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본질적인 것만이 내 세상

서울스퀘어 외벽의 LED 패널 ‘걸어가는 사람들’의 작가 줄리언 오피, 중국서 첫 단독 전시회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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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픽’(2016).

영국의 포스트 팝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58)는 열두 살 때부터 미술 작품을 제작했다. 1970년대 옥스포드에 살던 그는 방과 후 친구들이 말썽 피우고 다닐 때 방에 틀어박혀 작업에 몰두했다. 완성된 작품도 수없이 뜯어고쳤다. 그의 머리 속은 늘 그 전날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 후 줄곧 그런 습성이 몸에 뱄다”고 그는 말했다.

오피는 1982년 런던의 골드스미스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는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개념 미술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과 자신의 사고방식이 비슷했다고 설명했다. 오피가 졸업전시회에서 선보인 멀티미디어 작품(애니메이션 영화와 벽화, 수조와 향수가 혼합됐다)은 즉각 수집가와 갤러리들의 관심을 모았다. 오피가 지금까지 전속 작가로 활동하는 리슨 갤러리도 그중 하나였다.

오피는 국제적인 전시회들을 통해 그림과 조각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뿐 아니라 대도시의 광고판에 설치한 애니메이티드 LED 패널로 전통적인 갤러리 관객을 뛰어넘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다가갔다.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 외벽에 설치한 LED 패널 ‘걸어가는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유럽에서 오피는 브리트팝 밴드 블러의 히트곡을 모은 앨범 ‘Blur: The Best Of’(2000년)의 커버 디자인으로 가장 유명할 듯하다. 밴드 멤버 4명의 모습을 디지털 그래픽(핑크색 피부와 흐트러진 머리, 검은색 점으로 표현한 눈동자가 눈길을 끈다)으로 묘사한 이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활기가 넘친다. 이 작품으로 오피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졌다. “난 운이 좋았다”고 오피는 말했다. “일자리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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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2012).

지난 2월 이슬비 내리는 어느 날 아침 오피의 런던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그는 3월 말 개막하는 중국 최초의 대규모 단독 전시회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리슨 갤러리의 아시아 대표 데이비드 퉁은 ‘지금은 오피가 중국 무대에 진출하기에 딱 알맞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의 문화적 환경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고 퉁은 말했다. “새로 생긴 미술 기관들이 세계 현대미술계에서 입지를 다지려는 의욕이 대단하다.”

최근 중국에는 새로운 경매업체와 사설 미술관, 상업적인 아트페어들이 속속 생겨나 미술품 매매가 활기를 띤다. “중국인 수집가들은 노하우를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지만 행동도 재빠르다”고 홍콩에서 활동하는 미술 컨설턴트 제한 추가 말했다. “중국인 수집가들은 베니스 비엔날레부터 아트 바젤까지 주요 미술 행사는 빠지지 않고 찾아다니며 조안 미첼부터 조나스 우드까지 요즘 잘나가는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사들인다.” 오피도 이번 전시회를 시작으로 서양 미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점차 고조되는 중국 미술 시장에 도전한다.

런던 동부에 있는 오피의 스튜디오는 소박한 4층 건물이다. 목재 마루판이 깔린 바닥과 흰 벽이 그의 작품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진바지에 회색 폴로셔츠를 입은 오피가 스튜디오 매니저를 비롯해 작품 제작을 돕는 직원 14명을 소개해줬다. 오피의 편안하고 밝은 성격 덕분인지 모두가 행복하고 활기 넘쳐 보였다.

오피는 정직해 보이는 얼굴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듯한 시선이 매력적이지만 사진 찍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건물 꼭대기에 있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다. 천장이 높은 그 방엔 선사시대와 중세 미술 수집품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고대 로마의 흉상과 투구, 이집트 조각상, 19세기의 실루엣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 양식의 작품을 자주 제작하는 미술가의 소장품치고는 뜻밖이었다. “난 다른 사람들의 작품에 둘러싸여 있는 걸 좋아한다”고 오피는 말했다. “내 작품을 보면서 분석할 때보다는 마음이 편하고 자신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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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하는 사람들’(2015).

그는 컴퓨터로 상하이의 전시 공간이 상세히 묘사된 3D 도면을 내게 보여줬다. 벽화부터 모자이크, 태피스트리, 애니메이션까지 50여 점의 작품이 2개 층에 걸쳐 전시된다. 오피는 관람객들이 전시회를 돌아보며 서서히 그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기를 바란다. 오피는 또 웹사이트에 가상 전시회를 업로드해 실제 전시회장에 가지 않아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전시작의 다양성을 보면 오피가 LED와 디지털 양식부터 조각과 그림까지 광범위한 미디어의 거장으로 찬양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강점은 세상을 명확하게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복잡한 대상의 불필요한 디테일을 제거하고 핵심만 보여준다. 겉껍데기를 모두 벗겨내고 증류시켜 본질을 드러내지만 명확한 언어로 이해가 쉽다. ‘시골 길(Country Road)’이나 ‘다니엘(Danielle)’ ‘목걸이를 한 남자(Necklace Man)’ 등이 좋은 예다. 검은색의 윤곽과 몇 개의 색깔 블록으로 이뤄졌을 뿐이지만 살아 숨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이 내가 미술을 이해는 방식”이라고 오피는 말한다.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 그 외에는 무엇이든 시간 낭비로 보인다.”

전시작 중엔 명랑하고 유머러스한 작품도 있다. 밝은 색상으로 장난기가 느껴지는 ‘조종사(Pilot)’와 ‘의사(Doctor)’ ‘항공기 승무원(Air Hostess)’ 등이 그런 예다. 오피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은 이름 모를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작품을 만든 뒤 거기에 자신이 상상하는 그들의 직업을 제목으로 붙였다.

그는 그 그림 속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이런 일을 할 거야’라고 추측할 때가 있지 않느냐?”고 오피는 말했다. 그는 이런 그림들로 우리가 사물이나 사람을 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짧고 분명한 제목은 의도적인 것이다. “실제 보이는 것보다 더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거창한 제목을 붙이고 싶진 않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한때 그도 작품에 긴 제목을 붙이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생각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싶었지만 큐레이터들이 싫어했다”고 그는 말했다.

오피는 2010년 상하이 세계 엑스포 당시 영국관에 작품을 전시한 적이 있어 중국 전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상하이가 문화적으로 급속히 발전했기 때문에 이번엔 반응이 더 좋으리라고 기대한다. 중국인 수집가들의 기호 변화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어떤 나라에서든 처음 미술품 수집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자국의 고유 유산부터 시작하는 게 보통”이라고 소더비 아시아의 패티 웡 회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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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팝 밴드 블러의 앨범 ‘Blur: The Best Of’(2000)의 커버 디자인.

지난 13년 동안 광저우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미술 컨설턴트와 큐레이터로 일해온 파비엥 파코리도 웡 회장의 말에 동의했다. “처음에 중국인 수집가들은 주로 고대 도자기와 수묵화 등을 사들였다”고 파코리는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 여행을 하면서 더 넓은 세계를 보고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도 둘러보면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바이두(구글 중국판)에서 오피에 대해 검색한 결과 만다린어로 된 파코리의 기사가 딱 하나 떴을 뿐이다. “홍콩의 미술시장은 이미 자리를 확실히 잡았지만 중국은 이제 본격적인 형성 과정에 들어섰다. 새로운 시각을 가진 젊고 활동적인 수집가들이 새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미술시장에서는 정보가 매우 중요한데 중국은 인터넷 검열이 심해 유럽이나 미국처럼 소셜미디어가 활성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콘텐트를 찾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서양 미술가들이 중국인에게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회에는 오피가 중국인 관람객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작품이 있을까? “관람객과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작품 제작에 관해 생각해봤다”고 오피는 말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건 작가로서 실패라고 생각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난 오피의 스튜디오를 나오기 전 그의 청소년 시절 작품 제작에 관해 이야기를 더 나눴다. “부모님 집 벽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고 그는 말했다. “바다와 물, 그 가운데 조그만 땅을 그렸다. 초상화도 그렸다.” 그때도 오피는 지금처럼 단순하고 논리적이며 진실된 작품을 만들었다.

이번 전시회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피 작품의 아름다움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그 보편적인 언어에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엔 사람을 끄는 정직성과 포용성이 있다. 깊이 숨어 있는 메시지를 끄집어내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그렇다면 오피는 관람객이 이 전시회에서 뭘 얻기를 바랄까? “난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가 살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다.”

– 올리비아 와인버그 뉴스위크 기자

[ 줄리언 오피의 중국 단독 전시회 ‘줄리언 오피’ 전은 상하이 포순 재단 전시관에서 3월 28일부터 6월 1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