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만든 ‘행복한 지옥’ 헬조선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 정체성 혼란 겪는 사춘기 벗어나 ‘멋진 청년’으로 거듭나려면 불편한 진실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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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성’의 발현을 매우 중시한다.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방증일까. 지난 수년 간 한국과 한국인을 분석한 책이 국내에서 끊임없이 출간되고 있다. 이매뉴얼 패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부터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객원기자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이룬 나라’, LG전자 프랑스 법인장을 지낸 기업인 에리크 쉬르데크의 ‘한국인은 미쳤다!’까지 오늘의 한국을 진단하는 저서가 한둘이 아니다.

이 책들에서 한국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국은 빠른 시간에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저력의 나라인 동시에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며 권위주의적 나라로 묘사된다. 한국인의 무한한 가능성을 찬양하는 책이 있는가 하면 한국인의 사고방식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책도 있다. 이는 비단 책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이 나라를 ‘기적의 나라’라고 믿는 사람과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사람이 공존한다. 이런 간극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어쩌다 한국인’의 저자 허태균 고려대 교수(심리학)는 여기에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한국 사회는 지금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신체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정신적 혼란이 극대화되는 사춘기 청소년처럼,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한국 사회는 일관된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혼란스럽다. “이런 정체성 혼란이 바로 사춘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이 책은 이런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정체감 ‘나는 누구인가’를 찾기 위한 노력이다.”

한국은 대체 어떤 나라인가? 허 교수는 “주체성, 가족확장성, 심정중심주의, 관계성, 복합유연성, 불확실성 회피라는 6개의 문화심리학적 개념”을 한국 사회의 여섯 가지 특성으로 꼽는다. ‘어쩌다 한국인’은 이 개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책이다. 이 개념들은 아무렇게나 뽑은 것은 아니고, 허 교수가 “연구책임으로 2012년에 수행한 ‘한국인 연구’에서 160여 개의 국내 논문과 저서, 200여 편의 국외 논문, 100여 편의 한국인에 대한 일본 연구 자료를 종합 분석해 추출한 것”이라고 한다.

허 교수가 제시한 여섯 가지 개념은 간략하게 다음과 같다. 첫째로 한국인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체성’의 발현을 매우 중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턱 쏜다’의 문화다. “한국 사회에서 ‘한턱 쏜다’는 것은 그냥 돈을 내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기가 오늘 주인공이라는 얘기고, 자기의 존재를 맘껏 드러내고 싶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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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국인 / 허태균 지음 / 중앙북스 펴냄 / 1만6000원

그 밖에 식당이나 가게 등에서 만난 생판 모르는 남조차도 언니, 이모 등 가족에게 사용하는 호칭으로 부르며 “인간관계를 너무나도 쉽게 혈연관계로 환원”해버리는 ‘가족확장성’, 체면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조직 전체보다 내 옆자리 동료에게 충실한 ‘관계주의’, 행동보다 마음을 중시하고 직접적인 의사소통 대신 눈치와 배려로 소통하는 ‘심정중심주의’, 서로 상충하는 가치도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복합유연성’, 눈에 보이고 수치화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면서 불확실한 것은 피하려 드는 ‘불확실성 회피’ 등이 허 교수가 말하는 한국 사회의 여섯 가지 특성이다.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추출한 만큼 이 6개 개념들은 한국 사회의 많은 부분을 설명한다. 이를테면 과도한 갑질은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주체성’과 서로의 행동을 집단의 작용이 아닌 쌍방 간의 문제로 인식하는 ‘관계주의’가 결합하면서 발생한다. 한국인은 상대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고 그러한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느냐와 같은 공식적인 역할관계보다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종업원에게 존재감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기면 이를 자기 스스로에 대한 모독으로 여기고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특징으로 알려진 ‘빨리빨리’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무엇인가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불확실성 회피’에서 비롯된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고, 수치를 측정해 정량화할 수 있는 것에만 눈길을 주는 이 같은 특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절차들을 건너뛰고 성과를 향해 질주하는 ‘빨리빨리’ 문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 개념들이 한국 사회를 잘 설명한다고 해서 이 책이 엄밀한 의미의 심리학 학술 서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록 심리학 전문가인 저자가 심리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 되도록” 노력했다고는 하지만, 이 책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이 상당 부분 포함”된 에세이에 가깝다. 허 교수는 이 6개의 개념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갑질, 높은 사교육비 등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쉬운 주제는 물론 세월호 사고나 광우병 사태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심지어 특정 국회의원과 정당에 대한 평가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 같은 저자의 과감한 필치다. 허 교수는 2015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지금의 ‘헬조선’은 남이 만든 게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한국인이 만들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가치중립적으로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이해하고 길을 찾아보자는 것”이라고 집필 의도를 설명했다. 이 ‘지옥’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만들었다는 불편한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일은 독자의 저항을 사기 쉽다.

그러나 허 교수는 정공법을 택한다. 독자를 어르고 달래며 ‘불편한 진실’을 돌려 말하는 대신 한국인의 특성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지 직설적으로 서술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한국 사회는 OECD 국가 중에서 부패지수도 매우 높고 … 그 배후에는 항상 다양한 불법과 비리가 존재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는) 그 문제의 본질이 극히 부도덕한 일부 국민이나 지역, 조직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한국인 대부분의 공통적인 특성 때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건 바로 국민 개개인이 규정, 법률, 원칙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따르기 때문이다.”

이 특성 자체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라고 단정짓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이 지금까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낸 데엔 이 같은 특성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덕이 크다고 허 교수는 설명한다. 다만 선진국의 문턱에 접어든 현재의 한국엔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규모와 구성은 선진국 못지 않게 커지고 복잡해졌지만 한국인의 심리는 여전히 과거로부터 고착화된 특성에 머물러 있는 현 시점이 바로 허 교수가 말하는 한국 사회의 사춘기다.

이를 극복하고 “멋진 청년”으로 거듭나려면 우리는 우리의 특징이 무엇인지 직시하고, 우리 스스로가 잘못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누군가가 몰래 만들어 놓은 함정에 우리가 억지로 빠져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것은 바로 우리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넘어서, 그냥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허 교수는 말한다. “냉정하게, 부정적이지는 않게, 더구나 근거 없이 긍정적이지도 않게, 우리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만이 앞으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어떤 사회를 이루고, 어떤 문화를 누릴지를 결정할 것이다.”

– 이기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