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통해 보는 정체성의 의미

루퍼트 샌더스 감독의 ‘공각기동대’, 미학적 감각 뛰어나지만 맥 빠지는 대본과 기억에 남는 악당 없다는 점 아쉬워

1
스칼렛 요한슨은 온라인 범죄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 ‘섹션 9’의 리더인 사이보그 전사 메이저로 나온다.

1989년 출판된 시로 마사무네의 망가 시리즈 ‘공각기동대’는 인류의 테크놀로지 의존에 관해 심오한 질문을 제기했다. 1995년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이 작품을 바탕으로 제작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은 그 주제를 한층 더 파고들면서 정체성과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에 초점을 맞췄다. 최근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이 이야기를 실사판 영화로 만들었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국내 개봉 3월 29일)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연기하는 주인공 메이저는 사이보그로 위험한 온라인 범죄자를 저지하는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 ‘섹션 9’의 리더다. 영화 첫머리에 사이보그가 된 메이저의 사연이 소개된다. 어려서 고아가 된 그녀는 어른이 된 뒤 심각한 부상을 입고 로봇 공학 회사 ‘한카’로 보내진다. 메이저의 몸을 되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오우레 박사(줄리에트 비노슈)는 그녀의 생물학적 두뇌를 합성 신체와 결합한다. 전례 없는 이 실험이 성공하자 메이저는 섹션 9에 차출된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뒤에도 메이저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런 내적 갈등은 그녀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환상 때문에 갈수록 심해진다. 막강한 힘을 지닌 테러리스트 쿠제(마이클 피트)가 사람들의 마음을 해킹해 한카의 고위 관리들을 잔인하게 공격하도록 만들자 메이저는 그를 뒤쫓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린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멋진 비주얼로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케 하는 미래의 세계를 묘사한다. 무대 디자인부터 각 캐릭터의 이미지까지 이런 초현대적 스타일이 고루 스며들어 있다. 기모노 등 일본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요소들이 사이버펑크적 이미지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등장인물들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필로 애스백의 삐죽삐죽한 백발부터 기타노 다케시의 울버린 스타일, 요한슨의 푸른 빛 도는 흑발까지. 또 클린트 맨셀과 론 밸프의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테크노 음악이 액션 장면과 멋지게 들어맞는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미학적 감각과 캐릭터, 콘셉트가 매우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대본은 다소 맥이 빠지며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악당이 없다는 게 큰 결점이다. 피트가 연기하는 악당 쿠제의 존재는 초반부 이후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다수 캐릭터가 겪는 고통이 설득력 없어 보이며 긴장감도 떨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스토리 전개가 뻔해지면서 신비감이 없어진다.

2
촬영 감독 제스 홀은 멋진 비주얼로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를 연상케 하는 미래의 세계를 묘사한다.

하지만 피트의 연기가 신통치 않다는 말은 아니다. 특히 한 장면에서 그의 연기는 정말 훌륭하다. 초반부에 메이저와 대결하는 대목에서 쿠제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사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로봇 부품들이 섞인 그의 몸과 컴퓨터로 합성된 목소리, 이리저리 엉킨 전선과 물 웅덩이들이 음산한 분위기를 내는 지하 소굴 등이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 장면에서 피트는 사악한 이미지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뿜어낸다.

샌더스 감독은 최종 편집본보다 훨씬 더 많은 장면들을 찍었던 게 분명하다. 이는 영화 전반을 통해 속도감 조절의 문제를 낳기도 했지만 편집의 힘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느끼게도 한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면서 잘려나간 장면들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 또한 크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요한슨을 중심으로 출연진이 확정된 이후 줄곧 화이트워싱(whitewashing, 원작의 설정을 무시하고 백인을 캐스팅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관행)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요한슨이 메이저 역에 캐스팅된 사실을 당혹스럽게 여긴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느낌이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요한슨은 그 역할에 딱 맞는 뭔가를 지니고 있다. 할리우드의 백인 스타라는 표면적 사실보다 더 깊은 내면의 특성이랄까. 그녀가 맡은 메이저라는 캐릭터는 특정 임무의 수행을 위해 창조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메이저를 창조한 사람들은 그녀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면서도 그녀의 인공두뇌가 만들어내는 차이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그녀를 진짜 인간이 아니라 일종의 ‘사물’로 보는 게 분명하다. 배우로서 요한슨과 팬들이 그녀를 보는 방식도 그와 유사하다.

요한슨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언더 더 스킨’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간단히 말해 요한슨처럼 유명한, 아니 그녀 같은 외모를 지닌 스타는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그저 아름다운 스타 이상의 깊이를 지녔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메이저도 이와 유사한 특성을 지녔다. 요한슨과 메이저 양쪽 다 목적을 지닌 개인으로 비쳐지기를 갈망한다. 요한슨이 과거 여러 작품에서 맡았던 절제되고 엄격한 캐릭터들 속에 감춰진 혼란스럽고 의구심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이 그것을 말해준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의 메이저 역은 요한슨이 뛰어난 연기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기엔 약간 아쉬움이 남지만 그녀에게 꽤 잘 어울리는 캐릭터다.

– 에이미 웨스트 아이비타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