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자유구역의 성장 ‘규제프리존’ 도입에 달렸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발 빠르고 유연하게 규제개혁에 나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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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은 경제특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문에 걸쳐 행정규제가 남아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규제완화가 시급하다. 사진은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애플 연구개발(R&D) 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일본 요코하마 인근 지역은 애플과 일본의 산학연 협약을 계기로 발전한 연구거점지역이다. 애플은 일본 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IT 기술의 활용, 아베 신조 정부의 국가전략특구 지정, 규제완화 등 해외 기업의 진출을 돕는 정부 정책 때문에 해외 거점으로 일본을 선택했다.

2014년 내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경제특구를 새롭게 조성한 일본은 해외기업 유치를 위해 규제를 완화했다. 우선 도심 규제에 묶여 사업 확장이 어려웠던 첨단 의료, 농업, IT 관련 기업을 유치한다는 목표 아래 도쿄·오사카·나고야·요코하마 등지의 인근에 ‘국가전략특구’를 조성했다. 이를 지원하고자 다양한 분야에서 신속하게 규제완화도 실시했다. 건축기준법, 도로법, 의료법 등의 규제특례 조치가 대표적인 예다. 일본 기업들의 적극적인 R&D 투자와 사업 확장은 일본 진출을 머뭇거리던 글로벌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신호탄이었다.

애플은 지난해 10월 가장 먼저 히타치, 후지쯔 등 일본 기업과 연대를 구축하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생산기지를 해외로 내보냈던 다이킨공업과 파나소닉도 일본 내 생산을 목표로 이전에 나섰다. 이어 세계 3위 스마트폰 기업인 중국 화웨이 역시 도쿄 인근에 ‘X랩’으로 불리는 R&D 센터를 세우고 소니·NTT도코모·소프트뱅크와 협업을 시작했다. 규제완화가 적극적으로 시행된 2년 동안 일본에 둥지를 튼 글로벌 기업은 60여 개. 아베 정부는 해외 기업 유치에 성공을 거두자 국가전략 특구를더욱 확대할 방침이다.

#중국 선전의 유명 관광지인 환러하이안. 도심 빌딩 숲을 드론들이 날고 있다. 세계 최대 상업용 드론 기업 DJI의 직원들이 띄운 드론이다. 2006년 선전에서 창업해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중국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했던 홍콩을 본받아 1980년 중국 내 첫 번째 경제특구를 선전에 조성했다. 일반 세율이 33%인데 반해 외국투자기업의 경우 세제를 2년 간 면제하고 그 후 3년 간 50% 감면을 약속했다. 또한 수익이 나는 시점부터 과세한다는 특례가 적용되면서 대부분의 외국투자기업은 평균 10년 정도의 혜택을 보장 받는다.

또한 투자유치 전문 공무원이 기업에 상주하며 인프라 구축과 규제에 따른 법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덕분에 선전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DJI를 필두로 화웨이, 텐센트, 샤오미 등 IT 기업의 입주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기술력 있는 글로벌 중소 혁신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해 입주한 대기업들이 펀드를 조성하기도 한다. 이 같은 정책으로 선전은 인구 1000명 당 창업 기업이 110개에 이를 정도로 ‘창업 특화 도시’가 됐다.

일본과 중국은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에 힘입어 해외 기업 유치와 투자에서 눈부신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인천·부산·대구 등 대도심 인근과 동해안·충북 등 지방 거점 중심으로 8개 지역에 조성된 한국의 경제자유구역(이하 경자구역)은 어떤 정책으로 외국의 기업과 투자를 끌어들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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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외국인직접투자(FDI)에는 훈풍이 불고 있다.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FDI 규모는 24억 달러를 넘어서며 역대 최대였던 2012년 실적(25.5억 달러) 수준으로 회복했다. 이는 2015년(14.6억 달러)보다 70%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가시적인 성과는 경자구역들의 동반성장이 한몫했다. 부산은 사상최대 실적(4.6억 달러)을 기록했고, 대구경북 역시 400억원이 넘는 투자액을 이끌어내며 힘을 보탰다. 투자실적이 지역별로 각각 증가하면서 인천 경자구역에 대한 FDI 편중도도 일정부분 해소됐다. 그동안 경자구역별 차이가 수백 배에 이를 만큼 FDI가 한 구역에 편중돼 있었다. 편차가 최고조에 달했던 2014년의 경우 인천이 전체 FDI에서 96.6%를 차지해 거의 독식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5년에는 82.8%, 지난해는 64.8%로 더 감소했다.

지난해 인천경자구역이 유치한 FDI는 전년대비 약 3.6억 달러 정도 늘어난 15.6억 달러 규모다. 이처럼 실적이 증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전체 비중이 하락한 이유는 다른 경자구역의 성적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이는 2004년 시행 이후 10여 년간 계속되던 지역 편차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

경자구역별 협의를 통해 국가 혹은 기업에 대한 기업설명회(Investor Relations, IR) 활동(인천-EU, 부산 진해-일본, 대구경북-미국)의 중복을 줄이고, 양해각서(MOU)를 우선한 외국 기업과의 연결고리 형성에 공을 들인 결과다. 또한 산학연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한국뉴욕주립대학·조지메이슨대학·랑케스터대학(영국)·뉴욕패션기술대학을 유치해 신산업 진출에 대한 교두보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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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 문을 연 애플스토어. 애플마니아들로 늘 북적거린다.

경자구역은 경제특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문에 걸쳐 행정규제가 남아 있다. 특히 ‘경제자유구역법’은 특별법적 요소가 추가됐음에도 불구하고 개발사업 인허가 등에서 다른 지역과 동일하게 국내 규제가 적용된다.

규제완화를 통해 성공한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삼각김밥이 바로 그것. 일본에서 80년대부터 등장한 삼각김밥은 주로 밥의 품질에 따라 판매량이 좌우됐다. 따라서 편의점에 납품하는 업체들은 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편의점 체인 ‘로손’은 아예 벼농사까지 짓겠다고 나섰다. 예전 같으면 그 같은 발상을 꿈도 꿀 수 없었다. 기업이 농사를 지으려면 임원의 4분의 1이 농민이어야 한다는 규제 때문이다. 하지만 로손은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인 ‘국가전략특구’ 제도 덕분에 직접 농사 지을 수 있었다.

또한 일본은 전국 10개 권역을 선정해 농업, 드론, 자율주행차 등 특정 업종과 관련된 규제도 없앴다. 로손이 농업에 뛰어든 니가타 시는 인근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는 고급 레스토랑이 속속 생기면서 이제는 ‘농업의 수도’라고 불릴 정도로 농업이 발전했다.

이런 일본의 특구 제도를 참고해 우리 정부가 시도하는 정책이 ‘규제프리존(free zone)’이다. 말 그대로 규제가 없는 지역을 말한다. 정식명칭은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 수도권을 제외한 14개 시·도에 각각 2개(세종시 1개)의 대표 미래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기 위해 재정·금융 등 모든 규제를 맞춤형으로 풀어주는 지역발전 전략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다. 해당 지자체가 지역발전전략산업 육성계획을 수립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인 민관합동 특별위원회에서 승인한다. 그 뒤 정부는 규제에서 제외해주는 특례를 마련하고 재정·세제·인력 등 각종 혜택을 마련해 준다. 규제프리존은 경자구역이나 그 인접지에 위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대 국회 개원 첫날인 지난해 5월 30일 제1호 법안으로 다시 제출됐지만 아직도 계류 중이다. 강원도·충북도·세종시·광주광역시 등 야당 소속 단체장들까지 함께한 14명 시·도지사도 공동명의로 규제프리존 특별법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도 경제를 살리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규제프리존의 활성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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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선전에 입주한 텐센트 본사.

규제프리존에 대비해 경자구역들은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산은 마리나 선박 대여업 허용 선박 기준을 5t 이상에서 2t 이상으로 낮춰 레저 산업을 키울 예정이다. 또 국제크루즈선을 이용하는 내국인 승객에게는 국내항 하선을 허용해 관광과 쇼핑으로 유도한다. 대구의 전략산업은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IoT)이다. 규제프리존 특별법이 통과되면 중앙정부를 거치지 않고 대구시장이 일반도로에도 자율주행차 임시운행 허가를 해 줄 수 있다. SK와 삼성전자가 손잡고 IoT 시범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광주는 수소융합스테이션 구축을 추진한다. 전기차 충전기와 수소 충전소, 가솔린 주유기가 모두 달린 복합 시설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조성하기로 했다. 풍력이나 연료전지를 도시공원 내 분산전원으로 사용하도록 허용해 전력 에너지 산업도 육성한다. 울산은 원유의 정제물로 나오는 수소를 활용해 수소차 기반 시설을 확충한다. 도로에서 10m 떨어져 있어야 하는 충전소 규제도 완화하고, 압력용기도 국내 생산이 가능해질 때까지 수입 절차도 간소화한다.

강원도는 의료기기가 밀집된 지역을 중심으로 웨어러블 기기로 진료 서비스를 하거나 원격 진료 시범 사업을 벌인다. 또 춘천은 삼악산 곤돌라리프트 조성에 민간 업체와 손잡고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충남도는 태양광 산업 허브로 거듭나기 위해 하천부지에 태양광 설비 설치를 허용할 방침이다. 국·공유재산에 태양광 발전을 설치할 경우 최초 임대 기간을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

규제완화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바로 중국의 ‘드론’이다. 드론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DJI가 불과 10년 만에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2009년 중국 국무원이 내놓은 ‘민용 무인기(드론) 관리 문제에 관한 지도의견’ 등이다.

중국은 드론 기술 개발에 대한 규제가 없고 사후에 필요한 대책을 민관 합동으로 보완한다. 7㎏ 이하 드론은 조종사 라이선스 없이 운항할 수 있다. 항공기와 겹치는 영공에서 운항하는 경우 항공관제소에 사전에 정보만 제출하면 승인 없이 비행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무게가 13㎏ 이상인 드론은 해당 지방항공청에 장치신고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무게가 25㎏이 넘으면 교통안전공단으로부터 안전성 인증도 받아야 한다. 다행히 미래전략 산업인 드론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10일 드론 활성화 컨퍼런스를 개최해 규제완화와 국제협력 강화에 나섰다.

AI,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삶을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차세대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우리 사회의 제도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규제프리존을 통한 유연하고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은 신기술의 과감한 상용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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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호, 최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