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처럼 남성복을 ‘지휘’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장인 마리아노 루비나치의 맞춤양복은 편안하고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세대를 아우르며 인기 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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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4일 영국 런던의 그로스브너 광장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에서는 이탈리아 남성복 역사의 작지만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는 리셉션이 열렸다. 나폴리의 맞춤양복 디자이너 마리아노 루비나치가 만든 의상이 런던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V&A)의 영구 소장품으로 등록돼 상설 전시된다.
난 그 일을 성사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몇 년 전 난 루비나치에게 나폴리 맞춤양복 역사를 기념하는 박물관의 설립을 제안했다. 그는 이탈리아 맞춤양복 업계에서 매우 유명할 뿐 아니라 내가 보기엔 나폴리에서 옷을 가장 우아하게 입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루비나치는 자신의 양복점에 의류 몇 점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작은 박물관이었던 셈이다. 그 후 루비나치는 그 의류를 뉴욕 FIT 패션스쿨의 전시회와 2014년 V&A의 ‘이탈리아 패션의 매력(Glamour of Italian Fashion) 전’에 대여했다.
난 10여 년 전 루비나치가 런던 마운트 거리에 지점을 열었을 때 그를 처음 만났다. 루비나치의 고객 몇몇(영국 금융재벌 가문의 후손인 로스차일드 경 등 상류층 인사들이 포함됐다)이 그에게 런던에 지점을 낼 것을 독려했다. 마운트 거리의 지점은 50여 년 전 루비나치가 처음 영국 진출을 시도했을 때보다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당시 18세로 아버지 젠나로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사업을 막 물려받은 참이었다. 루비나치는 BEA 항공의 트라이덴트 항공기를 타고 런던으로 향했다. 레스터 광장에 있는 한 호텔에 방을 예약해 뒀는데 영어를 거의 못해 공항에 내려 택시 기사에게 종이에 쓴 주소를 보여줬다. 하지만 택시 기사들이 한결같이 레스터 광장을 모른다고 하자 그는 점점 화나기 시작했다. 그 광장이 런던 중심부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찾기 쉬운 곳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 근처 호텔을 예약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루비나치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공항에서 1시간 동안 헤매다가 경찰관을 만났다. 그리고 그 경찰관의 도움으로 자초지종을 알게 됐다. 그가 레스터 광장으로 가는 택시를 잡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곳이 런던에서 300여㎞나 북쪽에 있는 맨체스터였기 때문이다. 루비나치가 탄 비행기가 짙은 안개로 런던 공항에 착륙하지 못해 맨체스터로 회항했는데 영어를 못하는 그가 기내 안내방송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다.
루비나치는 아버지 젠나로가 1930년 나폴리에서 양복점을 시작할 때 이름을 ‘런던 하우스’라고 지어서 그런지 런던에 마음이 끌렸다. 지금은 양복점 이름이 ‘루비나치’로 바뀌었지만 상표에는 여전히 런던 하우스를 뜻하는 ‘LH’라는 글자가 들어간다. 1930년대 당시 런던은 우아한 남성복의 수도로 이름을 날렸다. 젠나로가 만든 영국식 맞춤양복은 실제 영국 스타일과는 좀 달랐다. 영국에 가본 적이 없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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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노 루비나치(왼쪽)는 맞춤 정장과 스포츠 재킷에 자신만의 특징을 불어넣는다. 영국의 스타일보다 전체적으로 더 부드럽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풍긴다.

만약 젠나로가 런던에 가봤다면 나폴리의 런던 하우스에서 만든 양복과는 사뭇 다르고 훨씬 더 격식 있는 스타일을 발견했을 것이다. 새빌가(런던의 고급 양복점 거리)의 맞춤양복은 날카롭게 각이 선 실루엣을 만드는 패드와 여러 겹의 캔버스 천을 이용해 이상적인 스타일을 연출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루비나치가 내게 보여준 정장 상의들(시대가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은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미니멀리즘 경향이 엿보였다.
안감을 대지 않고 셔츠처럼 자연스런 어깨가 특징인 이 상의들은 통이 넓고 편안한 소매 위쪽에 작은 주름을 잡아 좁은 진동에 연결했다. 이 옷들은 편안한 디자인에 입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로 가볍다.
천을 덧대 만든 큼직한 주머니들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또 아랫부분이 곡선형으로 부풀려져 있다. 유명한 2줄 스티치는 어깨 라인 등 상의에서 힘을 가장 많이 받는 부분을 탄탄하게 유지해준다. 어깨에 패드를 넣지 않고도 모양을 유지하도록 한 기술은 거의 마술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이런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루비나치의 디자이너들은 요즘도 1930년대와 똑같은 스타일의 양복 상의를 만든다. 다만 원단은 그때보다 좀 더 가벼워졌다.
루비나치의 맞춤양복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약간 대담한 측면이 있다. 여름 스포츠 재킷은 거의 셔츠만큼 가벼우며 나폴리 맞춤양복의 특징인 부드러움으로 무거운 트위드(간간이 다른 색의 올이 섞여 있는 두꺼운 모직 천)를 카디건처럼 편안한 옷으로 거듭나게 한다.
루비나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맞춤양복 디자이너로 훈련 받은 적이 없다. 그는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다양한 재능을 한데 모으고 거기에 자신의 독특한 비전과 해석을 더해 훌륭한 공연을 선보이는 지휘자와 같다. 천성적으로 우아함을 타고났으며 의외의 방식으로 색상을 조합하고 재료를 사용하는 천재성을 지녔다. 그가 내게 만들어준 옷 중에 셔츠처럼 가벼운 코르덴으로 만든 라임색 정장과 옅은 색 데님으로 만든 정장은 특히 상상력이 돋보인다.
V&A에 상설 전시되는 옷은 리넨 재킷과 핑크색 바지, 옅은색 데님 셔츠로 나폴리와 카프리의 여름날에 입기 딱 좋은 아이템이다. 런던의 안개 낀 밤에 입으면 눈에 확 띌 만한 옷이기도 하다.
– 니컬러스 포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