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는 한물갔다고?

데미언 채즐 감독의 신작 ‘라라랜드’, 장르의 특성 최대한 살리는 즐거움 선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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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지망생 미아 역의 엠마 스톤과 재즈 뮤지션 세바스찬 역의 라이언 고슬링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다.

2014년 데미언 채즐 감독은 긴장감 넘치는 영화 ‘위플래쉬’로 주목 받았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가 돼 있는 음악원 신입생과 그를 폭군처럼 몰아붙이며 훈련시키는 스승 사이의 갈등이 보기 안쓰러우면서도 감동적인 영화다. 하지만 채즐의 신작 ‘라라랜드’(국내 개봉 12월 7일)는 전작과 대조적으로 관객에게 행복감을 안겨주는 로맨틱 뮤지컬이다.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영화 촬영장 커피숍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배우 지망생 미아(엠마 스톤)와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치는 재즈 뮤지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고 세바스찬은 미아가 영화배우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로 마음먹는다. 그래서 그는 내키지 않는 R&B 퓨전 밴드 ‘메신저스’(존 레전드가 밴드 리더로 나온다)에 취직한다. 밴드 일은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돼 좋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는 데다 돈벌이를 위한 음악을 추구해 세바스찬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창조적 재능을 썩히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편 미아는 오디션에 계속 낙방하고 독자적으로 개발 중인 1인극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자신감을 잃는다. 게다가 이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기회가 두 사람의 관계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진저 로저스와 프레드 어스테어, 진 켈리 등이 은막을 주름잡던 1940~50년대에는 이런 뮤지컬 영화가 많았지만 요즘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래서인 듯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건 뮤지컬이다’ ‘보는 내내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와서 춤추고 노래할 것이다’고 선언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요즘 관객은 이런 형식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 맞도록 적절하게 짜인 안무 등 기술적으로는 흠이 없지만 관객이 캐릭터에 익숙해지지 않은 초반에는 몰입이 어렵다.

그러나 1막이 끝나갈 무렵 두 주인공이 관객에게 부쩍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로맨스가 무르익으면서 음악이 스토리 전개의 템포나 플롯과 적절하게 맞아떨어진다. 여기서부터는 이 작품이 왜 아카데미상 후보로 거론되는지 이해할 만하다. ‘라라랜드’의 성공 요인은 요즘 영화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독자적인 길을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수시로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탭댄스를 추고 꿈꾸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는 등 과감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유머를 곁들인다.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보는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이 위험한 일탈이 성공한 데는 막강한 출연진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핀 위트록, 로즈마리 드윗, J K 시몬스 등 쟁쟁한 배우가 많이 등장하지만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은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스톤과 고슬링이다.

스톤과 고슬링은 각자의 캐릭터가 몸에 맞춘 듯 잘 맞았다. 이 역할들이 애초에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스톤은 밝은 분위기에선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을 한껏 보여주고, 슬픈 장면에서는 감정에 호소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한편 부드럽고 차분한 성격의 고슬링은 간간이 냉소적이거나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로맨스 영화의 틀에 박힌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대안을 제시했다.

두 주인공은 춤에도 최선을 다하지만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대목은 춤보다 노래에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다. 머뭇거리듯 부드럽게 부르는 이들의 노래 스타일은 두 사람의 다정한 관계뿐 아니라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다. 두 사람의 노래는 자연스럽고 진심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빛나는 건 배우의 연기뿐이 아니다. 촬영감독 리누스 샌드그렌은 시종일관 과감하고 멋진 카메라 효과를 보여준다. 아이리스(인간의 안구를 상징하듯 원형으로 화면이 나타나거나 사라지게 하는 방식)와 디졸브(앞 장면이 사라지는 도중 새 장면을 페이드인 시키는 방식) 등 놀라운 화면전환 기법, 의도적인 노출부족 촬영, 완벽한 실루엣의 흑백 화면 등으로 관객의 눈을 호강시킨다.

대다수 영화가 주인공이 꿈을 실현하는 대목에서 막을 내리지만 ‘라라랜드’는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완벽해 보이던 세바스찬과 미아의 관계에 살짝 금이 가기 시작한다. ‘라라랜드’는 이렇게 어두운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까지 서슴없이 보여주지만 궁극적으로 밝고 상큼한 영화다. 극장을 나올 때쯤엔 좋은 시절에 대한 향수와 행복감으로 마음이 한껏 들뜬다.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