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물건 계속 만들어내선 안 된다”

영국 런던에서 디자인 회사 운영하는 건축가와 미술가 부부, 세계 곳곳에서 찾은 지속가능한 재료로 작품 만들어

1
스튜디오 스와인의 무라카미와 그로브스 부부는 작품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꾸고자 한다.

중국의 전문 시장에서 구입한 머리카락, 대서양에서 건져낸 플라스틱 쓰레기, 브라질 아마존 정글의 나무에서 채취한 천연 고무. 명품 디자인에 흔히 쓰이는 재료들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 런던의 디자인 회사 ‘스튜디오 스와인(Studio Swine)’은 이런 재료로 가구를 만든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일본 태생 건축가 무라카미 아주사(32)와 그녀의 남편인 영국인 미술가 알렉스 그로브스(33)가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스와인(‘돼지’ ‘기분 나쁜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이 회사는 고정관념의 타파를 꾀한다. “스와인이라는 단어는 바람직하거나 매력적이지 않다”고 그로브스는 말했다. “가끔은 ‘좀 더 호감 가는 이름을 썼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정관념을 깨는 데 관심이 많다.”

이들이 바꾸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라고 하면 흔히 판지로 만들었거나 자학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람직한 뭔가로 바꾸고자 한다. 이미지뿐 아니라 만드는 방식에 있어서도 말이다. 이들은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스티벌 ‘살로네 델 모빌레(Salone del Mobile)’에서 이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계획이다.

2
스튜디오 스와인은 플라스틱 쓰레기와 양철 캔, 인모 등으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

이 페스티벌에서 스튜디오 스와인은 의류업체 COS와 제휴해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안 쓰는 영화관 건물 안에 비계기둥으로 나무처럼 생긴 조각 작품[‘새봄(New Spring)’]을 세운다. 무라카미와 그로브스에 따르면 이 나무는 수증기로 채워진 풍선으로 ‘꽃’을 피운다. 이 풍선은 관람객들 사이로 떨어지면서 피부와 접촉하면 터진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창조한다’는 이 스튜디오의 원칙에 잘 들어맞는다.

밀라노로 작품을 선적하기 2주일 전 런던 남부 페캠의 작업 현장에서 무라카미와 그로브스를 만났다. 두 사람은 그들이 추진하는 모험적인 프로젝트와는 대조적으로 수줍음을 많이 탔다. 말투가 부드럽고 생각이 깊어 보였으며 묻는 말에 짤막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듯 서로 바라봤다.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윈스턴 처칠이나 헨리 포드 등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했다.

두 사람은 런던 왕립미술학교에서 제품 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을 때 만났다. 무라카미는 자신과 그로브스는 서로 매우 다르며 바로 그런 점에 이끌렸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작품은 매우 달랐다. 하지만 둘 다 전통적인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디자인에 대한 무지와 순진함이 서로 통했다.”

스튜디오 스와인의 작품들이 다층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인 듯하다. 무라카미와 그로브스의 졸업 작품 ‘바다 의자(Sea Chair)’(2011)는 그들이 영국 남서부 콘월 해안가에서 주운 플라스틱 쓰레기로 제작됐다. 그들은 그 플라스틱을 녹여 다리 3개짜리 의자를 만들었다. 영국의 어부들도 그물에 걸린 플라스틱 쓰레기로 의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그들의 의도였다.

무라카미와 그로브스는 프로젝트 별로 그 주제에 맞게 가구를 제작하는데 사전 조사와 재료를 구하기 위한 여행, 제작에 보통 1년 넘게 걸린다. 이들은 또 영화와 인쇄물, 몰입형 공간(immersive spaces)도 제작한다. “우리는 하나의 세계를 디자인하고 싶다”고 그로브스는 말했다. “사실 우리는 세상 전체를 디자인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이런 포부를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2016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포드랜디아(Fordlandia)’다. 무라카미와 그로브스는 1920년대 말 미국 기업가 헨리 포드가 브라질 열대우림의 고무 산지에 세운 공업 도시 ‘포드랜디아’의 역사를 1년 넘도록 조사했다. 이 도시는 1934년 합성 고무의 개발로 쓸모없어지자 버려졌다.

3
스튜디오 스와인은 4월 밀라노의 ‘살로네 델 모빌레’ 디자인 페스티벌에서 수증기를 채운 풍선을 이용한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만약 포드의 실험이 성공했더라면 이 도시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그 주제로 일련의 가구와 영화 한 편을 제작했다. 가구는 포드의 프로젝트가 성공해 포드랜디아가 오늘날까지 존재할 경우 그곳에 있었을 법한 집에 맞게 디자인됐다. 이 가구 컬렉션을 위해 무라카미와 그로브스는 자신들의 가구를 만들 때 즐겨 쓰던 강화고무의 환경친화적인 생산 방식을 개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부지런히 재료를 물어다 집을 짓는 까치 같은 그들의 작업 방식과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좀 더 매력적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우리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둔 디자인은 멋이 없는 것으로 인식됐다”고 그로브스는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성 제고에 앞장서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새로운 물건들을 계속 만들어내선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2011년 그들은 브라질 상파울루 거리에서 주운 양철 캔으로 의자 5점을 제작했다. 2014년에는 아조레스에서 북대서양 환류를 지나 카나리 제도까지 배를 타고 갔다. 그로브스는 북대서양 환류의 수면 수천㎢에 ‘플라스틱 수프’가 떠다닌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그물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건져 올려 태양열 압출기를 이용해 견고한 재료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그 재료로 런던 셀프지리 백화점에 전시할 조각작품들을 제작했다.

같은 해 그들은 머리카락을 사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서 8시간 떨어진 곳에 있는 전문 시장을 찾아갔다(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모 수출국이다). 그리고 소위 현대판 실크로드(과거 아시아와 서양을 이어주던 무역로)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에 수지를 섞어 굳힌 거북 등 같은 재료로 상하이 데코 스타일의 상자와 빗, 화장대 등을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들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구한 재료로 아름답고 예술성 있는 물건을 탄생시켰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늘 지속가능한 물건이 매우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그로브스는 말했다. “아무도 그 물건을 원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지속가능성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4
무라카미 부부는 북대서양 환류(자이어)에서 건져낸 플라스틱 쓰레기로 ‘자이어 크래프트’ 시리즈를 제작했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필요한 만큼만 생산한다는 모토에 따라 대개의 경우 작품을 단 한 점만 제작한다. 작품 판매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우리는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피하는 편”이라고 무라카미는 말했다. “산업의 노예가 돼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자유를 빼앗기는 걸 원치 않는다.”

하지만 명성이 쌓이면서 이런 경향에 변화가 일고 있다. 스튜디오 스와인은 최근 공공미술 에이전시 퓨처페이스(FuturePace)와 제휴해 런던 로어 리전트 거리에 있는 세임스 제임스 마켓의 공공 공간에 놓을 벤치를 제작했다. “거리는 벽 없는 갤러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꼭 맞는 일”이라고 그로브스는 말했다. “우리는 공공 영역의 미술을 사랑한다. 디자인에 매력을 느낀 이유도 그래서다.”

스튜디오 스와인의 작품들은 지속가능성과 명품 디자인 산업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그들은 ‘후원자’(그로브스는 COS의 제휴 관계를 이렇게 부른다)의 도움에 힘입어 마침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작품을 만들 때 항상 시야를 넓게 가지려고 애써 왔다”고 무라카미는 말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개인 스튜디오가 처음부터 큰 규모로 작업하긴 어렵다. 해변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시작할 수는 있지만 언젠가는 북대서양 환류까지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결국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톰 모리스 뉴스위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