손한지 알 수 있다. 그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리오하 지역 와인의 뿌리를 되찾자는 운동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대중 앞의 연설보다는 사적인 대화에 더 강한 면모를 보이는 등 여러모로 지도자 감은 아니다. 하지만 이 지역의 대다수 젊은 와인업자들 사이에서 그는 영웅으로 통한다. 20~30대의 포도 재배업자와 와인업자 9명으로 구성된 ‘리오하 ‘n’ 롤러스’ 같은 단체들이 그를 추종한다.

이 젊은이들은 와인 병에 포도원과 마을 이름을 인쇄할 권리를 주장한다. 그 점에서 이들은 더 광범위한 운동의 일부다. 지난해 11월 와인 전문가 15명으로 구성된 단체가 ‘클럽 마타도르’ 선언문을 작성해 스페인 와인업자와 상인, 소믈리에, 와인 전문 기자들의 서명을 받았다(나도 이 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문의 요지는 이렇다. ‘스페인 와인을 원산지와 품질, 정체성으로 분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 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에는 지역을 막론하고 스페인 내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 그 위엔 특정 지역에서 만든 와인, 맨 위엔 단일 포도원에서 생산된 와인이 자리 잡도록 한다.’

이 선언문은 스페인 와인업계 전반을 겨냥했지만 리오하 지역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다. 이 지역에선 포도원의 이름과 포도원이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상표에 표기하는 것이 불법이다[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에서 생산된 모든 와인을 단지 ‘부르고뉴 루즈(레드 와인), 혹은 블랑(화이트 와인)’으로만 표기한다고 상상해 보라]. 이 지역 와인 대다수는 단순히 오크통 안에서 숙성시킨 기간에 따라 ‘호벤(어린)’ ‘크리안사(약간의 숙성을 거친)’ ‘레세르바(상당한 숙성을 거친)’ ‘그란 레세르바(장기간의 숙성을 거친)’로만 분류된다.

멘도사는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털어놨다. “리오하의 토양은 매우 복잡하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해선 안 된다니 말이 되나? 산 비센테만 해도 토양의 유형이 4가지나 되는데 리오하의 와인 대다수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코카콜라처럼 똑같은 상표로 판매된다.” 그가 만드는 모든 와인에 ‘리오하’라고만 표기된 상표가 붙는다.

멘도사는 자신이 생산한 포도의 품질을 매우 중시한다. 이런 경향은 각 포도원의 독특한 특성을 바탕으로 한 와인을 추구하는 세계적 트렌드와 들어맞는다. 여기에는 개성 표현의 욕구 외에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선언문에는 이렇게 쓰였다. ‘우리는 품질의 기준을 높임으로써 스페인 와인의 현주소를 세계에 더 잘 알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 와인을 더 효율적으로 판매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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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하 와인산업의 변화를 추구하는 텔모 로드리게스는 새로운 스페인 와인의 대사 역할을 하기에 적임자다.

리오하에서 생산되는 와인 중에 ‘테루아르’(자연환경으로 인한 포도주의 독특한 향미)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될까? 정확하게 말하긴 어렵지만 대충 25% 정도로 짐작된다. 리오하의 와인 대다수가 이 지방 3개 지역(리오하 알타, 리오하 알라베사, 리오하 바자)의 여러 포도원에서 나온 포도를 블렌딩해 만든다. 바닐라와 오크 향이 풍기며 부드러운 탄닌과 붉은 베리 류의 맛이 난다. 이들 와인 중 일부는 맛과 품질이 뛰어나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리오하의 와인 생산은 규제위원회의 감독과 관리를 받는다. 이 위원회는 변화를 꺼리는 보수적인 기구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리오하는 와인 생산지로서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지닌 지역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더구나 이 위원회의 이사회는 소규모의 가족 경영 와이너리보다는 대기업과 농업 협동조합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혁명은 고사하고 변화를 향한 작은 움직임조차 꺼린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이 이 위원회에 변화를 몰고 왔다. 지난 1월 1일 리오하 와인 업계의 거물 중 한 명인 아르타디 와이너리의 후안 카를로스 로페스 데 라칼레는 위원회가 변화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탈퇴했다. 이 위원회의 9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로페스 데 라칼레는 위원회를 탈퇴한 이후 자신이 생산하는 와인에 ‘리오하’라는 상표 대신 ‘비녜도스 데 알라바’라는 상표를 붙이기로 결정했다. 그의 이런 행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리오하 와인의 상표 표기에 큰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클럽 마타도르 선언과 리오하 와인산업의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의 중심에 텔모 로드리게스가 있다. 그는 멘도사와는 사뭇 다른 사람이다. 와인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교육 받았고 4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언변이 좋은 국제적인 인물로 마드리드에서 산다. 그의 가문이 소유한 레멜루리 와이너리는 1971년 설립된 리오하 최초의 샤토 스타일 포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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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하 알라베사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

1990년대에 집안 사람들과 뜻이 맞지 않아 독자적인 사업에 나선 그는 리오하와 다른 지역에서 테루아르에 초점을 맞춘 와인을 생산해 오다가 2010년 레멜루리로 돌아왔다. 세계 와인업계에 이름이 알려지고 평판이 좋은 로드리게스는 새로운 스페인 와인의 대사 역할을 하기에 적임자다. 클럽 마타도르 선언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 5월 최초로 ‘포도 재배업자들의 모임’을 조직해 스페인의 젊은 와인업자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규제위원회에 ‘우리는 지금 당장 변화를 원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다.

지난 7월에는 ‘리오하 알라베사 와이너리 협회(ABRA)’가 지역 언론사를 통해 규제위원회를 탈퇴할 의사가 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10월 ABRA의 한 관리는 내게 협회에 소속된 업체 중 40여 곳이 로페스 데 라칼레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규제위원회의 여러 관리가 ABRA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지역의 의리를 배신했다’ ‘정치적 동기가 있다’ 등등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이 와인업자들이 규제위원회에서 탈퇴한다면 리오하 와인업계와 위원회 당국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규제위원회는 올해 안에 ‘비녜도스 싱굴라레스(비범한 포도원)’ 제도를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 ‘비범함’의 정의는 가능한 한 많은 와인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광범위하게 설정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역사가 적어도 25년은 되고 와인업계와 비평가들로부터 인정 받은 기록이 있으며 포도를 손으로 따는 포도원이라야 한다. 이 지역의 한 평론가는 리오하의 포도원 중 약 65%가 이 기준에 들어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위원회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건 분명하다.

와인업자들은 또 포도가 생산되는 마을의 이름을 상표에 표기할 수도 있다(그 포도가 완성된 와인의 성분 중 85%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증명할 경우에 한해서라는 조건이 붙는다). 이 방안은 아직도 협상 중인데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이름이 덜 알려진 지역의 와이너리들은 산 비센테나 라바스티다, 라과르디아, 브리오네스 등 리오하 최고 품질의 포도 생산지로 알려진 곳들과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이들 포도원 대다수가 에브로 강 북쪽 리오하 알라베사와 리오하 알타 지역의 점토와 석회석 토양에 자리 잡았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리오하 바하 지역의 와인 업자들은 ‘리오하’라고만 표기된 상표를 계속 사용하기를 바랄 수도 있다.

이 정도의 변화로 혁신을 원하는 세력을 달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지금으로선 각 진영이 비공식적인 휴전 상태에 이른 듯하다. 이것이 지속적인 평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전쟁의 속개를 앞둔 휴지기일 뿐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 팀 애트킨 뉴스위크 기자

[박스기사] 맛 좋은 리오하 와인 6

◎ 2012 아벨 멘도사 그라노 아 그라노 템프라니요: 이름이 말해주듯이 손으로 ‘한 송이 한 송이’ 조심스럽게 딴 포도로 만든다. 풍부하고 짙은 맛이 나는 템프라니요 품종으로 잘 익은 블랙베리와 감초, 바닐라 향이 감돌며 뒷맛이 개운하다.

◎ 2012 푸한자 노르테: 시에라 데 칸타브리아 산맥의 해발 700m 산비탈에 있는 2만7000㎡의 포도원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들었다. 라과르디아에서 가장 고도가 높고 서늘한 포도밭이다. 이 와인은 향이 좋고 맛이 진하면서도 상큼하다. 야생 허브와 달콤한 붉은 과일 향이 나며 백악질의 토양에서 비롯된 석회 성분의 뒷맛이 남는다.

◎ 2010 레멜루리 레세르바: 2010년 빈티지의 균형과 격조가 느껴지는 와인이다. 레멜루리 포도원에서 재배한 스페인 고유 품종 템프라니요와 가르나차, 그라시아노를 혼합해 만들었다. 병에 든 채 오래 숙성시켜도 훌륭한 맛을 기대해볼 만한 와인이다. 희미한 바이올렛 향과 아시아 향신료 향이 은은한 오크향과 조화를 이룬다. 와인 저장고에 한 병쯤 보관해 두면 좋을 듯하다.

◎ 2010 콘티노 레세르바: 에브로 강 유역에 있는 콘티노 와이너리 근처의 포도밭에서 재배한 포도로만 만들었다. 템프라니요 품종을 기반으로 그라시아노와 가르나차를 혼합해 만든 이 와인은 복합적인 향과 신맛이 일품이다.

◎ 2014 아르투케 라 콘데나다: 아르투로와 키케 미구엘은 한때 불도저로 갈아엎어질 위기에 처했던 이 포도원(1920년 설립)을 살렸다. 이 와인에는 향신료 향에 까막까치밥 열매와 블루베리 향이 섞여 있고 신맛과 미세한 탄닌 맛이 감돈다. 와인에 섞인 소량의 백포도가 활력을 더해준다.

◎ 2012 아르타디 발데지네스: 알코올 함량이 14.5%나 되는 와인치고는 놀랍도록 상큼한 맛이 난다. 후안 카를로스 로페스 데 라칼레의 우수한 템프라니요는 라과르디아에 있는 동향의 포도원 한곳에서 생산된다. 향이 좋고 맛이 진하며 여운이 오래 남는다. 블랙베리와 오렌지 제스트 맛이 오크향과 조화를 이룬다.

[박스기사]치즈가 정말 와인 맛 좋게 할까 – 탄닌의 떫은 맛이 지속되는 시간 줄여주고 향 증가시킨다는 연구 결과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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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치즈의 궁합은 과학적으로도 설명되고 있다.

왜 사람들이 와인 안주로 치즈를 즐겨 찾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프랑스의 ‘미각과 섭식행동 연구소(CSGA)’ 연구팀은 한 감각평가 연구에서 와인에 곁들여 먹는 치즈가 와인에 대한 느낌과 선호도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최근 푸드 사이언스 저널에 발표된 이 연구는 프랑스 디종에서 와인과 치즈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참가자들은 에푸아스, 콩트, 로크포르, 크로탱 드 샤비뇰 등의 치즈를 먹은 뒤 화이트 와인 2종(파슈랑·상세르)과 레드 와인 2종(부르고뉴·마디랑)의 맛을 평가했다.

치즈 한 조각을 먹은 뒤 와인 세 모금을 마시고 와인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제시된 항목 중에 선택했다. 그 다음엔 다른 종류의 치즈 한 조각을 먹고 다시 와인 세 모금을 마신 뒤 와인 맛을 평가했다. 각각의 치즈와 와인에 대해 동일한 방식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의 주 저자인 마라 V 갈마리니는 보도자료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치즈를 먹은 뒤에 와인을 마실 경우 특정 와인에서 느껴지는 탄닌의 떫은 맛이 빨리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효과는 실험에 이용된 4종류의 치즈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다시 말해 와인을 마실 때 다양한 치즈를 곁들이면 어떤 와인이든 더 맛이 좋게 느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이들 치즈 중 어떤 것도 와인 선호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고 말했다. 모든 치즈가 레드 와인의 떫은 맛이 지속되는 시간을 감소시켰고 향은 증가시켰다. 또 이 치즈들은 파슈랑 와인의 단맛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상세르 와인의 향에는 영향을 줬다.

또 최근 미국 식품기술연구소(IFT)는 샤르도네 포도 씨 찌꺼기(와인 생산과정에 나오는 폐기물) 소량을 커피에 섞으면 커피의 외양이나 맛, 향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항산화 효과를 증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워싱턴 주립대학의 연구팀은 두 소비자 그룹에 포도 씨 찌꺼기를 각기 다른 비율로 섞은 커피를 마신 뒤 맛을 평가하도록 했다. 첫째 그룹은 커피를 블랙으로, 둘째 그룹은 우유나 크림, 설탕을 넣어서 마셨다.

연구팀은 포도 씨 찌꺼기를 소량만 첨가할 경우 커피의 외양과 향, 맛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포도 씨 찌꺼기의 양을 늘리면 커피 색이 옅어지면서 맛도 연해졌다. 항산화제는 세포를 손상시켜 암을 유발하는 유리기의 생성을 막아주기 때문에 식품에 항산화 효과를 높이는 뭔가를 첨가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