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의 우주를 여행하다

‘호빗’ ‘반지의 제왕’의 바탕이 된 소설 ‘실마릴리온’, 우주 창조부터 ‘제3시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스케일로 성경 같은 느낌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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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J.R.R. 톨킨.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끊임없이 뜯어고치고 확장했다.

1973년 9월 2일 J.R.R. 톨킨의 사망으로 세계는 가장 위대한 이야기꾼 한 명을 잃었다. 하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이 작가는 사후에도 세상 사람들에게 미처 들려주지 못한 이야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톨킨의 막내 아들 크리스토퍼의 감독 아래 지난 40여 년 동안 중간계(Middle-earth)의 영웅적인 위업과 반역 행위를 다룬 그의 이야기들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끊임없이 뜯어고치고 확장했던 톨킨에게는 그 결과물을 독자들과 나누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실마릴리온’은 그가 남긴 책 중에 중간계의 불멸성에 가장 크게 기여한 작품으로 꼽힌다.

톨킨의 사후 출판작 중 가장 가치 있는 작품으로 인정받는 ‘실마릴리온’은 그가 창조한 우주의 역사를 설명한다. 톨킨이 젊은 시절에 쓰기 시작한 ‘실마릴리온’은 일반 독자에게는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그 두 작품의 바탕이 됐다.

크리스토퍼는 1996년 다큐멘터리 ‘J. R. R. T.’에서 “‘실마릴리온’은 여러 버전”이라고 말했다. 톨킨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때 들고 다니던 노트에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신화 초기 버전을 기록했다[크리스토퍼는 이 이야기들을 모아 ‘잃어버린 이야기 모음집(The Book of Lost Tales)’을 펴냈다]. 톨킨은 그 노트에 투린 투람바르의 업적과 베렌과 루시엔의 모험을 처음 썼다. “그 글은 아버지의 후기 작품과는 스타일이 사뭇 달랐다”고 크리스토퍼는 말했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재미있다.”

톨킨은 엘프족과 그 동지들이 악의 세력과 싸우는 이 이야기를 1930년대까지 계속 썼다. 하지만 ‘호빗’의 전례 없는 성공은 그가 완벽하다고 여겼던 그 이야기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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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릴리온’은 일반 독자에게는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보다 덜 알려졌지만 그 두 작품의 바탕이 됐다.

빌보 배긴스와 외로운 산을 향한 그의 여정을 다룬 ‘호빗’은 원래 ‘실마릴리온’과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호빗’의 속편으로 기획된 ‘반지의 제왕’ 역시 원래는 ‘실마릴리온’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톨킨이 가장 먼저 쓰기 시작한 ‘실마릴리온’이 그의 나머지 작품에 영향을 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호빗’과 ‘반지의 제왕’에 ‘실마릴리온’ 참조 조항을 덧붙이기도 했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갈라드리엘 같은 캐릭터는 ‘실마릴리온’에 묘사된 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톨킨은 이 캐릭터들을 더 광범위한 신화의 범주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창조한 신화와 그 세계에서 그들이 갖는 의미를 더 깊이 파고들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게 됐다.

“아버지는 갈수록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형이상학적 측면에 관심이 많아졌다”고 크리스토퍼는 말했다. “특히 엘프의 속성에 관심을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톨킨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여겼던 ‘실마릴리온’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 크리스토퍼는 중간계의 신화인 ‘실마릴리온’에 대한 톨킨의 비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톨킨이 남긴 노트와 일기를 뒤져 엘프족 왕들의 계보부터 시, 아만 대륙의 생활상 등 상세한 정보를 찾아냈다. 크리스토퍼는 가이 가브리엘 케이(나중에 판타지 작가로 성공했다)와 함께 작업한 끝에 1977년 마침내 ‘실마릴리온’의 출판을 위한 최종 버전을 정리했다.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팬들은 비로소 이들 작품에서 본 선·악의 충돌과 영웅적인 위업은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실마릴리온’의 광대한 스케일은 우주의 창조부터 ‘제3시대(The Third Age)’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톨킨의 우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안달인 중간계의 팬들에게 새로운 환상적 장소들에 대한 엄청난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가상의 중세 스타일로 쓰인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 성경 같은 느낌을 준다. ‘반지의 제왕’의 골수 팬들도 읽기 버거울 정도로 방대한 양이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읽는 독자는 문학 사상 가장 풍부한 상상력으로 창조된 우주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톨킨은 이 우주에 실제 세상만큼 복잡한 역사와 관습, 언어를 불어넣었다.

‘실마릴리온’이 톨킨의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12권짜리 ‘중간계의 역사(The History of Middleearth)’가 출판됐다. 여기엔 ‘실마릴리온’과 톨킨의 다른 작품들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의 초안과 메모가 실렸다. ‘후린의 아이들(The Children of Hurin, ‘실마릴리온’에 나오는 짧은 이야기를 확장한 톨킨의 메모를 바탕으로 한 소설)’과 오는 5월 나올 ‘베렌과 루시엔(Beren and Luthien,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베렌과 루시엔의 이야기 여러 버전을 모은 책)’도 ‘실마릴리온’의 인기 덕분에 출판이 가능했다.

톨킨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흥미진진한 이 우화들을 통해 우리 곁에 계속 살아 숨 쉬며 하나의 전설이 됐다.

– 제임스 엘리스 뉴스위크 기자

[ 이 기사는 뉴스위크 특별호 ‘J.R.R. 톨킨-천재의 마음(J.R.R. Tolkien-The Mind of a Genius)’에서 발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