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얼굴 해리슨 포드

영화 ‘스타워즈’와 ‘인디아나 존스’로 굳어진 이미지를 ‘실종자’ ‘의혹’ 등으로 깨며 연기폭 넓은 배우로 거듭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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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니스’는 포드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한 유일한 작품이다(왼쪽). ‘실종’에서 포드는 유능한 남자가 망가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대다수 배우들이 영화 속에서 반짝 빛을 발하는 시간을 빼곤 세상에서 잊혀진 채 살아간다. 영화가 끝나고 객석에 불이 들어오자마자 관객의 머리 속에서는 그들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해리스 포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두 번이나 사람들의 머리 속에 오래도록 살아 숨쉬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스타워즈’의 한 솔로와 ‘인디아나 존스’의 인디아나 존스다.

하지만 포드와 함께 ‘스타워즈’에 출연했던 다른 배우들을 볼 때 한 가지 캐릭터로 이미지를 굳히는 것이 곧 배우로서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 루크 스카이워커 역을 맡았던 마크 해밀을 예로 들어보자. 팬들이 거리에서 그를 만났을 때 마크 해밀로 대하느냐 루크 스카이워커로 보느냐는 후속작에서 자기만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포드의 경우 다음 세 작품이 한 솔로와 인디아나 존스의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위트니스’(1985)와 ‘실종자’(1988), ‘의혹’(1990)이다.

호주 감독 피터 위어스의 할리우드 데뷔작인 ‘위트니스’는 포드에게 배우로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경찰 스릴러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친숙하게 여길 만한 플롯이다. 포드가 연기한 형사 존 북은 살인을 목격한 어린 소년과 자신을 범인(북의 동료 경찰이다)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소년이 사는 아미시(현대 기술 문명을 거부하고 소박한 농경생활을 하는 종교 집단) 마을에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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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믿음직하고 선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포드가 ‘의혹’에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아미시 마을이라는 특수한 배경은 그 자체로 관객의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전형적인 도시인 타입의 세속적인 형사가 사랑 때문에 아미시 마을에 남을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갈등을 일으키는 구도에 연민의 정을 불어넣은 건 포드의 능력이다. LA타임스의 실라 벤슨은 영화 평에 “포드의 재능에 특유의 유머 감각과 친밀감, 매력이 더해져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고 싶게 만든다”고 썼다.

‘위트니스’는 흥행과 평단의 호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이 영화는 또 포드를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게 한 유일한 작품이다. ‘위트니스’의 존 북 역할은 포드에게 현실 세계 속 액션 히어로의 이미지를 심어준 반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실종자’는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유럽의 필름 누아르 형식을 따른 이 영화는 전적으로 포드가 연기한 미국인 의사 리처드 워커의 시각에서 펼쳐진다. 워커는 실종된 부인을 찾아 파리의 미로 같은 거리와 지저분한 뒷골목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닌다. 결국 이 실종 사건은 핵 기폭장치와 자동차 추격, 총격전이 포함된 국제적인 스파이 음모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는 한 남자가 망가지는 과정을 표현한 포드의 섬세한 성격묘사에 있다.

플레이보이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포드는 영화에 워커가 의사로서 일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데도 캐릭터의 실감나는 묘사를 위해 실제 외과의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인터뷰에서 포드는 “난 의사들이 자신들의 세계에서 어느 정도 권위의식을 갖고 있으며 그런 것을 외부 세계에도 드러내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워커는 내가 이전에 연기하지 않은 캐릭터다. 그는 끔찍한 시련에 맞닥뜨린 평범한 남자이며 자신을 도와줄 힘 있는 사람을 찾지 못해 갖은 고초를 다 겪는다.”

‘실종자’는 흥행성적이 저조했지만 포드의 뛰어난 연기는 이 영화를 폴란스키 감독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인정받게 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리고 감독과 관객 모두에게 포드가 꼭 악당들을 총으로 쏴 쓰러뜨리지 않더라도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넘친다는 사실을 증명해줬다.

하지만 포드가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의혹’(1990)에서 검사 러스티 사비치 역을 맡았을 때는 그런 호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 치밀하게 짜인 법정 스릴러는 사법체제의 도덕성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으로 거짓말과 섹스, 부패가 난무한다. 게다가 포드가 맡은 검사 역할은 ‘모스키토 코스트’(1986)의 앨리 폭스 이후 가장 갈등이 심한 캐릭터다. 사비치는 동료 검사이자 외도 상대였던 캐롤린 폴히머스의 살인 용의자로 수사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부인에게 말한 것과 달리 여전히 폴히머스에게 강한 애착을 드러낸다.

언제나 믿음직하고 선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가 과거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여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관객은 마음이 착잡하다. 헨리 폰다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2008)의 첫머리에 소년을 총으로 쏴 죽이는 장면을 봤을 때처럼 충격적이진 않지만 포드에게 우리가 몰랐던 면모와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포드가 맡은 캐릭터는 자기회의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찼지만 ‘의혹’이 평단의 찬사와 함께 흥행에 성공하면서 포드는 액션 영화에만 능한 배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 제임스 엘리스 뉴스위크 기자

[이 기사는 뉴스위크 특별호 ‘해리슨 포드 – 할리우드 최고 배우의 50년(Harrison Ford – 50 Years of Hollywood’s Greatest Hero)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