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광기를 포착하다

소설가 조안 디디언, 1970년대 미국 남동부 지방의 여행기 엮은 ‘사우스 앤 웨스트’ 발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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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안 디디언과 수필집 ‘사우스 앤 웨스트’.

조안 디디언의 산문은 마치 안개 같다. 신선하고 기묘한 빛으로 모든 것을 오팔 색으로 물들인다. 그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아는 세계다. 디디언의 미출판 에세이를 모아 엮은 ‘사우스 앤 웨스트’에서 그녀 특유의 천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일례로 그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이미지를 다음 한 문장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마른 풀 속엔 방울뱀이, 금문교 아래엔 상어들이 득실댄다.”

‘사우스 앤 웨스트’는 두 부분으로 구성됐는데 전반부는 1970년의 여행 기록이다. 캘리포니아 주 새크라멘토 출신인 그녀가 코네티컷 주 출신인 남편 존 그레고리 던(역시 작가였던 그는 2003년 사망했다)과 함께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쓴 글이다.

이야기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다. 당시 디디언과 던이 살던 로스앤젤레스(LA)와는 정반대인 고딕과 바로크 풍의 도시다. LA가 표면으로 승부하는 도시라면 뉴올리언스는 깊이로 말하는 도시다. 디디언은 글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한다. “뉴올리언스의 6월은 섹스와 죽음으로 공기가 무겁다. 폭력적인 죽음이 아니라 부패와 퇴폐에 의한 죽음이다. 익사와 질식사, 원인 불명의 열병으로 인한 죽음이다.”

디디언은 어린 시절이던 1940년대에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햄에 잠시 살았었다. 성인이 돼서 다시 그곳을 찾은 그녀는 이렇게 썼다. “바나나는 썩어가고 항구에는 독거미가 기어 다니며 날씨는 나쁘다.” 그 다음 디디언과 던은 최남동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미시시피 주와 앨러배마 주로 갔다. 오늘날 오하이오 주 북부가 백인 근로계층의 상황을 말해준다면 1970년대의 남동부 시골 지역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시절에 미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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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의 디디언과 역시 작가였던 남편 존 그레고리 던.

1960년대는 캘리포니아 주가 문화와 반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래서 디디언은 그곳에서 글을 쓰며 그 기록을 남겼다. 그녀는 선셋 블루바드에서 전설적인 록 밴드 도어스와 어울리고, 찰스 맨슨(미국 사교집단 맨슨 패밀리의 두목으로 연쇄살인을 저지르고 지시한 범죄자)의 추종자 린다 카사비안을 위해 베벌리 힐스에서 드레스를 샀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캘리포니아의 문화적 영향력은 점차 줄어드는 듯했다.

늘 중요한 사람이고 싶었던 디디언은 남동부 지방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캘리포니아 주보다 더 주목 받기 시작하자 질투심을 드러냈다. “과거에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주가 미국의 미래이자 악하고 선한 에너지의 비밀스런 근원이며 정신적인 중심이라고 말했다. 난 거기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든 한동안은 남동부가 그런 역할을 했다.” 디디언이 뉴올리언스를 떠날 때쯤 그중에서도 특히 악한 에너지가 확연히 느껴졌다. 그녀가 미시시피 주에서 산 비치 타월에는 남부연합기가 그려져 있었고 어느날 오후 메리디안 시내 대로에서 한 남자가 비둘기떼를 향해 엽총을 난사했다.

또 미시시피 주 방송인 회의에 참석한 디디언은 오늘날 ‘가짜 뉴스’의 전신으로 보이는 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 사람들은 1970년 현재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른다. 정말 놀랍고 당황스럽다. 이들이 아는 정보는 보통 몇 단계 거쳐 전해 들은 것들인데 그 과정에서 변질되고 왜곡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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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앤 웨스트’의 이야기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시작된다. 1970년대의 뉴올리언스 거리.

‘사우스 앤 웨스트’의 후반부는 전반부보다 짧고 만족감도 덜하다. 1976년 디디언은 잡지 롤링 스톤의 의뢰로 패티 허스트의 재판을 취재하러 샌프란시스코에 갔다. 미국 언론 재벌 가문의 상속녀인 허스트는 공생해방군(SLA)이라는 좌익 게릴라 단체에 납치된 뒤 그들에게 동조해 은행 강도 범죄에 가담했다. “내가 캘리포니아 주 출신이기 때문에 이 재판은 내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디디언은 짤막한 서문에 썼다. “하지만 막상 가서 보니 그렇지 않았다.” 디디언이 신문사 상속녀에서 좌익 혁명가가 된 허스트와 모종의 환상적인 유대를 형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기대했던 독자에겐 실망스런 대목이다. 디디언은 관찰력은 뛰어나지만 타고난 기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디디언은 허스트 사건이 지닌 폭력성의 의미를 캘리포니아의 역사·문화적 맥락 안에서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6년 전 남동부 지방을 여행할 때 목격했던 거시적 투쟁의 정신을 목말라했다. “남동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을 역사의 피로 물들일 수 있다는 의식이 확고하다. 하지만 서부 사람들은 그런 확신이 없다.” 롤링스톤의 설립자인 잰 웨너가 허스트에 관한 디디언의 기사에서 원했던 게 바로 이런 확고한 역사 의식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디디언은 지성인으로서의 정직성 때문에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디디언은 자신이 문화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던 듯하다. “난 자신을 역사 속에 위치시키려고 노력 중이다”고 그녀는 허스트에 관한 기사에 썼다. 그녀는 당대의 광기를 초월하거나 거기서 도망치려 하지 않고 그것을 정확히 포착하기를 원했다.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