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역수출하는 일본산 진

장인 정신이 깃든 드라이 진 ‘기노비’, 달콤한 감귤과 일본산 베리 류·차 향이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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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노비’는 2016년 가을 교토의 한 바에서 처음 선보인 뒤 도쿄의 만다린 오리엔털, 리츠 칼튼, 포시즌즈 등 호텔의 칵테일 메뉴로 등장했다.

노간주 열매로 만드는 증류주 진은 17세기부터 영국적인 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윌리엄 호가스(로코코 시대의 영국 미술가)는 판화 작품 ‘진 골목’에서 진에 찌든 런던 빈민가를 묘사했고,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진에 베르무트주를 약간 섞은 칵테일을 즐겨 마셨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사교계에서는 진토닉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그렇다면 영국인인 마신 밀러(52)와 데이비드 크롤(53)이 일본에서 진을 만들어 영국에 수출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는 뭘까?

영국의 위스키 잡지 ‘위스키 매거진’의 편집인 겸 발행인을 지낸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숙성된 일본산 위스키의 재고가 줄어들고 세계적으로 진의 인기가 높아지는 현 상황에서 우리가 새로운 부문의 선구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밀러와 교토에 사는 그의 영국인 동업자 크롤은 10년 전 일본산 위스키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넘버 원 드링크스 컴퍼니’를 창업했다. 두 사람은 일본 최초의 장인 정신이 깃든 진 ‘기노비’(계절의 아름다움으로 해석된다)를 만들었다.

“증류와 블렌딩, 병입 과정이 모두 교토에서 이뤄진 최초의 진”이라고 밀러는 말했다. 젊은 세대 중에 진 애호가가 늘어나면서 장인 정신이 깃든 진의 새로운 시장이 생겨났다.

기노비는 2016년 가을 교토 전통가옥 상가의 한 팝업(한시운영) 바에서 처음 선보인 뒤 도쿄의 만다린 오리엔털, 리츠 칼튼, 포시즌즈 등 호텔의 칵테일 메뉴로 등장했다. 밀러는 2017년 초부터 기노비를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홍콩, 싱가포르, 영국 등지에 수출할 계획이다.

크롤과 밀러는 영국 언론에서 ‘주류업계의 윌리 웡카’로 불리는 실험적인 증류 전문가 알렉스 데이비스(28)를 교토로 데려와 이 새로운 진을 만들었다. 진은 과일과 향료 등 식물성 원료의 맛에 좌우되는데 교토에는 지역 특산식물이 풍부하다.

데이비스는 기노비를 제조할 때 교토산 유자와 감귤류, 그늘에서 자라 단맛과 감칠맛이 풍부한 우지산 녹차, 차조기 잎, 대나무, 편백나무 조각, 히로시마산 레몬 등의 다양한 식물성 원료를 사용했다.

기노비는 일본에서 만든 진답게 사케로 유명한 교토 후시미 지방의 물을 넣은 쌀 증류주를 베이스로 한다. 넘버 원 드링크스에 따르면 기노비는 대부분 일본에서 나는 재료와 수입한 노간주 나무 열매를 원료로 하며 독일에서 주문 제작한 구리 증류기에서 증류한다. 달콤한 감귤과 일본산 베리 류, 차 향이 나는 드라이 진이다.

교토의 특성이 기노비의 맛에서만 느껴지는 건 아니다. 밀러는 17세기에 세워진 가라카미(수제 목판인쇄) 전문 인쇄소에서 상표를 제작했다. 또 그가 이 진을 두꺼운 검정색 유리병에 담은 이유는 교토의 고급 칠기 전통을 기리기 위해서다. 밀러는 누구든 기노비를 마시는 사람은 세계 어디에 살든 일본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 다니엘 드미트리우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