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뎃잠과 허드렛일로 배우의 꿈 키웠다”

한국계 호주인 배우 리어나도 남, 미드 ‘웨스트월드’의 로봇 기술자 펠릭스 역 맡기까지 우여곡절과 이 드라마의 반전에 대해 얘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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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나도 남(왼쪽)이 ‘웨스트월드’에서 동료 기술자 실베스터로 나오는 프톨레미 슬로컴과 포즈를 취했다.

할리우드의 한국계 배우 리어나도 남은 아르헨티나에서 나고 호주에서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배우가 되겠다는 꿈이 확고했다. 학교에 다닐 때 몇몇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연극학과 신설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주는 그 꿈을 이룰 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뉴욕이 그런 곳이라고 믿었다. “난 ‘뉴욕에 갈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고 리어나도 남은 아이디지털타임스에 말했다. “뉴욕에 도착했을 때 수중에 200달러밖에 없었다. 사흘 밤을 공원에서 잤고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하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공원에서 잘 수가 있느냐?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으며 신기해 한다. 뉴욕에 도착했을 땐 찌는 듯이 더운 8월이었다. 어머니가 내 꼴을 봤더라면 기겁했을 것이다. 당시 난 ‘좋아, 무슨 일이 있어도 배우가 되고 말 거야’라고 다짐했다.”

20대 풋내기 젊은이 대다수가 그렇듯이 그 역시 머지않아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뉴욕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뉴욕에서 성공의 문에 발끝 하나라도 밀어 넣으려면 온갖 어려움을 다 겪어야 한다. 리어나도 남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낸 후에 마침내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Shakespeare In The Park)’(뉴욕시 곳곳의 공원에서 펼쳐지는 셰익스피어 연극 프로그램)에서 역할 하나를 따냈다.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로서는 연기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 즈음 그에겐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내겐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가 궁극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리허설을 시작할 때쯤 첫 영화 배역 제안이 들어왔다.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하는 앙상블 캐스트(여러 배우에게 비슷한 비중의 역할을 맡기는 것) 영화의 주연이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인 더 파크’의 캐스팅 감독을 찾아가 의논했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내 오랜 꿈이었기 때문에 난 몹시 당황스러웠다. 감독은 내게 ‘당신은 여기선 단역에 불과하지만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 아니냐?’고 말했다. 나 같으면 아시아 출신이나 흑인 무명 배우가 햄릿으로 나오는 연극을 보러 가진 않겠다. 혹시 덴젤 워싱턴이나 바이올라 데이비스 같은 유명 흑인 배우가 햄릿을 연기한다면 햄릿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햄릿을 연기한다면 그저 리어나도 남으로 보일 것 같다.”

그 감독의 솔직한 이야기에 충격을 받은 리어나도 남은 영화 배역을 받아들였다. 영화에 출연해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첫 영화 ‘퍼펙트 스코어’(2004)에서 크리스 에번스, 스칼렛 요한슨과 공연했다. 그 후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2006)와 ‘청바지 돌려입기 2’(2008) 등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배우 생활 12년 만인 지난해 HBO 드라마 사상 최고 히트작 중 하나인 ‘웨스트월드’의 배역을 따냈다. 이 드라마는 미국 서부를 주제로 한 테마 공원 웨스트월드에서 인공지능 로봇(호스트)들과 무자비한 인간 손님(게스트)들이 펼치는 섬뜩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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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월드’ 시즌 1에서 리어나도 남(펠릭스 역)은 탠디 뉴튼(매브 역)과 기막힌 호흡을 보여줬다.

‘웨스트월드’에서 리어나도 남은 호스트를 수리하는 기술자 펠릭스로 나온다. 그의 상대역인 매브(탠디 뉴튼)는 자신이 자유의지를 갖도록 프로그램됐다고 믿는 호스트다. 기막힌 호흡을 자랑하는 두 배우는 반전투성이인 이 드라마에서 달콤한 코미디 같은 휴식을 선사한다.

‘웨스트월드’는 ‘워킹데드’나 ‘왕좌의 게임’ 같은 다른 인기 TV 드라마와 달리 만화나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 않았다. 마이클 크라이튼 감독이 1973년 제작한 동명의 SF 영화(국내 개봉 당시 제목은 ‘이색지대’)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시청자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려면 드라마 속에 감춰진 힌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포드 박사(웨스트월드의 창조자이자 모든 호스트들의 아버지)의 오른팔인 버나드가 뜻밖에도 호스트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 그것을 넌지시 암시하는 복선이 깔린다.

이 대목은 ‘웨스트월드’의 최대 반전 중 하나로 예측이 쉽지 않았다. 리어나도 남 역시 버나드가 호스트였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한동안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발설할 수 없었다. 이 드라마에선 반전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배우들도 자신이 나오는 장면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은 자신과 관련 있는 특정 스토리라인만 알 수 있었다”고 리어나도 남은 말했다. “예를 들어 나는 매브의 스토리라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집에서 일어나는 개인적인 일은 몰랐다. 촬영장에서 줄거리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돌긴 했지만 내가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매브와 펠릭스의 스토리라인뿐이었다. 늘 궁금한 게 많고 질문하기 좋아하는 난 대본을 쓴 리사 조이와 조너선 놀란에게 영화 줄거리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들은 ‘잘 알겠지만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는 스토라인은 한정돼 있다’고 대답했다. 돌이켜 보니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리어나도 남도 우리처럼 TV로 본방송을 보면서 ‘웨스트월드’의 충격적인 반전들을 경험했다. 그도 맨 인 블랙과 윌리엄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 촬영장에서 갖가지 소문을 듣긴 했지만 드라마가 방영될 때까지 확실한 건 몰랐다.

그는 시즌 2에서 펠릭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펠릭스와 매브가 환상적인 팀이라는 사실로 미뤄 볼 때 리어나도 남은 또 다시 뉴튼과 호흡을 맞출 수도 있다. 어쩌면 펠릭스가 호스트이고 매브는 기막힌 거짓말장이일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우리는 리어나도 남이 바라는 대로 헬로 키티 인형으로 가득 찬 웨스트월드 테마 공원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바보스럽게 들리겠지만 난 영화 ‘트랜스포머’와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헬로 키티’를 합쳐놓은 듯한 웨스트 월드를 꿈꾼다”고 리어나도 남은 웃으며 말했다. “‘트랜스포머’와 ‘왕좌의 게임’ ‘워킹데드’의 세계를 합쳐놓은 듯한 공원 안에 갇히게 된다면 제정신으로 버티긴 힘들 것 같지 않은가? 거기에 ‘리얼 하우스와이브스’의 세계를 더한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만 말이다.”

– 줄라이 세라노 뉴스위크 기자

[ 이 기사는 인터넷 매체 아이디지털타임스에 먼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