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실리콘밸리 ‘라호르’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도성장하는 경제, 영어가 가능한 대규모 인적자원이 스타트업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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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거래에 크게 의존하는 관행 등 문화와 경제 규범이 파키스탄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IT 창업 기업가 입장에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시작하는 데 실리콘밸리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앤젤 투자자가 넘쳐나고 스타트업을 찬양하는 문화가 지역 전반에 깔려 있다. 눈을 반짝이는 전문기술자가 레이스에 뛰어들기에 이보다 더 쉬운 곳은 없다.
그러나 개도국에선 와해성 혁신(disrupt)이나 확장성(scale) 같은 전문용어가 아직 주류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 미비한 환경에서 스타트업이 어떻게 순항해 나갈까?
지난 5년 사이 파키스탄의 신생벤처 생태계는 초기 군락에서 자립적 환경으로 성장했다. 라호르에 자리 잡은 온라인 부동산 스타트업 자민(Zameen)은 그와 같은 신생벤처 물결에 올라타, 파키스탄 대도시의 부동산 매물을 검색하고 매입할 수 있는 질로(Zillow, 미국의 부동산 정보 사이트) 유형의 앱과 웹사이트를 개발했다.
미국의 많은 유명 인터넷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민의 출발은 도박이었다. 2006년 영국의 전자상거래 회사를 뛰쳐나와 파키스탄으로 건너간 지샨 알리 칸 형제는 자택 침실에서 자민을 창업했다. 당신 파키스탄에선 온라인 전용 서비스가 드물었다. 그러나 알리 칸 창업자는 해외 거주 교민으로부터 파키스탄 부동산으로 흘러드는 돈의 흐름을 좇았다. 100만 명의 교민이 영국에서 거주했다. 현재 자민은 고용인원 500명에 파키스탄의 거의 모든 대도시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알리 칸 창업자는 “파키스탄에 믿을 만한 온라인 부동산 업체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Zameen.com을 설립하게 됐다”며 “파키스탄의 보통 사람이 부동산에 높은 비중을 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고 이메일로 답했다. “당시 파키스탄의 인터넷 인프라는 빈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오프라인 부동산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보였다. 해외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교민사회의 대규모 투자에 힘입어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에서 상당한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파키스탄의 고속 성장하는 경제, 그리고 무엇보다 영어가 가능한 대규모 인적자원은 스타트업의 창업, 그리고 외국 기업과의 합작을 촉진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지난 수년간 라호르와 카라치(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격) 같은 도시의 명문대 주변에 스타트업 허브가 형성됐다. 라호르가 위치한 펀잡주는 파키스탄 신생벤처의 주요 거점이었다. 펀잡주 정부가 운영하는 IT 창업보육센터인 플랜9에는 8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알리 칸 창업자에 따르면 인구 500만 명의 도시 라호르에 140개의 스타트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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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의 스타트업 자민은 부동산 매물을 검색하고 매입할 수 있는 앱과 웹사이트를 개발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스타트업은 실리콘밸리에는 아직 족탈불급이다. 문화와 경제 규범이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다. 현금거래에 크게 의존하는 관행이 대표적이다.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는 소비자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많지만 금전거래에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파키스탄 남성은 9%, 여성은 2%에 불과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모바일 뱅킹을 이용한 미국인 비율은 39% 선이었다.
자민은 현금 거래 고객을 감안해 파키스탄의 30개 도시에 나가 있는 자민 대리인들에게 오토바이 수금원을 보내 직접 대금을 거둬들인다. “상황이 호전되고 있으며 온라인 결제뿐 아니라 모바일 거래에도 익숙해지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알리 칸 창업자는 말한다.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하는 파키스탄에서 무명에 가까운 스타트업이 대중의 신뢰를 얻는 것 또한 큰 어려움이었다. 자민이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파키스탄 부동산 시장 관련 문서가 거의 없었으며 신뢰할 만한 데이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알리 칸 창업자의 가족을 포함한 파키스탄 소비자는 자민을 비롯한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내가 회사를 창업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은 약간 걱정스런 표정이었다”고 알리 칸 창업자는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파키스탄의 스타트업 문화를 뒷받침하는 스타트업 생태계 덕분이다.”
자민을 비롯한 스타트업들이 맞닥뜨리는 장벽은 크게 두 가지다. 3G·4G 모바일 인터넷의 낮은 보급률과 정부의 지원 부재다. 2015년 1억8200만 파키스탄 인구 중 3G·4G 기술 이용자는 2200만 명에 불과했다. 스타트업이 그들의 온라인 서비스를 계속 키워가며 확장해 나갈 여지가 거의 없었다.
3G·4G 기술 같은 인프라 문제에는 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이지만 알리 칸 창업자에 따르면 그런 지원이 없었다. 자민에 가장 큰 문제는 토지소유 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부동산 감독당국의 신설이 미뤄지는 것이었다. 파키스탄의 부동산은 규제기구가 없으면 체계화된 시장이라기보다 미국 개척시대의 서부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도 급성장하는 스타트업 트렌드를 알아차린 듯 국가적인 창업보육 프로그램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펀잡주 지방 정부가 라호르의 스타트업을 위해 해오던 작업을 확대 적용했다. “파키스탄의 IT 스타트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기대보다 약간 늦은 감이 있지만 이 같은 조치가 파키스탄의 스타트업 문화를 육성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알리 칸 창업자는 말했다.
– 성 리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