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으로 정치를 논하다

미국 패션 브랜드 니콜라스 K, 매력적인 스타일에 지속가능성과 통합, 다양성 등 사회적 소신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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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사진부터) 지난 2월 9일 뉴욕 패션위크 행사에서 니콜라스 K의 디자이너 듀오 크리스토퍼(왼쪽)와 니콜라스 쿤즈 남매가 무대에 나와 인사하고 있다. 니콜라스 K의 2017 FW 컬렉션.

2017 FW 뉴욕 패션위크가 시작된 지난 2월 9일 주요 행사장 중 하나인 스카이라이트 클라크슨 스퀘어 앞. 패션 블로거와 잡지 편집자, 스타일리스트 등 업계 전문가들이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눈 덮인 거리로 나선다. 행사장 앞에 모여 있던 사진기자들은 눈보라 속에서도 쓸 만한 사진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이 행사장에서 ‘니콜라스 K’는 첫 번째로 패션쇼를 펼쳤다.

니콜라스 K의 매력적인 디자인 뒤에는 심각한 정치 철학이 숨어 있다. 이 브랜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이슈에 배치되는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지향한다. 모델 출신인 멜라니아가 백악관의 여주인이 된 뒤 패션이 본의 아니게 정치 세계로 휩쓸려가면서 주요 브랜드와 명품 업체들은 어떤 식으로 입장을 표명할지 고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독특한 디자인으로 정평이 난 니콜라스 K의 디자이너 듀오 니콜라스와 크리스토퍼 쿤즈 남매는 소비자에게 ‘구매로 투표할 것(vote with their purchases)’을 요구한다.

“정치적 측면에서 미국은 퇴행하는 것 같다”고 크리스토퍼가 IB타임스에 말했다. 니콜라스 K의 최신 컬렉션 ‘빌트 프롬 스크래치(Built From Scratch)’는 1990년대의 정치·문화적 사건과 경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반역죄로 남아공 감옥에 수감됐던 넬슨 만델라의 석방, 힙합의 ‘황금 시대’ 등이 대표적이다. 니콜라스 K는 이번 패션쇼를 앞두고 발표한 디자인 개요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2000년대의 디지털 세계는 인도주의적인 글로벌 사회를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의 사건들은 이런 진전을 방해하는 듯 보여 이 시점에 1990년대의 약속을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패션과 정치는 이념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선 듯 보일 수 있다. 한쪽은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인하고 다른 한쪽은 정책으로 대결을 벌인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선 패션 브랜드들도 정치적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갈수록 커져간다. 거친 언행을 즐기는 리얼리티 TV 스타 출신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런 경향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옷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은 이제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뉴욕 패션위크가 막을 내린 2월 16일은 트럼프가 임기 첫 1개월을 다 채워갈 때였다. 디자이너들은 퍼스트레이디의 옷을 만들 의향이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또 주요 브랜드들은 모델과 디자이너, 사진가 등 패션업계 전문가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관한 견해를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디자이너들도 사회의 일원인 만큼 주변 상황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가 뉴욕 패션위크 첫날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그녀는 트럼프 일가의 친구지만 대통령 선거 당시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그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작품 속에 표현된다. 향후 몇 년 동안 패션업계에서는 매우 창조적인 작품이 많이 나올 듯하다.”

니콜라스와 크리스토퍼는 오래 전부터 유기농 면과 식물염색 가죽, 천연 알파카 모직물 등의 원단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트럼프 정부가 환경 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쿤즈 남매는 명품 패션이 이런 불확실한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관한 대화에 적극 참여해 왔다.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모든 가죽 제품은 식물성 염료로 염색한다”고 니콜라스는 말했다. “이번 시즌에 선보인 금속 호일 가죽 등 특수가공 가죽은 예외다. 하지만 가죽 제품의 약 90%가 식물성 염료로 염색된다.”

통합과 다양성은 니콜라스 K 2017 FW 컬렉션의 또 다른 주제다. 쿤즈 남매는 패션쇼에서 늘 포용성을 강조해왔다. 그들은 옷에 쓰이는 원단만큼이나 다양한 모델들을 무대에 세웠다. 올해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에 저항하는 의미로 다양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자 했다. “모든 게 퇴보하는 듯해 황당하다”고 니콜라스는 말했다.

쿤즈 남매는 패션 산업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 추구에 초점을 맞춘 ‘CFDA(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렉서스 패션 이니셔티브’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다. 10개의 패션 브랜드를 선정해 워크숍과 멘토 제도를 통해 지속가능성 제고를 돕는 17개월 간의 연수 프로그램이다. 니콜라스와 크리스토퍼는 공급망의 투명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사업 방식을 개발하고 지속가능한 재료를 찾아내 디자인에 적용하는 임무를 맡았다. 브라더 벨리스와 데조 바이 사라 벨트란 등의 브랜드들이 참여하는 이 프로그램은 오늘 4월 마무리된다.

뉴욕 FIT와 이탈리아 피렌체의 폴리모다 디자인스쿨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한 니콜라스는 브랜드 니콜라스 K를 통해 지속가능성과 다양성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왔다. “처음엔 스웨터 원사를 모두 알파카로 바꾸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니콜라스는 말했다. “알파카는 지속가능성이 탁월한 섬유다. 독성 염료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 염색되지 않은 알파카를 사용해 색상은 천연 그대로다.”

패션업계가 전체적으로 서서히 지속가능한 미래 쪽으로 방향을 잡아간다. 크리스찬 디오르와 루이뷔통 등 명품업체를 소유한 LVMH 그룹은 2015년 자체적으로 ‘탄소 펀드’ 제도를 도입해 각 브랜드에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세금을 물린다. 이 세금은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과 프로그램에 투자된다.

최근 미국에서는 패스트 패션으로 의류 쓰레기가 급증하면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됐다. 미 환경보호청(EPA)은 1960년부터 2014년까지 쓰레기 매립지에 묻히는 폐기물의 총량을 재료별로 추적했다. 의류 원단의 경우 1960년 171만t에서 2014년 1046만t으로 늘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EPA의 (의류 쓰레기) 규제에 반대한다.

“어느 시점엔가는 생산비용 대비 환경비용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크리스토퍼가 말했다. “사람들은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에만 관심을 쏟을 뿐 그에 따르는 지하수 오염 같은 문제는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세계화의 한 가지 문제점은 효율성의 제고로 상품 가격이 낮아진 반면 누군가는 희생을 강요당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구가 견뎌낼 수 있는 오염의 정도엔 한계가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그것은 우리 모두의 비용이 된다. 어느 시점에는 모든 사람이 이 문제에 책임져야 한다.”

니콜라스 K의 이번 패션쇼에서는 벨벳 튜닉과 식물성 염색 가죽으로 만든 베레모, 양털 코트와 천연 알파카 원사로 짠 스웨터 등이 선보였다. DJ 롭 스위프트와 래퍼 라타샤 알신도어의 라이브 공연도 곁들여졌다. 모델들이 마지막으로 무대 위로 걸어나올 때 알신도어는 ‘혁명(revolution)’을 요구하는 랩을 연주하면서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모두 준비됐나요?”

– 알렉산드라 수아레스 아이비타임즈 기자

[박스기사] “목소리 낼 수 있다면 그것 이용해야” – 캘빈 클라인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 뉴욕 패션위크 무대에서 정치적 메시지 담은 작품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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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스는 작품에 미국의 정치 분위기를 많이 반영하는 듯하다

캘빈 클라인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프 시몬스(49)가 2017 FW 뉴욕 패션위크 무대에서 신고식을 치렀다. 그는 지난 2월 10일 열린 패션쇼의 시작과 끝을 데이비드 보위의 ‘This is not America’로 장식하면서 짙은 정치색을 드러냈다.

시몬스의 정치적 메시지 전달은 패션쇼 하루 전날 그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 게스트들에게 무늬가 들어간 흰색 스카프를 선물로 보내면서 시작됐다. 그 선물엔 “통합, 포용, 희망, 그리고 수용: 이 흰색 스카프를 두르고 캘빈 클라인 패션쇼에 참석해 주세요”라는 쪽지가 들어 있었다.

벨기에 출신인 시몬스는 대학에서 가구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독학으로 패션을 공부해 1995년 남성복 디자이너로 진로를 바꿨다.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한 뒤 2012년 크리스찬 디오르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발탁됐다. 이번 뉴욕 패션위크는 캘빈 클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시몬스의 데뷔 무대였다. 최근 뉴욕으로 이주한 그는 미국 정치 분위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컬렉션은 주변 환경을 반영한다”고 시몬스가 패션쇼 개요서에서 설명했다. “출신 배경이 다양한 모델들이 매우 다채로운 스타일과 드레스 코드를 선보인다. 특정 시대나 한 가지 정서, 혹은 하나의 스타일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다양한 개인의 독특한 개성들이 한데 어우러진다. 미국의 모습과 똑같다. 그것이 미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이자 정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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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0일 뉴욕 패션위크의 캘빈 클라인 2017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의상들.

시몬스의 패션쇼에는 유명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그를 응원했다.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와 배우 기네스 팰트로, 줄리안 무어, 사라 제시카 파커, 나오미 해리스, 케이트 보스워스, 그레타 거윅, 브룩 쉴즈, 그리고 슈퍼모델 로렌 허튼 등이다. 또 맨 앞줄에 앉은 디자이너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는 ‘패션은 계획 출산으로 시작된다(Fashion starts with Planned Parenthood)’는 문구가 쓰인 커다란 배지로 눈길을 끌었다. AP 보도에 따르면 퍼스텐버그는 그 배지에 대해 “이건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인체,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AP는 또 지난 2월 초 멘스 패션위크에서 시몬스가 패션쇼를 끝낸 뒤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말과 생각으로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하겠다.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 세랏 차바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