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전 시작된 북핵 야욕

6·25 전쟁 얼마 후 북한은 옛 소련으로부터 핵 프로그램 ‘기본 지식’ 처음 전수받아

01
핵 로고가 새겨진 군장을 들고 열병식을 하는 북한 군인들.

지난 3월 하순 미국과 그 우방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해 왔다는 보도가 잇따른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아주 나쁘게 행동한다”는 트윗을 띄웠다.

그러나 북한이 핵으로 미국에 으름장을 놓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실상 북한이 핵 게임에 처음 뛰어든 건 60여 년 전이었다. 북한 핵 관련 움직임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기록한 연표는 북·미 관계의 흥미로운 패턴을 보여준다.

1956년 한국전쟁 후 얼마 안돼 옛 소련이 북한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에게 핵프로그램에 착수할 ‘기본 지식’을 전수하기 시작했다.

1959년 이즈음 미국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소련이 북한과 핵협력협정을 체결했다.

1962년 북한이 연구용 원자로인 영변 핵연구센터를 완공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안전보장프로젝트(ASP)에 따르면 소련의 도움으로 북한의 핵역량이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다.

1984년 북한이 방사화학 실험실 즉 핵연료 재처리공장을 완공했다. 북한이 이 공장의 건설로 정식 플루토늄 연료사이클을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1985년 핵무기 확산 중단을 위한 핵확산금지조약에 북한이 서명했다. 1968년 미국·소련과 기타 여러 나라가 처음 체결한 조약이다.

02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지켜보며 기뻐하고 있다.

1994년 10월 21일 북한이 미국과 핵원자로 동결을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핵확산 방지형 원자로인 경수로로 핵원자로를 대체하기로 했다.

2002년 1월 29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란·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낙인 찍었다. 그는 “이런 나라들과 그들의 테러리스트 일당은 세계평화를 위협하기 위해 무장하는 악의 축을 이룬다”며 “이들 정권은 대량살상무기를 수집하며 심각하고 중대한 위험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2002년 10월 북한이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의 운영을 시인했다고 부시 정부가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핵확산금지조약을 위반했다.

2003년 1월 10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다.

2003년 4월 24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시인했다고 미 당국이 밝혔다.

2003년 12월 9일 미국의 양보를 조건으로 북한이 핵프로그램 ‘동결’을 제안했지만 미국이 거부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폐기에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5년 9월 19일 북·미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이 미국과의 불가침 조약을 조건으로 핵프로그램 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그 약속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불과 하루 뒤 북한은 조약의 선결조건으로 민수용 원자로를 요구했다. 그 뒤 협상은 중단됐다.

2006년 7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뒤 유엔안보리가 북한에 핵프로그램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처음으로 핵무기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핵역량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형 무기지만 유엔은 북한에 무역·여행 제재를 가했다.

2006년 12월 북핵 프로그램에 대한 평화로운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6자회담이 시작됐다. 북한·미국·남한·중국·일본·러시아가 회담에 참석했다.

2007년 2월 북한이 4억 달러의 원조 패키지를 받는 조건으로 제1 핵원자로를 폐쇄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9월 북한이 핵무기 시설의 불능화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2007년 12월 31일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의 연말 시한을 넘겼다.

2009년 5월 25일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03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하면 마치 정해진 듯 유엔 제재가 뒤따르는 패턴이 반복됐다.

2009년 6월 12일 실험에 맞서 유엔이 대북 제재조치를 확대했다.

2009년 11월 북한이 비밀 핵농축 시설을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2012년 2월 식량원조의 대가로 북한이 핵무기실험, 미사일 발사, 핵농축 활동 중단에 합의했다고 미국 국무부가 발표했다.

2013년 1월 북한이 미국에 보란 듯이 핵실험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국방위원회는 미국을 ‘조선 인민의 원수’라고 불렀다.

2014년 2월 북한이 제3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마치 정해진 패턴인 듯 유엔의 제재 확대가 뒤따랐다.

2014년 3월 30~31일 북한이 또 다른 핵무기를 실험하겠다고 경고하더니 대신 서해안 경계선 넘어 남한의 연평도로 포탄을 수백 발 퍼부었다. 남한은 그에 맞서 북한 해역에 300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2015년 5월 6일 북한은 필요할 경우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북한 당국자가 말했다.

2016년 1월 북한의 수소폭탄 폭파 실험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실험이 성공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미국은 밝혔다.

2016년 9월 북한이 제5차 핵실험을 실시해 핵탄두 폭파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2017년 1월 1일 북한이 대륙간탄도탄(ICBM) 실험에 근접했다고 김정은이 말했다. 미국 타격 능력을 갖춘 미사일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2017년 1월 8일 미국이 북한에서 발사되는 장거리 미사일을 감지하기 위한 첨단 해상 레이더를 배치했다.

2017년 2월 12일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며 그것은 미국에 의해 확인됐다.

2017년 3월 6일 북한이 동해로 탄도 미사일 4발을 발사했다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했다.

2017년 3월 13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남한 배치 계획을 발표한 뒤 북한이 남한과 미국에 핵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2017년 3월 17일 북한이 “아주 나쁘게 행동한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띄웠다.

2017년 3월 20일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은행들에 대한 제재 강화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됐다. 같은 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외교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7년 3월 22일 북한이 또 한 번 미사일 발사를 시도했지만 ‘수 초 만에 폭발’하며 실패했다.

– 카시아 코박스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