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테크 허브’ 꿈꾸는 휴스턴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부문 일자리 줄어들자 의료산업 기반 인프라 이용해 생명과학 기술의 상업화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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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텍사스 메디컬 센터(TMC)의 상업화 단지 건설 프로젝트 완공 후의 상상도. 초대형 DNA 형상은 생명과학의 상징이다.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은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풍부하다. 그러나 유가 급락으로 경제가 급속히 둔화되면서 이제 에너지 외 새로운 산업으로 눈을 돌린다. 앞으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된다면 머지않아 휴스턴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비행기 창밖으로 푸른 대지에 새겨진 거대한 이중 나선구조의 부드러운 곡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초대형 DNA 형상은 생명과학의 상징이다. 변덕스런 유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에너지 부문 외 다른 산업을 적극 유치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휴스턴의 의학계 지도자들은 도심에 20억 달러를 들여 12만㎡ 규모의 의료 상업화 단지를 건설하는 대담한 계획을 추진한다. 에너지 부문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가 침체 직전으로 둔화되는 급박한 시점에 나온 도시 회생안이다. 4성급 호텔과 DNA 형상의 공원이 갖춰진 이 혁신의 심장부를 통해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이나 워싱턴주 시애틀,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 같은 생명과학 허브에 맞먹는 도시가 되겠다는 포부다.
이 프로젝트는 아직 초기 재원 확보 단계에 있지만 기업들이 적극 뛰어들기 시작했다. AT&T는 휴스턴에 디지털 건강전문 연구소를, 존슨 앤드 존슨은 첨단 바이오테크 인큐베이터 ‘J랩스’를 개설할 예정이다.
원유 산업에 의존하는 미국 도시들은 지난해 유가 폭락으로 경제 다각화를 모색하지만 성과는 들쭉날쭉하다. 예를 들어 노스다코타주 파고는 석유경제를 바탕으로 금융·보험·건강·대학교육에 초점을 맞춰 지난해 밀켄연구소 선정 ‘성공한 소도시’ 1위에 올랐다. 텍사스주 댈러스는 비즈니스 서비스 부문을 육성하고 유망 기술업체를 지원함으로써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산업 구조를 구축해 ‘성공한 대도시’ 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다른 도시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는 지난해 연례 순위가 58단계 떨어졌고 올해도 일자리 1600개(대부분 에너지 부문)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휴스턴의 경우 생명과학 허브 구축 지지자들은 석유 산업을 초월하려는 노력이 오래 전에 시작돼야 했다고 아쉬워한다. 무엇보다 기본 조건과 인프라가 다른 도시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좋다. 세계 최대 병원인 텍사스 메디컬센터(TMC)가 휴스턴에 있다. 도시의 한쪽 전체를 차지하는 TMC는 MD 앤더슨 암센터와 텍사스 어린이병원(둘 다 미국 최대 규모)을 포함해 수십 개의 저명한 의료 기관을 거느린다. 21개 병원이 매년 환자 720만 명을 받는 미국 최대 규모의 의료 단지다.
그러나 현지 주민이나 의료계 지도자들은 휴스턴이 그런 전문지식과 기초 연구의 상업화에 완전히 실패했다고 지적한다. 다른 미국 도시들은 스타트업과 특허, 신상품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해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휴스턴은 그런 산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뜻이다. 최근 유가 급락까지 겹치면서 좌절감이 증폭됐다. 유가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최대 5만 개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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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C는 21개 병원과 10개 교육 기관으로 구성됐다. 이곳에선 3분마다 1건의 수술이 진행된다.

대휴스턴권역 파트너십의 조사 담당 부사장 패트릭 잰코스키는 “휴스턴이 과학과 연구에는 뛰어났지만 그런 자원의 상용화에는 형편없었다”고 말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이 호황일 때 사람들은 다른 건 그냥 무시했다. 그게 큰 실수였다.”
TMC의 사장 겸 CEO 로버트 로빈스 박사는 ‘TMC3’로 이름 붙인 새 프로젝트가 의료 관련 상업화 아이디어를 찾고 창업하려는 개인이나 팀에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과학자들이 규모가 너무 커 단일 기관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임상 연구나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이곳에서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TMC 프로젝트팀은 올해 말 착공해 2020년까지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스탠퍼드대학 의과대학원 교수였던 로빈스 박사는 2012년 TMC CEO로 취임한 이래 틈만 나면 상용화와 공동작업으로 휴스턴이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TMC는 수년 동안 산하 기관을 위한 주차장과 냉수 공급 시설 확충에만 신경 썼다. 그러나 로빈스 CEO는 그런 역할이 너무 지엽적이라고 느꼈다. 곧 휴스턴 토박이들도 그의 비전에 공감했다. 텍사스대학 건강과학센터 공중보건대학원의 에릭 보어윙클 원장은 “의료 산업 허브가 되는 것은 휴스턴으로선 당연한 진화”라며 “이런 프로젝트를 오래 전에 시작하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로빈스 CEO는 그런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혜택을 실제로 보여주려 한다. TMC는 옛 내비스코 과자공장에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갖춘 혁신연구소를 세웠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의 켄덜 스퀘어나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가 혁신 산업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자 많은 미국 도시가 그 모델을 모방하려 한다. 그러나 시 지도자들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를 고민한다. 새로운 계획과 시설을 갖추면 혁신이 가능할까 아니면 자본과 인적 기반이 먼저 확보돼야 할까?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그 개념을 연구하는 선임 정책분석가 스콧 앤디스는 혁신 클러스터를 만들려면 몇 가지 핵심 요소가 필요하지만 부동산이 반드시 가장 중요한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지 기관들이 기초 연구와 함께 상업화도 적극 지원하고 지역사회 지도자들이 엔젤투자와 벤처투자의 활발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다.
잰코스키 부사장은 휴스턴의 벤처자본가들이 생명과학에 투자하는 것을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만큼 편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또 유가가 폭락한 뒤로는 야심적인 프로젝트나 관련 업체가 거액의 투자나 기부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고 그는 설명했다. “유가가 배럴 당 110달러(현재는 35달러 수준이다)라면 투자 확보가 훨씬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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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C는 옛 내비스코 과자공장에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갖춘 혁신연구소를 세웠다.

TMC의 혁신 담당 이사 에릭 할보르젠은 휴스턴에 엔젤투자자가 많은 편이지만 창업투자 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우린 투자자들을 하루 또는 주말 일정으로 휴스턴에 초대하거나 사무실 개소를 권유하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잰코스키 부사장은 지금까지 휴스턴의 생명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그 부문에 호의적인 벤처자본가가 부족할 뿐더러 TMC 산하 기관들 사이의 장벽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로빈스 CEO가 마주친 어려움 중 하나는 진정한 협력 정신을 도모하는 것이다. 보어윙클 원장은 “TMC 산하 기관이나 소속원들은 지금까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다음 단계에선 경쟁보다 공동작업과 협력을 통해 더 큰 성장을 이뤄야 한다.”
로빈스 CEO는 미국 어디서나 주요 의료 기관들 사이에서 환자와 연구자금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는 점을 산하 기관에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는 프로미식축구리그(NFL)를 예로 들었다. 같은 지역의 팀들이 서로 경쟁하지만 진정한 경쟁은 시청자와 광고주를 두고 미국 프로농구(NBA)와 싸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빈스 CEO는 유가 하락에도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휴스턴 시민이 오래 전에 석유 산업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새 프로젝트에 기부금이 쇄도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다면 다른 도시가 생명과학 부문에서 갖는 경쟁적 우위는 어떻게 극복할까? 로빈스 CEO는 “그 도시들의 생명과학 부문은 이미 포화상태에 접어들어 큰 문제가 아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 에이미 노드럼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