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이제 이 지옥에서 나와야 한다”

앤절리나 졸리가 감독한 새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어린 소녀의 눈으로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즈 학살 사건 조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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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 촬영 현장에서 앤절리나 졸리가 주인공 루옹 역을 맡은 캄보디아인 소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즘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는 1970년대 폴 포트(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치하의 공포스런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통체증으로 꽉 막힌 도로와 마구잡이 개발이 과거의 흔적을 거의 다 지워버리다시피 했다. 일부 캄보디아인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한 자동차 대리점은 조만간 영국에서 고급 승용차 벤틀리를 수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1975~79년 캄보디아 인구의 약 4분의 1에 이르는 170만 명을 학살한 크메르 루즈의 만행은 여전히 이 나라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많은 캄보디아인이 아직도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그때의 공포를 떠올리며 비명을 지르곤 한다. 미국 여배우 앤절리나 졸리가 최근 자신이 감독한 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First They Killed My Father)’의 시사회에 프놈펜 시민 수천 명을 초대했을 때 많은 이가 깊은 감동을 받았던 것도 그래서다. 이 영화는 캄보디아 내전에서 고아가 된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본 크메르 루즈의 학살에 관한 이야기다.

시사회는 프놈펜에 있는 캄보디아 국립 올림픽 경기장의 실내 체육관에서 열렸다. 1966년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이 미국을 향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지 않으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내용의 유명한 연설을 한 곳이다. 미국은 드골 대통령의 충고를 듣지 않았고 베트남전은 그 후로도 9년이나 더 계속되면서 이웃나라 캄보디아에까지 영향을 미쳐 크메르 루즈의 집권에 도움을 줬다.

난 1975년 초 로켓이 프놈펜을 초토화시키던 때 그 스타디움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시 임시 병원으로 쓰이던 그곳에는 부상자가 넘쳐났다. 나중에 이 건물은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 포트와 그의 부하들이 히틀러와 스탈린, 마오쩌둥을 흉내 낸 자신들의 혁명을 찬양하는 정치집회의 장소로 사용했다.

해가 지고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높은 천장 아래로 박쥐들이 날아다녔다. 관객들은 사랑과 인류애로 가득 찬 그 비통한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내 옆에 앉았던 여성을 비롯해 일부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흐느껴 울었다. 졸리는 캄보디아와 아들 매독스에 대한 사랑으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그녀는 2002년 캄보디아의 고아 출신인 매독스를 입양했다). “캄보디아가 아니었다면 난 엄마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말했다.

졸리는 이 영화를 감독했을 뿐 아니라 캄보디아인 감독 리티 판과 함께 공동 제작했다. 판 감독은 크메르 루즈의 학살로 부모와 형제를 잃었다. 그는 캄보디아의 지옥처럼 끔찍했던 시절을 묘사한 이 영화에서 이 나라 고유의 아름다움과 마음씨 착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려지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일례로 우리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흙 속에 피어 있는 연꽃을 본다. 공포 속의 희망을 상징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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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어린 시절 크메르 루즈의 학살로 부모와 두 자매를 잃은 루옹 웅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다.

이 작품이 크메르 루즈의 만행을 조명한 첫 번째 장편 영화는 아니다. 1984년 롤랑 조페 감독이 제작한 ‘킬링필드’(난 이 작품에 출연했다)도 그런 영화였다. 하지만 졸리의 영화는 감동적인 스토리뿐 아니라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하다. 이 영화는 캄보디아 현지에서 캄보디아인 배우들만을 캐스팅해 촬영했다. 출연진 중 다수가 크메르 루즈 학살 생존자이거나 그 자녀이며 모든 대사가 캄보디아어로 쓰였다.

영화는 한 아이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폴 포트 치하의 캄보디아에서는 어린이가 웃는 것도 법에 저촉됐기 때문에 이런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크메르 루즈는 의사와 전문가들을 처형했다. 손이 부드럽거나 안경을 쓴 사람들도 지식인으로 분류돼 죽임을 당했다. 처형을 집행하는 쪽은 어린이 병사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2000년 출판된 루옹 웅의 동명 회고록을 바탕으로 했다. 루옹은 어린 시절 크메르 루즈의 학살로 부모와 두 자매를 잃었다. 루옹 역은 프놈펜 교외에서 자란 캄보디아 소녀 사레움 스레이 모크가 연기했다. 영화 촬영 당시 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여러 장면에서 자신이 휘두르던 AK-47 소총과 키가 비슷했다.

1975년 크메르 루즈가 프놈펜을 함락할 당시 난 그 도시에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외국인 기자였기 때문에 그때 상황을 잘 안다. 영화를 보면서 정확한 묘사에 깜짝 놀랐다. 특히 크메르 루즈가 무력을 사용해 약 200만 명의 주민을 시골로 강제 이주시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집단농장에서 폴 포트의 농업 이상향 건설을 위해 강제노동을 하다 죽어갔다. 4년 후 이 처참한 사회적 실험이 실패로 끝나면서 베트남군과 크메르 루즈 지도층에 불만을 품은 전사들이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베트남이 지원하는 새 정부를 세웠다.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 대다수의 마음 속에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공동 제작자인 판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캄보디아에 필요한 건 보복이 아니라 화해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로 인한 캄보디아인의 고통이 너무도 커서 보복 욕구가 도를 넘는 경우도 있다”고 판 감독은 말했다. 그가 졸리에게 “루옹의 책에서 성난 군중이 크메르 루즈 병사 한 명을 때려죽이는 대목을 영화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 이유다. 영화에서 그 병사는 몰매를 맞긴 하지만 목숨은 부지한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이 학살자들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이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졸리와 판 감독은 올가을 넷플릭스에서 방영될 이 영화가 그 과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캄보디아인들은 내게 과거에 대한 마음의 짐이 좀 덜어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자손들에게 자신이 목격한 공포에 관해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우리는 이제 이 지옥에서 나와야 한다”고 판 감독은 말했다. “마침내 우리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됐다. 재건을 시작할 때다.”

– 존 스웨인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