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드라의 순록떼를 지켜라

북극권의 원주민 부족들, 기후변화와 산업화로 무너져가는 전통문화 보존에 안간힘

01
핀란드 이나리의 농장에서 사미족이 관광객을 위해 운영하는 순록 썰매.

순록 피가 엉기지 않도록 잘 젓는 일은 사라 알렉산데르센(15)의 몫이다. 삼촌 이사트 투리가 방금 단칼에 목을 베어 잡은 순록을 해체하는 동안 그녀는 무릎을 꿇고 앉아 양동이에 받은 피를 천천히 휘저었다. 알렉산데르센의 순록 가죽 외투는 주변의 눈 덮힌 툰드라(동토대)보다 약간 어두운 색이다. 소시지를 만들 순록 피를 젓는 것은 전통적으로 사미족(툰드라에 사는 원주민) 소녀들이 해온 일이다. 투리는 “우리에겐 순록이 전부”라며 “버릴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북극권 안에 사는 약 10만 명의 사미족(24개의 나라에 속해 있다)에게 순록은 겨울철의 귀여운 액세서리가 아니다. 그들의 사회에서 순록은 음식과 옷, 교통 수단, 시계, 생계 수단, 문화 등 삶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산업화의 압력이 커지면서 지구 최북단의 추운 오지에서 순록떼를 몰며 사는 사미족도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이처럼 사라져가는 사미족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결성된 단체가 국제순록목축센터(ICR)다.

사미족, 특히 동부 북극 지방에 사는 순록 목축업자가 겪는 어려움은 대체로 기후변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기온이 올라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눈이 비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물기가 얼어붙어 순록이 겨울철 주식인 이끼를 뜯을 수 없다. 툰드라에서도 지역마다 영향이 달리 나타난다. 노르웨이령 북극해 스발바르 제도에선 기온이 올라 얼음이 계속 줄어들면서 순록떼가 오히려 늘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순록 개체 수는 지난 10~15년 동안 약 30% 줄었다. 러시아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타이미르 반도의 순록떼는 2000년 이래 40%가 감소했고,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유행하는 탄저병으로 최근 순록 약 1500마리가 폐사했다.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기후변화로 녹으면서 외지인의 툰드라 진출도 증가한다. 북극 지방의 여러 곳에서 순록이 1000년 이상 의지했던 목초지가 공장과 농장에 의해 잠식된다. 몽골에선 광부들이 금을 찾으려고 순록 서식지를 파괴한다. 시베리아에선 개발에 필요한 도로가 건설되면서 순록의 이동 노선이 가로막힌다.

서부 북극 지방은 비교적 피해가 적지만 변화의 물결에 맞서긴 역부족이다. 예를 들어 핀란드의 북부 지방에선 임업이 호황을 누리면서 순록이 즐겨 뜯어먹는 나뭇잎이 크게 줄었다. 노르웨이에선 얼음층이 줄어들어 북단의 핀마르크 주 해안 지역까지 광산, 풍력·수력 발전시설이 들어섰다. 심지어 그곳의 일반 축산업도 늘어나 순록의 서식지는 갈수록 줄어든다.

그럼에도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순록 서식지에 나타난 기후 관련 변화는 아직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더 큰 걱정은 정부의 개입이라고 그곳 주민은 지적한다.

02
사미족의 전통가옥 라부. 사미족 사람들은 순록을 직접 도축해 모닥불을 피워 훈제해 먹는 걸 좋아한다.

전통적으로 사미족은 순록을 집에서 도축했으며, 성별과 연령에 따라 도축하는 계절이 달랐다. 그러나 노르웨이인이 순록 고기를 좋아하게 되면서(연간 일인당 평균 400g을 소비한다) 순록 도축을 대부분 정부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유통망을 독점하고 시중에 판매되는 순록 고기는 반드시 산업용 도축시설에서 처리하도록 의무화했다.

순록 도축의 산업화는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 순록 목축업자에게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지만 도축된 어린 순록에 한해서만 보상한다. 사미족은 어린 순록의 도축을 꺼린다. 순록 개체수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북부 도시 카우토케이노에 본부를 둔 ICR의 안데르스 오스칼 대표는 “이젠 정부가 순록 산업을 독점한다”며 “우리가 직접 도축하지 않으면 선조가 물려준 지식과 전통을 잃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로 사미족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감독한다. “이곳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지 않고 우리 사회에 머무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친다.”

오스칼 대표가 말한 ‘우리’는 사미족만이 아니라 모든 순록 목축업자의 문화를 뜻한다. ICR의 사명 중 하나는 북극 지방의 모든 원주민을 규합해 전통 지식을 보존하고 교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초 북극 지방의 다양한 지역을 대표하는 부족민이 ICR에 모여 생물의 다양성 과정을 교육 받았다. 그 과정의 백미는 요리 수업이었다.

각 지역마다 고유한 요리를 선보였다. 아시아 북부 지역의 에벤키족 여성들은 순록 식도로 소시지를 만들었다. 러시아 북극 지역의 네네츠족 법대생은 피가 흥건한 순록 생간 요리를 선보였다. 사미족 요리사는 순록 발굽을 물렁해질 때까지 푹 삶아 마치 홍합찜처럼 사발에 담아냈다.

몽골 출신인 간볼드 바야르마그나이(23)는 순록 젖으로 만든 빵을 모닥불에 구웠다. 그는 “고향에 가면 산에 눈이 다 녹아 없어졌다”고 말했다. “늘 얼어붙어 있던 호수도 이젠 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다.”

ICR은 툰드라의 전통적인 삶을 보존하기 위한 다른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지난해 11월 말 오스칼 대표는 시베리아 야쿠츠크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다. 순록 산업에 IT를 접목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ICR은 순록 전통 요리를 보존하기 위한 요리책도 만든다. 아울러 북극이사회(캐나다·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 북극권 8개국과 원주민 대표들이 북극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창설한 정부간 협의체)에도 참여해 기후변화 대응 전략 수립에 순록 목축의 전통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사미족 다수는 1960년대부터 전통 스키와 썰매 대신 스노모빌을 이용해 순록떼를 몰기 시작했다. 그들도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변화를 마다하지 않는다. 투리도 잡은 순록 사체를 산업용 도축장에 가져가 판매한다. 하지만 그는 불만이 많다. “그들은 버리는 게 너무 많다. 피, 뼈, 가죽은 버리고 고기만 원한다.”

03
지난해 12월 국제순록목축센터(ICR)의 행사에서 선보인 다양한 순록 요리.

투리는 지난해 12월 초 트럭을 이용해 집에서 500㎞나 떨어진 섬의 여름철 방목지에서 순록떼를 옮겼다. 또 그는 전통 방식으로 키우고 도축한 순록 고기를 덴마크 코펜하겐과 노르웨이 오슬로에 있는 몇몇 식당에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투리는 여전히 옛 방식을 좋아한다. 가족이 먹는 고기를 직접 도축해 모닥불에서 훈제하는 그는 밤에 모닥불 곁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전통 음악을 듣는다. 사미족은 순록을 몇 마리 키우는지 묻고 답하는 것을 무례하고 오만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투리는 순록만 키워도 앞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하지만 그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목공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보다 한 세대 어린 조카딸 알렉산데르센은 그런 확신이 없다. 요즘의 대다수 사미족처럼 그녀는 현대와 전통이 양립하는 생활을 한다. 카우토케이노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진바지와 스웨터를 입으며, 순록 고기만큼이나 타코와 닭고기도 즐긴다. 아버지의 순록떼는 오빠가 물려 받기 때문에 자신은 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스노모빌을 자유자재로 몰며 가족이 소유한 순록떼의 사진을 페이스북 커버에 올릴 정도로 전통도 중시한다.

알렉산데르센은 소시지를 만들 순록 피를 휘저으면서 순록 목축이 힘든 일이라고 인정했다. “내 친구들은 이 일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이 일이 좋다. 여기 있으면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그녀는 순록을 가리키며 “이게 원래 우리의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 리사 어벤드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