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과 야만성 그 두 개의 얼굴

베트남전 시대의 이중첩자에 관한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 받은 비에트 탕 웬, 스파이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전적 이야기로 인간의 이중성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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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 수상자인 비에트 탕 웬(오른쪽)이 리 C 볼링어 컬럼비아대학 총장으로부터 상을 받은 후 포즈를 취했다.

비에트 탕 웬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닐 때 부유한 백인 학생들 사이에서 외톨이였다. 가톨릭교도인 그의 부모는 열심히 일해서 저축한 돈으로 아들을 가톨릭계 사립 명문교에 보냈다. 하지만 베트남 난민 출신인 데다 부모가 운영하는 식료품점에서 일하던 웬은 대다수가 특권층 집안의 자녀인 교우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난 친구들에게 베트남 출신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게 어떤 기분인지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지만 말이다.” 지난 10월 퓰리처상 100주년 기념 만찬이 열리기 몇 시간 전 뉴욕 맨해튼 중심가의 호텔 로비에서 웬이 말했다[첫 소설 ‘동조자(The Sympathizer)’로 퓰리처상 소설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그 만찬에서 상을 받았다].

웬은 늘 자신이 ‘보통’ 미국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10대 때인 1980년대 어느 해 여름 ‘그레이트 아메리카’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는 삼각모자와 나팔바지 차림으로 ‘양키 코너’에서 놀이기구를 운행했다. 그 즈음 웬은 저축한 돈으로 당시 캘리포니아 남부의 멋쟁이 청소년들이 즐겨 입던 체크 무늬 바지를 샀다. 하지만 그가 메이시 백화점에서 그 옷을 사 들고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질색했다. 그 바지가 너무 미국적이고 어색하다고 여긴 어머니는 그를 타일러 환불받도록 했다.

웬은 당시 자신이 2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려 했다고 말했다. 집에서는 베트남 난민의 아들로, 학교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의 보통 10대 소년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체크 무늬 바지를 샀을 때처럼 고통스러운 결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경험들은 웬의 소설에서 가장 강력한 주제를 떠받치는 힘이 됐다. 두 얼굴을 갖고 주변환경에 따라 어떤 쪽을 보여줄지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웬은 말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런 이중성을 갖고 있다. 두 얼굴을 가진 듯한 느낌은 이민자와 난민에게 특히 심각한 문제다. 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흉내 내게 된다는 말이다.”

‘동조자’보다 더 먼저 썼지만 내년 2월 출판 예정인 단편집 ‘난민들(The Refugees)’ 역시 그런 이중성을 탐험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2명의 게이 남성과 함께 살아가는 베트남 난민부터 자신이 과거에 폭격했던 베트남 시골지역으로 휴가 여행을 떠나는 전 미군 조종사까지 ‘새로운 땅에 발을 디딘 이방인들’의 경험을 통해서다. 웬에게 난민으로서의 경험은 매우 개인적인 것이다. 웬의 가족은 1975년 사이공 함락 이후 베트남에서 탈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포트인디언타운갭 난민촌에 정착했다.

웬은 자신의 블로그에 “내 기억은 네 살 되던 해 미국에 도착했을 때부터 시작된다”고 썼다. “난 한동안 부모님 곁을 떠나 미국 백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것이 우리 가족이 난민촌을 떠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조건이었다.” 그는 그 경험이 자신의 양 어깨뼈 사이에 ‘보이지 않는 브랜드’로 도장 찍혀 있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전 시대의 이중첩자에 관한 소설 ‘동조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두 얼굴을 가진 스파이다.’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 ‘조용한 미국인’(1955)과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에 대한 언급이 간간이 나오는 이 책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인 이중첩자는 베트남 장군을 위해 암살 임무를 수행하고 그에게 충성하는 척하면서 그 딸과 성관계를 하는 등 온갖 배신행위를 저지른다. 뉴욕타임스는 “본 모습을 너무도 여러 겹으로 위장해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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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조자 / 비에트 탕 웬 지음 / 그로브 프레스 펴냄

난 이중성과 두 얼굴에 관한 웬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으로 알래스카 주에서 보낸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 시절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주립공원 가장자리의 산 위에 지은 집에서 난로에 나무를 때며 살았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에는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사준 양복을 입고서야 그들 가족의 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웬은 내 변변치 않은 예를 친절하게 받아들여 이렇게 말했다. “그게 내가 말하려는 바다. 누구나 인생에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로 쫓겨나거나 어쩔 수 없이 이주할 경우엔 그런 순간들이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일상이 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웬은 자신의 첫 소설에서 그 이중성을 다루고 싶었지만 자서전 형식으로 쓰면 지루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스파이 소설이었다. 그는 멋쟁이 친구들이 입는 체크 무늬 바지를 동경하는 이민자 소년이나 새로운 도시에서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고 느끼는 이방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그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할리우드 스릴러처럼 전개가 빠른 스파이 소설 말이다.

“가면을 쓰고 두 얼굴로 살면서 끊임없이 누군가를 흉내 내고 자신의 내면을 의심했던 내 경험을 소설의 소재로 삼을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웬은 말했다. “스파이는 이런 감성적인 체험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였고 과장을 통해 이야기를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동조자’는 웬의 위상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존경 받는 교수[그의 논픽션 ‘낫싱 에버 다이즈(Nothing Ever Dies: Vietnam and the Memory of War)’는 올해 전미 도서상 최종후보 명단에 올랐다]에서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요즘 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뉴욕타임스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쓰고 퓰리처 100주년 기념 만찬에서 뮤지컬 ‘해밀턴’의 제작자이자 주인공인 린-마누엘 미란다와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했다(출판사 측은 퓰리처상 받기만큼이나 구하기 어렵다는 뮤지컬 ‘해밀턴’의 입장권을 웬과 그의 부인을 위해 마련해줬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난 웬에게 ‘난민들’에 실린 단편 소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제임스 카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 공군 조종사 출신의 흑인인 카버는 화를 잘 내고 무례한 행동으로 딸을 끊임없이 괴롭힌다. 독자들은 처음에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의 벽을 뛰어넘어 백인 세계에 들어간 카버가 훌륭한 인물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웬은 ‘누군가가 정말로 고결하고 훌륭하다’는 개념을 반박하는 게 자신의 소설에서 추구하는 주요 목표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엄청난 고난을 극복하고 영웅이 되는 카버 같은 캐릭터는 정말 훌륭한 사람일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가 전쟁에 나가 융단폭격으로 양민을 학살하는 대목에서 그런 환상은 산산조각 난다. “우리 모두는 결점을 지닌 인간”이라고 웬은 말했다. “우리는 인간성이라는 가면과 내면의 야만성을 동시에 지녔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은 없다.”

– 조시 사울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